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6년 08월
자녀 경쟁력은 수능시험에서 나오지 않는다
[경제 view &] 자녀 경쟁력은 수능시험에서 나오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6.08.25 00:01 수정 2016.08.25 11:24
좋은 대학, 인생 마라톤선 작은 차이
출신학교·외모로 줄세우지 말아야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창의력 한계
충분히 잠자고 즐길 행복 돌려줘야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며칠 전 어느 젊은 기자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들은 이야기다. 29살 청년에 관한 내용이다. 그 젊은이는 중고등학교 시절 게임에 미쳐 있었다고 한다. 상당한 게임 실력을 자랑해 게임을 통해 생활비를 벌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은 가지 못했다. 그랬던 청년은 자신의 게임 실력을 바탕으로 창업 대회에 참가해 상금을 받았다. 그 상금을 바탕으로 창업 자금을 마련하고 사업을 시작해 6년 후 300억원에 회사를 매각했다는 성공담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 힘든 요즘 같은 세상에 많은 용기를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제는 정반대의 슬픈 소식을 접했다. 어느 지인의 두 딸, 자매에 관한 이야기다. 큰딸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렇지 못한 둘째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도 초등학교 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위의 두 이야기를 보면 우리의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우리 나라 교육은 현재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공부만이 전부 인양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시간을 낭비한다. 친구와 협력해야 하는데 친구를 이기라는 교육을 받는다. 수능시험이 인생의 전부인 듯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모든 시간과 자원을 쏟아 붓는다. 부모들은 은퇴 자금을 사교육비에 다 쓴다. 학교나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하지 않는다.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한다.
최근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의 행복도가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뉴스를 봤다. 이런 상황에도 한국에서 사교육 열풍이 줄었다는 소식은 없다. 부모들의 잘못된 자녀 교육관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 수능시험 점수를 위해 아이들의 행복을 인질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의 미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세계는 너무도 빨리 변하는데 우리의 교육은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으로 착각한다. 이미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나. 좋은 대학교가 좋은 직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부에 올인하는 것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충분히 잠을 자고, 스포츠를 즐기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학생이 할 일이다. 육체·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것들을 생략하고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좋은 인재가 되지 못한다. 사회에도 이로운 사람이 되지 않는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가야 편안한 삶을 누리는 시기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교했을 때 약 10m의 차이도 없다.
한국의 미래를 밝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녀들에게 행복을 돌려주어야 한다. 점수로 학생들의 서열을 세우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자녀의 경쟁력은 수능시험에서 오지 않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에도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게 창의성을 길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성을 주고 성적보다 잠재력을 보고 학생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서열을 세우는데 익숙해져 있다. 학교·키·외모·학력·출신학교 등으로 등수를 매긴다. 이제 이런 문화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서열을 따지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소외된다. 일등이 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비용과 노력을 쏟지만 그에 비해 생산성은 아주 낮다.
잘못된 교육시스템은 출산율의 감소로 이어진다. 자녀가 지금과 같이 치열한 경쟁에 휘말리게 되고, 행복하지도 않다면 어느 누가 아이를 가지려고 하겠는가.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 부어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다. 한국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우리 아이들을 서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행복을 돌려주어야 한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중앙시평] 리더는 갑다운 갑이어야 한다
[중앙시평] 리더는 갑다운 갑이어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2016.08.21 18:52 수정 2016.08.22 00:50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필자를 포함해 많은 교수를 보면서 느끼는 건데 학자로서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교수 스스로는 물론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수상은 명확하다. 정년퇴임 때까지, 심지어 그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일평생 연구에 매진하면서 훌륭한 업적을 지속적으로 쌓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모든 분야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청년 때의 열정을 유지하면서 살 수 없듯이 교수도 세월과 더불어 열정을 잃어 간다. 체력과 함께 기억력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최근의 학문 발전 속도는 개인이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쫓아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는 좀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교수들도 평균적으로 나이가 들어 가면서 연구업적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면 자의건 타의건 연구의 열정을 잃어 가는 교수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의미가 없는 삶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그 교수들도 자기만의 뭔가를 찾아간다. 그래서 연구보다 후학 양성이나 교육에서 더 큰 의미를 찾는 교수들이 일반적으로 늘어 간다. 이건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일부 교수는 교내외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학회나 교내 보직을 통해, 때로는 정치·행정 등을 통해 사회적 기여에 매진하기도 한다. 그 자체로는 나쁠 이유도 좋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런 어떠한 활동에서도 스스로 존재 의미를 찾기 힘든 교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이런 교수에게 가장 편한 선택은 그냥 학교에서 학생들(특히 자신의 대학원생들)만 상대하며 사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교육과 연구를 위해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장 편하고 만만해서 그렇다. 학교 내에서 교수의 지위는 영원한 갑이다. 교육 시스템 자체가 교수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사회규범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교수를 따르게 한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그런다. 그러니 을인 학생들은 교수의 말을 따르고 교수가 항상 옳다고 떠받든다(최소한 겉으로는). 슬프게도 대부분의 교수는 학교 밖 어디에서도, 심지어 자기 집에서도 이만한 대우를 받기 힘들다. 그러니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에 이만큼 달콤한 유혹이 없다.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이 갑질에 중독돼 간다는 것이다. 중독의 핵심 증상 중 하나가 의존증이다. 학생들의 사랑과 존경을 즐기는 단계를 넘어 그것이 자신의 삶의 이유가 되면서 이제는 그것에 매달리게 된다. 이제는 학교 밖에 나가길 거부하고, 학생이 원하지 않아도 학생들과 항상 같이 다니려 하고, 학생이 멀어지려 하면 심각한 금단증세와 함께 격한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이 정도 되면 갑과 을이 바뀐 거다. 그리고 학생들도 점점 그걸 느끼게 되고, 그걸 이용하는 학생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이 들어 가장 불행한 교수가 되는 전형적인 행로다.
최근 일련의 정부 인사를 보면서 이런 슬픈 교수의 모습이 생각난다. 모든 정치리더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지향점을 공유하는 사람을 써야 한다. 이게 측근 정치나 코드 인사로 비난받아도, 그래야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고 아끼는 측근과 부하 직원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너무 쉽게 버리면 인간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만약 그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 리더가 측근과 부하 직원에게 의존하게 된다. 어디 가도 자신을 그만큼 지지해 주고 존경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다(최소한 겉으로는). 이들과 함께 있는 순간은 항상 자신이 옳고 그만큼 행복하다. 물론 리더는 자신이 의존하고 있다고 절대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보호해 주고 아껴 주고 있다고 믿는다. 마치 교수들이 자신은 그러기 싫은데 학생들이 하도 원해서 그런다고 착각하듯이.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된 논란의 실체적 진실이 뭔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그 내용이 도덕적인 문제인지 법적인 문제인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우 수석 입장에선 나름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헷갈린다. 누가 누구에게 더 의존하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알려진 우 수석의 능력이나 재산을 보면 지금 그만둬도 앞으로 잘 살아갈 것 같다. 별로 그 자리에 연연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바로 그가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누구한테 그리 중요한 것일까. 리더는 절대 나쁜 갑질은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리더가 갑이 아닌 을의 입장이 되는 순간, 그 조직은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리더는 수많은 부하 직원을 누구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의 리더가 될 수 있다. 그게 갑다운 갑이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시론] 리우 올림픽 중계가 불편한 이유
[시론] 리우 올림픽 중계가 불편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6.08.22 00:40 수정 2016.08.22 00:57
졌다고 울먹이고 성차별 발언도
애국주의와 금메달 집착 지나쳐
이젠 결과와 과정 함께 즐길 때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설 필요

김정효
서울대 체육철학 강사
‘스포츠는 스토리다’. 스포츠의 의미를 이처럼 적확하고 시원하게 전달하는 문장도 드물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 중앙일보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적어도 스포츠에서 감동을 찾고자 하는 한 수정의 여지가 없다. 스포츠의 감동은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에서 비롯한다. 거기서 희로애락의 보편적 감정이 선수의 몸을 통해 날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번 리우 올림픽은 이 감동의 양과 질이 예전 같지 않다. 금메달 개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시상대의 가장 높이 게양되는 태극기와 애국가가 불러오는 즉물적인 감정은 감동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스포츠의 감동은 경기의 전 과정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선수의 몸을 통해 전달된다. 긴장과 흥분, 안도와 불안, 자신감과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의 교차, 이런 미묘한 감정이 모두 선수의 움직임에 뒤엉켜 있다. 그래서 선수의 몸은 현존재를 드러내는 실존의 기호가 되며, 이런 까닭에 스포츠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올림픽 중계는 늘 이 이야기의 전달에 실패해 왔다. 대부분의 금메달은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고, 각성의 시청자들에게 주입된 것은 민족과 국가의 자긍심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해 시청자가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엄숙한 애국주의와 금메달 수의 자랑뿐이라면 불행하다. 금메달과 국민의 행복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스웨덴과 핀란드는 행복하지 않거나 애국심이 부족한 국가일 것이다. 오히려 이런 나라들이 더 편하게 올림픽을 즐길지 모른다. 국격이란 차분히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정도에 있지 않을까.

이번 리우 올림픽이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상파의 애국주의 경쟁과 정제되지 못한 감정적 중계방송이 영 편치 못한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온두라스와의 축구 8강전에서 모 방송국의 아나운서는 울먹이며 패배의 소식을 전하더니, 펜싱의 중계진은 경기와 무관한 여성 선수의 신체를 지적하는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오죽했으면 막말이 편집될 정도까지 이르렀을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해설가의 도를 넘은 감정이입이다. 선수의 실수를 지적하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와 승리를 재촉하는 내용 없는 해설은 열대야의 짜증을 한층 부채질했다. 리모컨을 쥐고 채널을 돌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잘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아니죠. 물러나면 안 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정신력의 승부입니다. 조금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자동재생기처럼 반복되는 이런 멘트들은 해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응원에 가깝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후배이거나 제자이기도 한 선수의 플레이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인지상정인지 모른다. 때로 편파적이고 가족적인 해설은 애국의 감정을 고취하는 흥분제이기도 했다. 적어도 ‘빳데루 아저씨’의 시절은 그랬다.
그러나 어느새 국민은 그런 해설에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4년마다 모든 지상파가 메달 사냥의 현장을 충실하고 생생하게 전달한 덕분에 이제 국민도 효자 종목의 경기 형식과 전략, 심지어 선수의 당일 컨디션까지 파악하는 눈이 생겨 버렸다. 그래서 세계의 톱 레벨과의 거리와 탈락의 지점까지 짐작하는 감식안마저 갖게 되었다. 행운과 불운, 실력과 중과부적, 전략의 부재까지 분간할 줄 아는 국민에게 흥분과 장탄식으로 일관하는 시대착오적인 해설은 이제 사양하고 싶어진다.
스포츠와 현실의 경계는 명확하다. 스포츠는 다만 신체적 탁월성을 겨루는 문화의 한 장르일 뿐이다. 이런 구분이 흐릴수록 민족주의의 즉물적 자극이 준동한다. 올림픽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다양함과 경이로움을 즐기는 인류의 축제다. 언제 우리가 우사인 볼트와 마이클 펠프스, 손연재와 박인비를 한꺼번에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펼치는 퍼포먼스는 인간의 신체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해설가는 그 아름다움을 깨우쳐 주는 조언자에 불과하다. 감추어진 해당 종목의 매력을 설명해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해설가의 몫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 유려한 말솜씨가 갖춰져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기준은 철저하다. 영국의 BBC가 미국의 마이클 존슨에게 육상의 해설을 맡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로 해설가의 멘트가 방해로 작용하는 종목은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의 단독 진행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그게 훨씬 경기의 몰입을 돕는다. 가까운 일본은 상업방송의 호들갑과 공영방송의 차분함으로 양극화돼 있지만 NHK의 해설은 객관적이고 차분하며 분석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해설은 시청자를 앞질러 가지 않는다. 그래야 편안히 경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편안하게 올림픽을 즐기자. 금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소치의 김연아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해설가의 멘트가 거슬리면 ‘음소거’를 누르고 김연아를 보듯 세계적 스포츠 축제의 퍼포먼스를 감상하자. 어깨의 힘을 빼고.
김정효 서울대 체육철학 강사
박남기 교수님의 블로그(최고의 교수법 등)
온라인 게임하는 학생이 성적 더 높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떨어져
"온라인 게임하는 학생이 성적 더 높다" 연구결과 발표…페이스북 사용자는 떨어져
입력 : 2016.08.09 14:23 | 수정 : 2016.08.09 14:28

이 매체에 따르면 호주 로열 멜버른 공대 연구팀이 호주 고등학생 1만 2000여명의 2012년 OECD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결과와 학생의 개인 취미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내용이 확인됐다.
특히 거의 매일 온라인 게임을 한 학생들이 수학과 읽기 영역에서 각각 평균 15점, 과학에서는 17점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를 이끈 알버터 포소 교수는 “분석 결과는 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경우 온라인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PISA 테스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만 이 연구는 온라인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얻는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진 못했다.
연구팀은 온라인 게임을 하며 레벨을 높이기 위해 수학·읽기 등의 지식을 이용해 퍼즐을 푸는 행위가 성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어 수학·과학·읽기 등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게임을 더욱 좋아할 가능성과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학생들이 공부도 잘 하면서 더 많은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게임을 하게 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온라인 게임이 성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수차례 보고된 바 있다. 실제 최근 콜럼비아 대학교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을 많이 하는 6~11살 어린이들이 높은 학업 성취도나 지적 능력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포소 교수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사용정도와 PISA 성적 간의 상관관계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평균보다 4% 가량 낮은 점수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소셜미디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학생일수록, PISA 성적은 더욱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이 소셜미디어 반응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집중력이 낮아져 학습 성적도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영국의 배스 스파 대학 연구팀이 실제로 소셜미디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집중력이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삶의 향기] 수사의 힘
[삶의 향기] 수사의 힘
나이·권력 아닌 논리력·설득력 우선인 사회가 건강
설득을 가르치는 나라, 말이 통하는 사회가 돼야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최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가 한 연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저는 매일 아침 노예들에 의해 세워진 집에서 잠을 깹니다. 그리고 제 딸들, 두 명의 아름답고 지적인 흑인 여성들이 백악관의 잔디밭에서 강아지들과 노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녀는 단 두 문장으로 흑인 노예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있으며, 인종차별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런 노예의 후예가 대통령이 되는 미국의 저력을 자랑하고 있다.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자리가 이런 수사(修辭)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런 감동적인 수사의 이면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자유로운 토론을 중시하고 설득의 수사학을 연마해 온 교육과 문화의 유구한 전통이 있는 것이다. 수사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설득의 가용(可用)한 수단”(아리스토텔레스)이다. 모든 관계에 언어가 개입된다. 생각과 사상과 느낌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언어의 외피를 입을 때 비로소 존재 안으로 들어온다. 막말로 언어 없이 사상도 없으며, 표현할 수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것이다.
수사가 빈약하거나 부실한 공동체에서 쓸데없거나 소모적인 분쟁이 일어난다. 얼마 전 정부의 한 고위 관리자가 민중을 “개·돼지”라고 불러서 큰 소요가 일어났다. 최근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와 관련해 “외부세력”이라는 불분명한 용어가 혼란을 일으킨다. 어떤 사람들은 성주 주민이 아니면 다 외부세력이라고 몰아붙인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놀랍게도 미국을 외부세력이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부세력의 기준은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외부세력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세력’을 의미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수많은 성주 거주민들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넌더리가 나는 “종북”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는 말 그대로 ‘북한을 추종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많은 발화자에 의해 이 단어는 자신들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 혹은 세력을 지칭해 왔다. 이 언어의 폭력에 의해 때로 멀쩡한 사람들이 종북이 되고, 이 나라는 각계각층에 북한을 옹호하고 모방하려는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언어가 현실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먼저 사물이 있고 그것을 지칭하는 언어가 있다는 구태의연한 언어관을 의심해봐야 한다. 언어는 언어 이전의 사물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현실을 만들기도 한다. 공동체 안에서 어떤 한 구성원이 다른 사람을 지칭한 “저 사람은 너무 이기적이야”라는 말 한마디가 실제(fact)와 무관하게 한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이것이 언어의 힘이고 수사의 힘이다.
공동체의 모든 관계에 이 언어의 끈들이 개입된다. 언어 없이 관계도 없고 현실도 없다. 그러니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진술하고 설득하는 수사의 힘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국가 단위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서툴고 악의적인 서사는 공동체의 귀중한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시킨다. 글쓰기가 아닌 암기 위주의 교육이 수사 부재의 공동체를 만든다. 수사가 빈약하므로 설득의 기술이 부족하고, 설득하지 못하므로 언어 외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능사인 사회가 된다.
좋은 수사는 또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평등하고 민주적인 것으로 만든다. 나이나 권력이 아니라 논리력과 합리적 설득력이 우선인 사회는 얼마나 건강한가. 그런 사회에는 논리 정연한 자식의 말을 받아들일 줄 아는 부모가 많으며 학생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선생들이 넘쳐난다. 그런 사회의 정치는 힘으로 국민들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는’ 정책은 이미 옳은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득력과 그것에 토대한 사회적 동의를 중시할 때 사회는 비로소 합리·평등·민주의 원칙에 의해 가동된다. 이렇게 ‘계급장’ 뗀 담론의 “공공영역(public sphere)”(하버마스)이 확대될 때 ‘나쁜’ 사상에 대한 공포도 사라진다. 그런 사상은 설득력이 부족하므로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설득을 가르치는 나라, 말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수사의 힘
加 앨버타주, 20년 만에 교육과정 바꾼다
加 앨버타주, 20년 만에 교육과정 바꾼다
2022년까지 단계적 추진
경제·환경·코딩 교육 강화
다수 환영…”평가도 개선해야”
캐나다 공영방송 CBC의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드 에겐 앨버타주 교육부장관은 15일 “오는 9월부터 6년 동안 6400만 캐나다 달러(약 580억 원)를 들여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유치원에서 4학년까지는 2018년까지, 5~8학년은 2019년, 고교 4년 과정은 2022년까지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언어와 수학, 사회, 과학, 예술, 체육 및 보건 등 6개 교과가 그 대상이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는 미래 사회에 대비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 새로운 정보의 처리·적용 능력을 키우자는 데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다. 주 교육부는 일반 경제 상식과 기후 환경 변화 교육을 강화하고 컴퓨터 코딩 수업을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과거 원주민 아동을 격리 수용시켜 백인 식민 지배 동화 교육을 했던 사실을 비롯한 캐나다 원주민의 역사를 기술하기로 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개편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높다.
알버타주 교사협회 마크 램샌터 회장은 “현재 교과목이 너무 많아 심층적 교육보다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끝나고 있다”며 “이번 개정 작업을 통해 수업 과목을 대폭 줄여 교육의 내실화를 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현재 시행 중인 탐구 학습(Discovery Learning) 기반 수학교육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개편 요구도 나왔다. 탐구 학습 방식은 일정한 공식으로 문제를 풀지 않고 그림 그리기나 블록 쌓기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과거 수학 학습과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이 방식이 도입된 뒤 오히려 학생들의 수학 점수가 떨어지면서 일부 학부모들이 사교육 시장을 찾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지난해에는 1만7000여 명의 학부모가 수학 교육 과정 개정을 위한 서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제1 야당인 와일드로즈당 관계자는 “학부모 반발이 거센 수학 탐구 학습 정책은 어떤 식으로든 빨리 손을 봐야 한다”며 “학교 현장에 혼란을 주지 않도록 순차적으로 교육과정 개편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교육과정 개정에 앞서 주 정부가 추진하는 성취도평가의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자문위원으로 선임된 데이비드 슬롬프 레스브리지대 교육학과 교수는 “6·9·12학년에 치르는 성취도평가나 졸업시험 준비를 위해 교사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 교육과정에 의거한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힘들다”며 “시험 제도의 대대적인 정비 없이 이뤄지는 교과과정 개편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주 교육부는 우선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주 전역에서 교원과 학부모, 교육 전문가와의 회의를 열어 현장 의견을 반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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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참여 수업이 무조건 좋다?…교사가 상황에 맞게 정해야”
“학생참여 수업이 무조건 좋다?…교사가 상황에 맞게 정해야”
세션Ⅰ-초등: 주제발표
정 교수는 “최근 배움 중심, 학생 중심, 활동 중심, 체험 중심 등 교육청마다 학생 참여형 수업과 관련된 슬로건이 난무하고 있다”며 “이런 표현은 수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 수단이 목적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설명식 수업은 나쁘고 토의‧토론 수업이 좋다는 식의 고정관념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설명식 수업은 짧은 시간에 많은 지식을 공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토의‧토론 수업도 좋은 수업, 나쁜 수업이 있다”며 “설명‧시범‧체험 등 어떤 방식의 수업을 할 것인지는 교과 전문가인 교사가 상황에 맞게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또 ‘유대인교육’이나 ‘거꾸로 수업’ 등 새로운 수업방법들이 유행처럼 번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본질, 즉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예습 후 수업, 토론식 수업을 말만 바꾼 것일 뿐 가르치고 배우는 본질은 같다”고 말했다.
2015개정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에 대해서는 ‘자아정체성’보다 ‘긍정적 자아개념 심어주기’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분석했다. 초등 발단단계에서 자아정체성은 5, 6학년에서야 형성되기 때문에 진로와 삶을 개척하는 훈련까지는 어렵고 저학년 때부터 똑똑하거나, 운동을 잘하는 등 지‧덕‧체 중심의 긍정적 자아개념을 형성해주면 친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창의성 교육에 대해서는 “새롭다고 다 칭찬할 것이 아니라 새롭지만 유해하거나, 유용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는 ‘진짜 창의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평가의 방향과 관련해 학생 자기평가와 학생 간 평가, 학습일지 등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성취기준을 수업에 적용하고 그 과정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실제 수업을 진행하면서 관찰‧평가까지 하기는 어렵다”며 “평가의 목적이 학생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므로 학생의 변화를 평가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라”고 덧붙였다.
<현장교원 토론 >
“담임연임‧학년전담제 고려해야”
“개별화 수업‧선택형 교육 필요”
민부자 서울송천초 교사=긍정적인 자아개념 강조에 동의한다. 교육부가 초등부터 대학까지 맞춤형 진로교육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고 올해부터 초등에도 진로교사를 우선 보직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그러므로 초등도 직업 흥미도 검사와 적성 탐색 등 적절한 진로교육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또 성취기준-수업-평가를 일체화하려면 제도적으로 담임연임제나 학년전담제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박순덕 경기 은계초 수석교사=평가는 교사의 교육철학과 평가철학으로 해석돼야 하며 학생의 성장 과정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성장참조형 수행평가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학생이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 맞춤형 지도 계획을 수립하는 등 교사책임제도 운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교사가 수업과 학생지도 이외의 모든 공문이나 업무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이경호 서울이태원초 교사=고학년의 경우 영어, 수학 등 주요 교과목을 포기한 학생이 많다. 교과 기본지식이 갖춰져 있지 않은 학생에게 토론‧토의식 학생참여수업을 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개개인의 특성과 수준에 따른 개별화 수업과 선택형 교육과정 제공이 필요하다. 또 교사들이 다양한 교수법을 개발‧적용할 수 있도록 교수‧학습에 대한 재량권을 확대하고 핵심역량 중심으로 교과목 수와 학습량을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
박은하 서울옥정초 교사=교사의 피드백이 학생에게 자극이 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됐을 때 비로소 과정중심 평가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평가에 학생이 참여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하는 인식과 충분한 이해 없이는 학생참여형 평가를 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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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예람 기자 yrkim@kfta.or.kr | 등록 2016-07-14 오후 4:33:17 수정 2016-07-14 오후 6:08:05 |
한국형 무크(K-M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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