레고로 배우는 코딩 ‘마인드스톰’…;명령어 입력하니, 와 움직인다!

레고로 배우는 코딩 '마인드스톰'…"명령어 입력하니, 와 움직인다!"

  • 박성우 기자

 

입력 : 2016.09.29 20:00

‘코딩(Coding) 배우기’ 열풍이 뜨겁다. 구글, 페이스북, 우버 등 내노라하는 글로벌 인터넷 업체들은 창업자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코딩에서 시작됐다.

코딩은 C, C++, 스위프트 등 컴퓨터 언어를 이용해 PC프로그램이나 애플리케이션(앱) 등 소프트웨어(SW)를 제작하는 작업을 말한다. 올해 3월 이세돌 9단과 바둑시합을 벌여 4승 1패로 승리한 인공지능(AI) ‘알파고’도 코딩이 탄생시킨 괴물이다.
 

레고 마인드스톰EV3를 사용해 로봇을 만들고 있는 모습 /박성우 기자
레고 마인드스톰EV3를 사용해 로봇을 만들고 있는 모습 /박성우 기자

우리나라 정부가 2018년부터 초·중·고등학교 정규 교과과정에 코딩 교육을 의무화하면서 코딩을 가르치려는 부모도 늘고 있다. 부모와 자녀들이 쉽고 재미있게 코딩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레고(LEGO)사가 만든0 코딩·로봇 교육용 제품인 ‘마인드스톰EV3’에 주목해보자. 레고 마인드스톰을 사용하면 남녀노소(男女老少) 누구나 즐기면서 코딩에 대한 기본 개념을 배울 수 있다.

◆ 레고 마인드스톰EV3, 코딩 배우지 말고 즐기자

마인드스톰의 구성품은 일반적인 레고와는 다르다. 일반 레고의 경우 ‘브릭(Brick)’으로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블록만 들어있다. 하지만 마인드스톰의 경우 일반 레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제어·동력 모듈(아래 사진 가운데)과 색상·터치·적외선 센서 등이 있다. 제어·동력 모듈은 사용자가 코딩으로 작성한 명령어를 인식하고 계산해 여러 모터와 센서들에 데이터를 전송한다. 센서로부터 받은 정보를 입력 받아 처리하며 브릭으로 만든 조립물을 움직이는 심장과 두뇌 역할을 하는 것도 제어·동력 모듈이다.

 

레고 마인드스톰 제어·동력 모듈(가운데)과 연결되는 각종 센서, 모터의 모습
레고 마인드스톰 제어·동력 모듈(가운데)과 연결되는 각종 센서, 모터의 모습

마인드스톰은 기존 레고의 ’테크닉’ 시리즈 브릭과 호환이 가능하다. 레고 테크닉 시리즈를 보유한 소비자라면 브릭을 모두 합쳐 자동차나 중장비 등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 실제 마인드스톰 설명서에는 4~5가지 예제만 나왔지만, 마인드스톰 홈페이지나, 인터넷 커뮤니티, 우튜브 등을 찾아보면 일반 사용자들이 만든 창작물을 볼 수 있다.

마인드스톰은 일반 레고와 달리 조립하는 데 드는 시간은 짧다. 1~2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대신 조립품을 어떻게 작동시킬 지에 더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다.

마인드스톰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먼저 레고 마인드스톰 홈페이지를 통해 코딩을 입력하는 ‘프로그래머용 프로그램’을 내려받고 설치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우와 애플 맥 운영체제(OS)를 모두 지원한다. 또 모바일에서도 구글 안드로이드와 애플 iOS용 프로그램이 별도로 있다.
 

레고 마인드스톰EV3 구성품의 모습 /박성우 기자
레고 마인드스톰EV3 구성품의 모습 /박성우 기자

프로그램 설치가 끝나면 일반 레고처럼 브릭을 조립해야 한다. 설명서에 나온 ‘EV3RSTORM’이라는 로봇을 만들어봤다. 조립하는 데는 약 2시간이 소요됐다.

로봇을 완성한 뒤에는 생명을 불어넣는 코딩 과정이 필요하다. 코딩이라는 말에 살짝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인드스톰 코딩은 그야말로 간단하다. 마인드스톰은 이른바 ‘비주얼 코딩’ 방식을 채택해 누구나 쉽게 코딩을 할 수 있다. 비주얼 코딩은 말 그대로 ’보면서 코딩한다’는 뜻이다.

프로그래머용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전진, 후진, 회전 등의 아이콘을 마우스로 드래그(Drag) 해서 타임 스케줄에 넣으면 된다. 마치 윈도우를 사용할 때 아이콘을 드래그 해 파일을 이동하는 방법과 똑같다. 어렵지 않다.
 

 프로그래머용 프로그램을 사용해 직진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명령어를 만든 모습.
프로그래머용 프로그램을 사용해 직진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명령어를 만든 모습.

예를 들어 자신이 만든 로봇을 3초 간 전진, 2초간 멈춤, 오른쪽 회전, 음악 재생, 적외선 센서 감지 시 동작 멈춤 등의 명령어를 넣고 싶다면, 아이콘을 타임 스케줄에 넣으면 된다. 이후 코딩을 완료한 명령 데이터를 제어·동력 모듈로 전송하면 로봇이 명령에 따라 작동하게 된다.

또 스마트폰을 통해 레고로 만들어진 창작물을 ‘RC(Radio Control)카’처럼 조종을 할 수도 있다. RC는 전파를 사용해 무선으로 조종하는 장난감을 말한다. 스마트폰에 표시된 조이스틱을 움직이면 로봇이 움직인다. 버튼을 누르면 작은 공을 잡고 있던 로봇이 공을 던지기도 한다. 로봇의 제어·동력 모듈이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등 무선 신호를 인식해 스마트폰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 MIT에서 출발한 마인드스톰…비싸지만 값어치는 충분

레고 마인드스톰을 사용해보면서 느낀 점은 ‘재미’였다. 자신이 만든 창작물이 직접 움직이고 계산까지 한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마인드스톰을 이용해 큐브의 색상을 맞추는 장비를 개발하는가 하면, 위조지폐를 감별하는 장비나 피아노를 치는 로봇을 만든 사람도 있다. 그동안 레고로 만든 창작물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웠던 사용자라면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다.

레고 마인드스톰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레고는 원래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코딩을 쉽게 배우는 방법을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와 공동 연구했다. 레고는 15년의 연구 끝에 1998년 마인드스톰RIS(1세대)을 출시했다.

마인드스톰RIS를 만든 주인공은 시모어 페퍼트(Seymour Paper) MIT 교수다. 페퍼트 교수는 지난 1980년 ‘마인드스톰즈’라는 저서를 통해 아이들이 적극적인 환경 속의 대상을 다룰 때 가장 쉽게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구성주의 교육이론’을 만들었다.

이후 그는 레고와 함께 1986년부터 코딩이 가능한 레고 브릭을 개발하는데 연구했고 1998년 페퍼트 교수의 저서에서 이름을 딴 레고 마인드스톰을 출시하게 됐다. 이러한 공로로 페러트 교수는 MIT로부터 ‘레고석좌교수’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레고 마인드스톰을 개발한 MIT 시모어 페퍼트 교수의 모습 /서드솔루션닷컴 캡처
레고 마인드스톰을 개발한 MIT 시모어 페퍼트 교수의 모습 /서드솔루션닷컴 캡처

이후 레고는 2006년 2세대 모델인 마인드스톰NXT를 선보였고, 2009년 8월에는 성능을 개선한 마인드스톰NXT 2.0을 내놨다. 현재 판매 중인 3세대 모델인 마인드스톰EV3이며, 이 제품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레고 창작물을 제어 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됐다.

마인드스톰EV3는 ‘암9(ARM9)’ 프로세서를 사용해 전작 마인드스톰NXT 보다 처리속도가 2배 이상 향상됐다. 메모리 용량도 80메가바이트(MB)로 커져, 명령어를 넣었을 때 메모리 부족으로 멈추는 현상이 사라졌다. 또 SD 카드를 이용해 데이터 저장공간을 최대 32기가바이트(GB)까지 확장할 수 있어 배경음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마인드스톰을 사용해보면서 재미, 창작성, 어떤 사물도 만들 수 있는 무한한 자유성 부분에서 만족스러웠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코딩에 관심 있는 어른들도 재미있게 가지고 놀기 충분했다.

결정적이 단점은 비싼 가격이다. 레고 마인드스톰을 시중에서 구입하기 위해서는 38만~44만원 정도 수준. 부모가 아이의 장난감으로 사주기에는 다소 부담스런 가격이다. 하지만 조립만 하는 일반 레고 시리즈의 제품이 10만원대 이상의 고가인 만큼, 코딩 교육에 관심있는 소비자라면 구입해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 또 중고나라 등 중고 장터를 이용해 20~30%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로봇이 사회·정치 부패 척결할 것-4차 산업혁명과 로봇

“로봇이 사회·정치 부패 척결할 것”

입력 : 2016.09.29 08:07

‘인공지능 분야 대가’ 벤 괴르첼, 합리적 결정하는 ‘로바마’ 개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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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호 객원기자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인공 로봇이 조만간 부정부패 없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인공지능(AI) 분야의 권위자인 미국 오픈코그재단의 벤 괴르첼(Goertzel· 50·사진) 회장은 28일 본지 인터뷰에서 “편견이나 사리사욕이 없는 인공지능이 공정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시대가 되면 ‘김영란법’이 필요 없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유엔미래포럼이 28일 개최한 ‘미래 사회 전략 조찬 세미나’에 연사로 초청돼 한국에 왔다.

1989년 미국 탬플대에서 수학학 박사 학위를 받은 괴르첼 회장은 인간형 인공지능 제어 프로그램인 ‘오픈코그(Open Cognition)’의 소스를 공개해 세계 AI 개발자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2년 전부터 사회·정치적 의사 결정을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는 인공지능 ‘로바마(ROBAMA)’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로봇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이름을 합성한 것으로 ‘로봇 대통령’이란 뜻이다. 그는 “국민을 대표해 사회·정치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정작 전문 지식이 부족하거나 사리사욕에 빠져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되풀이되고 있다”며 “로바마는 알파고(바둑)처럼 특정 분야에만 전문화된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상황 등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는 인공일반지능(AGI)”이라고 말했다. 2025년까지 완벽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로바마를 개발하는 것이 괴르첼 회장의 목표다. 그는 “그때까지 법률이나 정책과 관련된 방대한 분량의 정보와 알고리즘을 입력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며 “10년 뒤면 우리는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괴르첼 회장은 “로바마는 SNS나 인터넷에 올라온 방대한 정보를 1분 이내에 분석해 여론을 반영한 정책을 실시간으로 내놓을 수 있다”며 “로바마가 완성되면 부패를 척결하는 사회·정치적 혁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바마가 비이성적인 감정에 지배되는 인간 두뇌의 단점을 배제하고 가장 공정한 의사 결정을 내리게 되면 부정부패가 자리 잡을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이 한국에서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처음 시행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들었다”며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한 한국이 AGI 로봇 개발에 앞장선다면 이러한 법 자체가 필요 없는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될 것”이라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고도원과 4차 산업혁명

중앙일보

[전영기의 시시각각] 고도원과 4차 산업혁명

[중앙일보] 입력 2016.09.2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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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다. 상상이다. 기억이 과거의 경험을 끌어오는 것이라면 상상은 미래의 경험하지 않은 일을 당겨오는 것이다. 생각의 방식을 약간 비틀면 통념이 이렇게 부서진다. 나는 요새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 에너지가 통념의 파괴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창조적 파괴심을 어디서 퍼 올릴 것인가다. 나는 그 실마리를 매일 새벽 올라오는 e메일 한 통에서 찾게 되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다.

 2001년 8월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기억의 반대말이 상상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됐다. e메일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250명에게 보낸 첫 편지는 오늘날 수신자가 35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저 글쟁이였던 고도원은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변신해 있다. 2007년엔 충주 임·농지 7만 평에 휴식과 치유의 힐링센터를 지었다. 현재 이 센터를 찾아 생활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은 한 해 10만 명, 연매출 260억원(‘깊은 산 속 옹달샘’ 40억원+‘꽃피는 아침마을’ 220억원)이고 정규 직원이 110명이다. 하루 종일 산골 속에 틀어박혀 있어도 직원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자족과 평안에 넘쳐 있다.

 추석 연휴, 충주의 고도원을 만나 지난 세월을 더듬었다. 그것은 말의 기적이었다. 매일 아침 퍼져 나간 e메일 1000글자의 힘이었다. 언어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마법임을 고도원처럼 증명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실제로 그의 글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을 일으켜 세운 사례는 적지 않다. 고도원은 “가지 않은 길,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모험”이란 말로 자기 행로를 요약했다.

 그러고 보면 ‘희망이란’ 제목으로 배달된 15년 전 아침편지 1호가 그런 내용이다. 믿으면 있고, 믿지 않으면 없는 희망의 성질에 관해서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희망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으면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제로 희망이 없다.”

 나는 64세 고도원의 성공담이 청·장년, 중·노년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길 바란다. 그러나 더 바라는 게 있다. 고도원의 언어와 명상, 상상의 세계 속에서 4차 산업혁명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선택이 아니라 습격이다. 피할 수 없다. 한국 사회를 덮치는 새 패러다임이다. 믿는 사람에겐 희망이고 안 믿는 사람에겐 불안이다.

 ‘인터넷 e메일’에서 ‘모바일 인간연결’을 거쳐 ‘지능형 기계세상’으로 이동하는 신세계의 전개다. 로봇·뇌과학·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재생에너지의 기술적 발전은 마침내 정치·경제·국제 체제와 사회조직, 문화와 사고방식 등 문명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낼 것이다. 기계인간이 등장하고 기계와 인간이 어울리는 사회가 출현한다.

 장기 침체의 낭떠러지 앞에서 서성이는 한국과 한국인.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앞당겨 상상한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몸을 던진다. 4차 산업혁명의 폭발력은 소프트 파워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자기 손에 하나씩 들려 있는 사과(물질)를 교환하면 여전히 사과 하나씩일 뿐이다. 그러나 자기 뇌에 들어 있는 아이디어(정신)를 하나씩 교환하면 둘은 처음 보다 두 배 이상의 아이디어를 축적하게 된다. 그들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소프트 파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고도원은 언어와 명상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는 마음이 이완→몰두→변화(기쁨)의 3단계를 거듭하면서 풍성하고 강력한 소프트 파워로 커간다고 말한다. 마음의 근력은 호흡으로 단련된다고 했다. 긴 날숨→잠깐 멈춤→깊은 들숨을 반복하면 마음의 3단계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잠시 따라 해 보니 금세 그 느낌을 알 수 있었다. 고도원은 언어에서 명상을 거쳐 상상의 세계로 도약하려 한다. 그의 마음산업에서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통념의 파괴, 창조적 파괴심이 키워질 수 있다. 삼성의 경영진이 자기네 인력교육센터를 마다하고 고도원의 마을을 찾는 이유다.

전영기 논설위원

                

인류 5번 걸쳐 대륙간 대이동, 급격한 기후 변화 때문

중앙일보

[단독] “인류 5번 걸쳐 대륙간 대이동, 급격한 기후 변화 때문”

[중앙일보] 입력 2016.09.22 02:30   수정 2016.09.22 16:10

하와이대팀, 네이처에 새 학설 제시
10만년 전 아라비아 반도 정착 땐
사막 줄고 수온 올라 식물 번성
유라시아로 갈 땐 빙하기 끝나
유럽 간 일부는 아프리카 U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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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저서 『호모 노마드(Homme Nomade)』에서 인류를 “정처 없이 유랑하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인류가 미지의 세계를 찾아 유랑하는 건 500만 년 동안 유전자에 기록된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주로 언제 대이동(migration)을 감행했을까. 이들은 왜 안전한 주거지를 버렸고,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액슬 티머먼 미국 하와이대 해양학과 교수팀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분석해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이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시했다.

특히 이 논문은 인류가 최초로 유럽에 정착한 시점을 기존 6만 년 전에서 8만~9만 년 전으로 수정했다. 또 인류의 확산 경로에 대한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인류가 단일 방향(아프리카→유럽→아시아→오세아니아)으로만 이동했다는 가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일부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되돌아왔다는 학설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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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먼 교수

놀라운 것은 이렇게 컴퓨터가 추정한 이동 경로가 그간의 지구과학적 증거와 고고학적 사료, 그리고 유전자분석 결과와 톱니바퀴처럼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기후변화 모델을 적용해 인류의 분포(인구밀도)를 추론하고 인류의 이동 과정을 연도별로 복원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1987년 미국 유전학자들은 유전자(DNA) 연구로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아프리카에서 살던 인류가 어떻게 이동했는지 밝히기 위해 하와이대 연구팀은 ‘기후학 모델’을 도입했다. 기상청이 수퍼컴퓨터에 변수를 입력해 날씨를 예측하듯, 연구팀도 이 모델에 다양한 변수를 대입했다. 주요 변수는 인간이 수렵·채집할 수 있는 식량과 수자원, 기온 등이다. 예컨대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 이베리아 반도의 강수량과 습도 데이터를 입력하면 식량이 어느 정도 존재했는지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요인이 충분한 지역은 인구밀도가 증가하고, 반대로 이런 요인이 부족하면 인구밀도가 감소한다고 가정했다. 이런 방식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인류의 조상(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구밀도를 정량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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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 결과, 아프리카에 살던 인류는 총 다섯 번에 걸쳐서 대이동을 감행했다. 첫 번째는 12만5000년 전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벌어졌다. 10만 년 전엔 처음으로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했고, 8만~9만 년 전에는 남부 유럽과 남중국에 진출했다. 인류가 유럽에 최초로 정착한 시점은 6만 년 전이라는 기존 학설이 뒤집힌 순간이다. 네 번째 대이동은 약 6만 년 전에 벌어졌다. 이때 인류는 최초로 오세아니아 대륙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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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처녀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에는 약 1만4000년 전에 본격 진출했다. 특히 세 번째 이동 당시 호모 사피엔스 일부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되돌아왔다는 결과가 나왔다. 공동저자인 토비어스 프리드리히는 네이처에서 “인류가 단일 방향(아프리카→유럽→아시아→오세아니아)으로만 이동했다는 고고학의 가설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처가 이 논문을 게재한 건 바로 연구팀의 결과가 지질학적 증거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논문이 주장하는 인류 대이동 다섯 번의 시점엔 공통적으로 급격한 지질학적 변화의 증거들이 있다. 다섯 번 모두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 비율이 급감했고, 수온이 상승했으며, 이주를 쉽게 하는 식물 분포가 급격히 증가했다.

빙하 이동 시점과도 일치한다. 예컨대 1만2000년 전엔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시작됐다. 빙하가 녹으면 평균기온이 2~3도 상승하고 열대·아열대 지역 식물이 급격히 번식한다. 당시 이집트 북부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 바다에 식물들이 번성했다는 증거를 화석이나 고고학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번 분석은 딱 그 시점에 인류가 유라시아 반도로 건너갔다는 결과를 내놨다.

한편 이번 연구를 수행한 액슬 티머먼 교수는 내년 1월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연구단장은 자율적으로 연구 과제를 선정해 20억~11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확보하는 등 파격적 권한을 갖는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자녀 경쟁력은 수능시험에서 나오지 않는다

[경제 view &] 자녀 경쟁력은 수능시험에서 나오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6.08.25 00:01   수정 2016.08.25 11:24

좋은 대학, 인생 마라톤선 작은 차이
출신학교·외모로 줄세우지 말아야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창의력 한계
충분히 잠자고 즐길 행복 돌려줘야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며칠 전 어느 젊은 기자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들은 이야기다. 29살 청년에 관한 내용이다. 그 젊은이는 중고등학교 시절 게임에 미쳐 있었다고 한다. 상당한 게임 실력을 자랑해 게임을 통해 생활비를 벌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은 가지 못했다. 그랬던 청년은 자신의 게임 실력을 바탕으로 창업 대회에 참가해 상금을 받았다. 그 상금을 바탕으로 창업 자금을 마련하고 사업을 시작해 6년 후 300억원에 회사를 매각했다는 성공담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 힘든 요즘 같은 세상에 많은 용기를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제는 정반대의 슬픈 소식을 접했다. 어느 지인의 두 딸, 자매에 관한 이야기다. 큰딸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렇지 못한 둘째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도 초등학교 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위의 두 이야기를 보면 우리의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우리 나라 교육은 현재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공부만이 전부 인양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시간을 낭비한다. 친구와 협력해야 하는데 친구를 이기라는 교육을 받는다. 수능시험이 인생의 전부인 듯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모든 시간과 자원을 쏟아 붓는다. 부모들은 은퇴 자금을 사교육비에 다 쓴다. 학교나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하지 않는다.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한다.

최근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의 행복도가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뉴스를 봤다. 이런 상황에도 한국에서 사교육 열풍이 줄었다는 소식은 없다. 부모들의 잘못된 자녀 교육관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 수능시험 점수를 위해 아이들의 행복을 인질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의 미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세계는 너무도 빨리 변하는데 우리의 교육은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으로 착각한다. 이미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나. 좋은 대학교가 좋은 직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부에 올인하는 것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충분히 잠을 자고, 스포츠를 즐기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학생이 할 일이다. 육체·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것들을 생략하고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좋은 인재가 되지 못한다. 사회에도 이로운 사람이 되지 않는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가야 편안한 삶을 누리는 시기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교했을 때 약 10m의 차이도 없다.

한국의 미래를 밝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녀들에게 행복을 돌려주어야 한다. 점수로 학생들의 서열을 세우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자녀의 경쟁력은 수능시험에서 오지 않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에도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게 창의성을 길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성을 주고 성적보다 잠재력을 보고 학생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서열을 세우는데 익숙해져 있다. 학교·키·외모·학력·출신학교 등으로 등수를 매긴다. 이제 이런 문화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서열을 따지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소외된다. 일등이 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비용과 노력을 쏟지만 그에 비해 생산성은 아주 낮다.

잘못된 교육시스템은 출산율의 감소로 이어진다. 자녀가 지금과 같이 치열한 경쟁에 휘말리게 되고, 행복하지도 않다면 어느 누가 아이를 가지려고 하겠는가.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 부어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다. 한국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우리 아이들을 서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행복을 돌려주어야 한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중앙시평] 리더는 갑다운 갑이어야 한다

[중앙시평] 리더는 갑다운 갑이어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2016.08.21 18:52   수정 2016.08.2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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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필자를 포함해 많은 교수를 보면서 느끼는 건데 학자로서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교수 스스로는 물론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수상은 명확하다. 정년퇴임 때까지, 심지어 그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일평생 연구에 매진하면서 훌륭한 업적을 지속적으로 쌓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모든 분야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청년 때의 열정을 유지하면서 살 수 없듯이 교수도 세월과 더불어 열정을 잃어 간다. 체력과 함께 기억력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최근의 학문 발전 속도는 개인이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쫓아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는 좀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교수들도 평균적으로 나이가 들어 가면서 연구업적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면 자의건 타의건 연구의 열정을 잃어 가는 교수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의미가 없는 삶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그 교수들도 자기만의 뭔가를 찾아간다. 그래서 연구보다 후학 양성이나 교육에서 더 큰 의미를 찾는 교수들이 일반적으로 늘어 간다. 이건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일부 교수는 교내외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학회나 교내 보직을 통해, 때로는 정치·행정 등을 통해 사회적 기여에 매진하기도 한다. 그 자체로는 나쁠 이유도 좋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런 어떠한 활동에서도 스스로 존재 의미를 찾기 힘든 교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이런 교수에게 가장 편한 선택은 그냥 학교에서 학생들(특히 자신의 대학원생들)만 상대하며 사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교육과 연구를 위해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장 편하고 만만해서 그렇다. 학교 내에서 교수의 지위는 영원한 갑이다. 교육 시스템 자체가 교수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사회규범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교수를 따르게 한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그런다. 그러니 을인 학생들은 교수의 말을 따르고 교수가 항상 옳다고 떠받든다(최소한 겉으로는). 슬프게도 대부분의 교수는 학교 밖 어디에서도, 심지어 자기 집에서도 이만한 대우를 받기 힘들다. 그러니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에 이만큼 달콤한 유혹이 없다.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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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이 갑질에 중독돼 간다는 것이다. 중독의 핵심 증상 중 하나가 의존증이다. 학생들의 사랑과 존경을 즐기는 단계를 넘어 그것이 자신의 삶의 이유가 되면서 이제는 그것에 매달리게 된다. 이제는 학교 밖에 나가길 거부하고, 학생이 원하지 않아도 학생들과 항상 같이 다니려 하고, 학생이 멀어지려 하면 심각한 금단증세와 함께 격한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이 정도 되면 갑과 을이 바뀐 거다. 그리고 학생들도 점점 그걸 느끼게 되고, 그걸 이용하는 학생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이 들어 가장 불행한 교수가 되는 전형적인 행로다.

최근 일련의 정부 인사를 보면서 이런 슬픈 교수의 모습이 생각난다. 모든 정치리더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지향점을 공유하는 사람을 써야 한다. 이게 측근 정치나 코드 인사로 비난받아도, 그래야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고 아끼는 측근과 부하 직원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너무 쉽게 버리면 인간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만약 그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 리더가 측근과 부하 직원에게 의존하게 된다. 어디 가도 자신을 그만큼 지지해 주고 존경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다(최소한 겉으로는). 이들과 함께 있는 순간은 항상 자신이 옳고 그만큼 행복하다. 물론 리더는 자신이 의존하고 있다고 절대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보호해 주고 아껴 주고 있다고 믿는다. 마치 교수들이 자신은 그러기 싫은데 학생들이 하도 원해서 그런다고 착각하듯이.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된 논란의 실체적 진실이 뭔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그 내용이 도덕적인 문제인지 법적인 문제인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우 수석 입장에선 나름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헷갈린다. 누가 누구에게 더 의존하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알려진 우 수석의 능력이나 재산을 보면 지금 그만둬도 앞으로 잘 살아갈 것 같다. 별로 그 자리에 연연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바로 그가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누구한테 그리 중요한 것일까. 리더는 절대 나쁜 갑질은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리더가 갑이 아닌 을의 입장이 되는 순간, 그 조직은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리더는 수많은 부하 직원을 누구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의 리더가 될 수 있다. 그게 갑다운 갑이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시론] 리우 올림픽 중계가 불편한 이유

[시론] 리우 올림픽 중계가 불편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6.08.22 00:40   수정 2016.08.22 00:57

졌다고 울먹이고 성차별 발언도

애국주의와 금메달 집착 지나쳐
이젠 결과와 과정 함께 즐길 때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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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효
서울대 체육철학 강사

‘스포츠는 스토리다’. 스포츠의 의미를 이처럼 적확하고 시원하게 전달하는 문장도 드물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 중앙일보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적어도 스포츠에서 감동을 찾고자 하는 한 수정의 여지가 없다. 스포츠의 감동은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에서 비롯한다. 거기서 희로애락의 보편적 감정이 선수의 몸을 통해 날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번 리우 올림픽은 이 감동의 양과 질이 예전 같지 않다. 금메달 개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시상대의 가장 높이 게양되는 태극기와 애국가가 불러오는 즉물적인 감정은 감동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스포츠의 감동은 경기의 전 과정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선수의 몸을 통해 전달된다. 긴장과 흥분, 안도와 불안, 자신감과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의 교차, 이런 미묘한 감정이 모두 선수의 움직임에 뒤엉켜 있다. 그래서 선수의 몸은 현존재를 드러내는 실존의 기호가 되며, 이런 까닭에 스포츠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올림픽 중계는 늘 이 이야기의 전달에 실패해 왔다. 대부분의 금메달은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고, 각성의 시청자들에게 주입된 것은 민족과 국가의 자긍심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해 시청자가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엄숙한 애국주의와 금메달 수의 자랑뿐이라면 불행하다. 금메달과 국민의 행복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스웨덴과 핀란드는 행복하지 않거나 애국심이 부족한 국가일 것이다. 오히려 이런 나라들이 더 편하게 올림픽을 즐길지 모른다. 국격이란 차분히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정도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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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우 올림픽이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상파의 애국주의 경쟁과 정제되지 못한 감정적 중계방송이 영 편치 못한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온두라스와의 축구 8강전에서 모 방송국의 아나운서는 울먹이며 패배의 소식을 전하더니, 펜싱의 중계진은 경기와 무관한 여성 선수의 신체를 지적하는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오죽했으면 막말이 편집될 정도까지 이르렀을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해설가의 도를 넘은 감정이입이다. 선수의 실수를 지적하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와 승리를 재촉하는 내용 없는 해설은 열대야의 짜증을 한층 부채질했다. 리모컨을 쥐고 채널을 돌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잘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아니죠. 물러나면 안 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정신력의 승부입니다. 조금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자동재생기처럼 반복되는 이런 멘트들은 해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응원에 가깝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후배이거나 제자이기도 한 선수의 플레이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인지상정인지 모른다. 때로 편파적이고 가족적인 해설은 애국의 감정을 고취하는 흥분제이기도 했다. 적어도 ‘빳데루 아저씨’의 시절은 그랬다.

그러나 어느새 국민은 그런 해설에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4년마다 모든 지상파가 메달 사냥의 현장을 충실하고 생생하게 전달한 덕분에 이제 국민도 효자 종목의 경기 형식과 전략, 심지어 선수의 당일 컨디션까지 파악하는 눈이 생겨 버렸다. 그래서 세계의 톱 레벨과의 거리와 탈락의 지점까지 짐작하는 감식안마저 갖게 되었다. 행운과 불운, 실력과 중과부적, 전략의 부재까지 분간할 줄 아는 국민에게 흥분과 장탄식으로 일관하는 시대착오적인 해설은 이제 사양하고 싶어진다.

스포츠와 현실의 경계는 명확하다. 스포츠는 다만 신체적 탁월성을 겨루는 문화의 한 장르일 뿐이다. 이런 구분이 흐릴수록 민족주의의 즉물적 자극이 준동한다. 올림픽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다양함과 경이로움을 즐기는 인류의 축제다. 언제 우리가 우사인 볼트와 마이클 펠프스, 손연재와 박인비를 한꺼번에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펼치는 퍼포먼스는 인간의 신체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해설가는 그 아름다움을 깨우쳐 주는 조언자에 불과하다. 감추어진 해당 종목의 매력을 설명해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해설가의 몫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 유려한 말솜씨가 갖춰져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기준은 철저하다. 영국의 BBC가 미국의 마이클 존슨에게 육상의 해설을 맡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로 해설가의 멘트가 방해로 작용하는 종목은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의 단독 진행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그게 훨씬 경기의 몰입을 돕는다. 가까운 일본은 상업방송의 호들갑과 공영방송의 차분함으로 양극화돼 있지만 NHK의 해설은 객관적이고 차분하며 분석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해설은 시청자를 앞질러 가지 않는다. 그래야 편안히 경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편안하게 올림픽을 즐기자. 금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소치의 김연아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해설가의 멘트가 거슬리면 ‘음소거’를 누르고 김연아를 보듯 세계적 스포츠 축제의 퍼포먼스를 감상하자. 어깨의 힘을 빼고.

김정효 서울대 체육철학 강사

온라인 게임하는 학생이 성적 더 높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떨어져

"온라인 게임하는 학생이 성적 더 높다" 연구결과 발표…페이스북 사용자는 떨어져

입력 : 2016.08.09 14:23 | 수정 : 2016.08.09 14:28

 

/조선일보DB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학생들이 수학·읽기·과학 시험에서 더 높은 성적을 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영국 언론 가디언이 8일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호주 로열 멜버른 공대 연구팀이 호주 고등학생 1만 2000여명의 2012년 OECD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결과와 학생의 개인 취미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내용이 확인됐다.

특히 거의 매일 온라인 게임을 한 학생들이 수학과 읽기 영역에서 각각 평균 15점, 과학에서는 17점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를 이끈 알버터 포소 교수는 “분석 결과는 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경우 온라인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PISA 테스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만 이 연구는 온라인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얻는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진 못했다.

연구팀은 온라인 게임을 하며 레벨을 높이기 위해 수학·읽기 등의 지식을 이용해 퍼즐을 푸는 행위가 성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어 수학·과학·읽기 등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게임을 더욱 좋아할 가능성과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학생들이 공부도 잘 하면서 더 많은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게임을 하게 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온라인 게임이 성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수차례 보고된 바 있다. 실제 최근 콜럼비아 대학교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을 많이 하는 6~11살 어린이들이 높은 학업 성취도나 지적 능력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포소 교수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사용정도와 PISA 성적 간의 상관관계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평균보다 4% 가량 낮은 점수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소셜미디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학생일수록, PISA 성적은 더욱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이 소셜미디어 반응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집중력이 낮아져 학습 성적도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영국의 배스 스파 대학 연구팀이 실제로 소셜미디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집중력이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