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16) 일하는 기쁨 – 과학수사 전문가 정희선

시체·마약과 함께 30년 … 스트레스도 스승이더라

[중앙일보] 입력 2013.12.17 00:32 / 수정 2013.12.17 16:53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16) 일하는 기쁨 – 과학수사 전문가 정희선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사건마다 스토리가 있다. 사건 현장에는 결과만 보인다. 스토리는 안 보인다. 국과수는 단서를 통해 그 스토리를 찾아내야 한다. 처음부터 정답을 찍는 게 아니다. 무수한 가능성 중 아닌 것을 하나씩 빼다 보면 마지막 하나가 남는다. 그걸 찾아간다”고 말했다. 그건 어둠에서 빛을 찾고, 빛에서 어둠을 찾는 식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삶은 ‘범죄의 재구성’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 30년을 보냈다. 화학이 좋아서 약대를 갔고, 일이 흥미로워서 국과수로 갔다. 여성으로선 매우 드문 선택이었다. 지금은 법과학 관련 국제기관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다. 12일 대전에서 정희선(58)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을 만났다.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그가 보는 행복은 어떤 걸까.

 정 원장은 마약 전문가에, 독극물 전문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첫 여성소장을 지냈다. 2010년 연구소가 연구원으로 승격되던 해, 초대 원장도 지냈다. “요즘은 여성 파워가 세다. 부검하는 여성 직원도 여러 명”이라고 했다. 그가 국과수로 들어갈 때만 해도 사정은 아주 달랐다.

 정 원장은 78년 숙명여대 약학과를 졸업했다. 친구들은 주로 약국이나 제약회사로 갔다. 그의 관심은 엉뚱했다. “대학 3학년 때 국과수 소장님이 와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그때 마음을 뺏겼다.

 그는 국과수 직원이 됐다. 직원 100명을 통틀어 여성은 그를 포함, 고작 3명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묻는다. 국과수도 잘 모르던 시절에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단순했다. 내 마음의 소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택했을 뿐이다.”

 국과수 일은 험하다. 온갖 사건으로 인한 사체를 부검하고 사인을 밝힌다. 화재 현장의 시커먼 잿더미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며칠씩 머물고, 교통사고도 일일이 조사한다. 마약과 독극물, 유전자 검사 등 영역도 다양하다. 잔뜩 기대에 찬 그에게 첫 임무가 떨어졌다. 실험기구를 닦는 일이었다. “국과수에선 부검을 한 뒤에 위장의 내용물을 분석한다. 독이나 약물이 있는지 확인한다. 실험기구 닦고서 8개월간 그 일만 했다. 갈수록 힘이 빠졌다”고 기억했다.

 -왜 힘이 빠졌나.

 “단순한 일만 하니까. 위 내용물이 뭔가. 토사물과 똑같은 거다. 냄새가 온 연구원에 찰 만큼 지독하다. 그걸 갖고 8개월째 분석만 했다. 지치지 않겠나. 뭔가 일다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는 과장실로 찾아갔다. 당돌하게 말했다. “정말 일을 하고 싶다. 뭐든지 시켜달라. 지금 맡은 일만 하고 있으면 내가 이 조직에 유용하지 않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정 원장은 “삶에서 간절함이 올라오는 순간에는 표현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그걸 찾아가야 한다”고 권했다.

 마침 가짜 꿀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꿀에다 설탕도 넣고, 물엿도 섞었다. 감별법이 없었다. 용의자를 붙잡아도 처벌할 수가 없었다. 과장은 그 일을 맡겼다. “밤도 새고 주말에도 일했다. 내 힘으로 뭔가를 해결한다는 게 너무 좋았다. 내가 원해서, 내가 좋아서 했다. 그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굉장했다. 그러니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선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1년 넘게 온갖 화학 실험을 한 끝에 방법을 찾아냈다. 그때 경찰청 특수대에서 엄청난 양의 가짜 꿀을 만든 사람을 붙잡았다. 그의 방법으로 혐의가 입증됐다. “그때는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후에 가짜 참기름 파동이 터졌다. 그것도 감별법이 없었다. 3~4년에 걸쳐서 끈질기게 실험을 했다. 결국 해결법을 찾아냈다.

 정 원장은 ‘경험’에 방점을 찍었다. “살다 보니 경험이 참 중요하더라.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처음에는 나무만 보인다.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나무만 보인다. 그걸 쌓고, 쌓으며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숲이 보이더라. 그러니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소중한가. 거기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게 쌓여야 숲을 볼 수 있으니까.”

 경찰이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면 48시간이 주어진다.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48시간이 지나면 계속 잡아둘 법적 근거가 없다. 국과수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모든 직업에는 스트레스가 있다. 48시간이 처음에는 굉장한 압박이었다. 나중에 알겠더라. 그런 압박을 통해 내가 단련되고, 빨라지고, 성장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때는 몰랐다. 돌아보면 삶의 스트레스가 삶의 자양분이었다.”

 국과수를 11년 다녔을 때다. 영국외무성 장학금을 신청했다. 장학금 대상자를 정하기 위해 면접을 하던 영국외무성 1등 서기관과 영국문화원장이 깜짝 놀랐다. “정말 한국에도 법과학(Forensic science·과학수사)이 있느냐고 묻더라. 또 한국 여자가 그걸 하겠다고 하니까 더 놀라더라.”

 당시 유럽에 비하면 한국 국과수의 수준은 낮았다. 국과수 내부에선 “1년씩 연수를 간 전례가 없다”며 반대도 많았다. 결국 영국행 비행기를 탔다. 런던대 킹스칼리지에서 박사 후 연수를 했다. “예전에 없던 시도에는 늘 부담이 따른다. 그런 부담이 무섭다면 우리는 새로운 땅을 밟을 수가 없다.”

 그는 영국에서 충격을 받았다. “교통사고를 분석하며 영국은 그때 이미 3D 스캐너를 쓰고 있었다. 교통사고 현장을 3D로 찍어서 입체적으로 재현했다.” 당시 우리는 사고현장 사진만 찍을 때였다. “사건현장에서 피가 튄 패턴을 보고 흉기를 사용한 방향을 분석하더라. 처음 봤다. 그런 충격이 수두룩했다. 가장 중요하게 배운 건 과학수사에 대한 선진시스템이었다.”

 그는 영국에 한국과 법과학 분야의 교류를 제안했다. 영국에서 흔쾌히 응했다. 한 해는 영국 경찰청 등 과학수사 파트에서 한국으로 오고, 다음해는 한국에서 영국으로 갔다. 6년간 그랬다. 그걸 통해 국과수의 과학수사 수준이 업그레이드됐다.

 “처음에는 모방이다. 그걸 통해 따라잡아야 한다. 따라잡은 뒤에는 창의력이다. 그게 승부를 가른다. 과학수사에서 창의력의 토대는 기초과학이다. 그게 탄탄해야 한다.”

 -지금의 한국 수준은 어떤가.

 “유전자, 마약, 영상 분석 분야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특히 유전자 검사는 60억 분의 1을 맞춘다.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래마을 영아 살해사건’ 때는 프랑스 수사기관이 깜짝 놀랐다. 국과수에서 유전자 분석을 해서 프랑스에 보냈다. 그쪽에선 ‘우리가 6개월씩 걸리는 일을 어떻게 한 달 만에 분석했느냐’며 처음에는 무시했다. 나중에 확인이 되자 인정을 하더라. 그만큼 달라졌다.”

 -미국 수사 드라마 CSI를 본 적 있나.

 “몇 차례 봤다. 드라마는 진행이 빠르다. 45분 안에 끝내야 하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건 아닌데, 저건 아닌데. 눈에 걸리는 게 많으니까 재미가 덜하더라. 실제 사건에는 ‘인간’이 더 절박하게 얽혀 있다.”

 그는 국과수에 들어간 지 30년 만에 소장이 됐다. 정 원장은 현재 법과학(과학수사) 관련 국제기관의 양대 산맥인 IAFS(국제법과학회)의 회장이자, IAFT(국제법독성학회)의 차기 회장이다. IAFS 회장을 아시아에서 맡기는 그가 처음이다.

 -큰 조직의 리더를 맡았다. 당신의 리더십, 핵심은 뭔가.

 “배려다. 리더가 앞에서 막 끌고 갈 수도 있다. 나는 좀 다르다. 상대편을 배려하면서 같이 갈 때 더 큰 힘이 나더라. 앞에서 끌고 갈 때 1의 효과가 난다면, 직원들과 한마음이 돼서 갈 때는 2나 3의 효과가 나더라. 나도 직원도 행복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당신이 보는 행복은 뭔가?”라고 물었다. 정 원장은 “자기 일에 대한 사랑”이라고 답했다. “이게 기초다. 이게 없으면 애를 쓰고, 노력하는 자체가 고통스런 일이다. 이게 있으면 다르다. 좋아서 할 수 있다. 좋으면 나중에 장인이 되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자기 일을 사랑할 때 나도 나를 인정하고, 남도 나를 인정하더라. 내겐 그게 행복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희선 원장=1955년 출생. 숙명여대 약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 IAFS(국제법과학회)의 회장도 맡고 있다.

정희선 원장의 추천서 3권

정희선 원장은 ‘0.1 %의 차이’를 강조했다. 일을 처리할 때 아주 작은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는 것이다. “국과수 직원들에게 늘 강조했다. 0.1의 차이가 100이냐, 아니면 200이냐를 가를 때가 종종 있다. 그건 정성의 차이다. 그런 차이가 큰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다. 100만 해줘도 되는데 좀 더 정성을 쏟아 101을 해주면 된다. 그럼 일의 결과도 달라지고, 사람 관계도 달라진다”고 했다.

◆아웃라이어(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김영사)=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 책에서는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1만 시간이면 하루 세 시간씩 10년 동안 어떤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 이 정도의 노력 없이는 전문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시크릿(론다 번 지음, 김우열 옮김, 살림Biz)=무엇을 간절하게 원하고, 그것을 향해 마음을 모으면 성취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생각을 책으로 펼쳐낸다는 것이 정말 근사하게 다가온다. ‘정말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은 들었지만 아주 흥미로웠다. 긍정적인 생각과 간절함이 일이 성취되게 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디테일의 힘(왕중추 지음, 허유영 옮김, 올림)=중요한 문서에서 오자가 나오면 신뢰성이 푹 떨어진다. 나사못 하나가 잘못되면 기차가 탈선한다.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에도 주의를 집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한 사례로 보여준다. 1%가 부족해서 전체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도 있고, 1%의 정성으로 200%의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⑮ 공부의 즐거움 – 가야금 명인 황병기

배우고 때때로 익히라던 공자 … 그밖에 뭐가 있나

[중앙일보] 입력 2013.12.10 00:15 / 수정 2013.12.10 00:22

자료출처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352797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⑮ 공부의 즐거움 – 가야금 명인 황병기

황병기 명인은 “가야금 탈 때는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가수 조용필도, 판소리꾼 안숙선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감정부터 빼야 한다고. 그럼 힘이 손끝에 떨어진다. 그걸 ‘혼이 손끝에 떨어졌다’고 표현한다. 가야금이 진짜 잘 될 적에는 나 자신이 그냥 신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가 제일 좋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일 서울 북아현동 자택에서 황병기(77·이화여대 한국음악학 명예교수) 명인을 만났다. 방에는 빙 둘러 가야금이 세워져 있었다. 나무와 현(絃), 그걸 켜고, 누르고, 퉁기며 그는 희로애락을 연주한다. 거기에 삶이 있다. 그가 퉁기는 건 가야금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가 보는 행복은 어떤 걸까.

 길 없는 길-. 황병기 명인은 그 길을 걸어 왔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악에 ‘창작’이란 단어는 없었다. 예부터 내려오는 악보만 되풀이해서 연주할 뿐이었다. 그게 참 못마땅했다.

 “미술이나 문학에선 계속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 국악은 안 그랬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통의 의미를 되물었다. “전통이 뭔가. 옛 것을 이어받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걸 만드는 거다. 재창조해야 한다. 그게 전통이다. 옛 것만 전수하면 그게 골동품이지.”

 황 명인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가야금을 놓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국악과가 생겼다. 그는 강사로 출강했다. 스물여섯 살 때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땅, 창작 국악의 문을 열었다. 선배도 없고, 스승도 없고, 장르에 대한 명칭도 없었다. 작품명은 ‘숲’. 굉장한 파격이었다.

 -뚜렷한 계기가 있었나.

 “서양 현대음악이 내게 충격을 줬다. 특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그랬다. 해마다 정월 초하루에 차례를 지낸 뒤 가장 먼저 이 음악을 듣는다. 올해도 그랬고, 내년도 그럴 거다.”

 ‘봄의 제전’은 1913년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됐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파격이었고, 청중에겐 혼돈이었다. 사람들은 물건을 마구 집어던 졌고, 한쪽에선 “브라보!”를 외쳤다. 조소와 야유가 빗발쳤고, 일부 찬사도 터졌다. 황 명인은 그걸 “서양 음악 사상 최대의 스캔들”이라고 불렀다.

 -국악인으로서 당신에겐 무엇이 파격이었나.

 “이 곡은 서양 고전음악의 정신을 따라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음악의 원시성을 추구했다. 음악의 원천으로 내려가려 했다. 처음 이 음악을 들었을 때 내 귀가 열렸다.”

 황 명인의 첫 작품 ‘숲’도 그랬다. 기존 국악의 양식을 좇지 않았다. ‘숲’은 서양 음악과도 달랐고, 전통 국악과도 달랐다. 기존의 흐름에 대한 파괴가 창조의 발판이 됐다. 이 때문에 “작품 하나마다 독자적인 세계를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봄의 제전’에 대해 “20세기 최대의 걸작”이라고 표현했다. “스트라빈스키를 듣고서 동시대 서양 음악을 훑기 시작했다. 60년대였다. 친구였던 백남준과 함께 서양 작곡가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자기네 음악을 흉내 내지 말라고. 독창적인 걸 하라고. 나는 그게 아주 인상 깊었다. 결국 음악에서 ‘나’를 찾으라는 메시지였다.”

 황 명인은 음악을 통해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말하는 전통 국악이란 조선의 음악이다. 그 이전은 악보가 없다.” 그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전통 이전인 고려와 신라. 우리 음악의 원시적 근원에 닿고 싶었다.

 “미술은 유형(有形) 문화재다. 그걸 통해서는 신라나 고려를 만날 수 있다. 그림이나 불상을 통해 그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음악은 다르다. 무형(無形)의 문화재다. 우리는 신라의 음악, 고려의 음악이 어땠는지 알 수가 없다. 그건 서양 음악도 마찬가지다.”

 -서양 음악은 어떤가.

 “서양은 그리스, 로마를 거쳐 중세로 내려온다. 그런데 그리스, 로마의 음악은 전혀 모른다. 서양 음악사를 보면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부터 시작한다. 실은 그게 동양에서 건너간 거다. 중동 지역의 민요 음계를 가져왔다.”

 음악이란 장르에서 신라와 고려는 돌아갈 수 없는 땅이다. 사라진 음악, 사라진 시대다. 황 명인은 74년에 ‘침향무(沈香舞)’를 내놓았다. 가야금을 통해 신라로 돌아가는 음악이었다.

 -지도도 없고, 계단도 없다. 어떻게 신라로 돌아갔나.

 “마음이 간절하면 길이 생긴다. 돌아가는 방법이 있더라. 신라시대의 유명한 불상이 있지 않나. 반가사유상도 있고, 석굴암 불상도 있다. 가령 반가사유상을 보자. 조각상은 움직이는 모습의 한 찰나를 포착한 거다. 다시 말해 움직이는 사람의 한 순간을 잡은 거다.”

 -그 순간에서 뭘 찾을 수 있나.

 “멈추어 있는 조각상을 보면 이전의 움직임과 이후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그게 신라인의 움직임이다. 또 저런 움직임에는 어떤 음악이 있어야 할까. 결국 신라 시대의 미술을 통해 신라의 음악을 찾아내는 거다.”

 ‘침향무’를 구상할 때 그는 경주로 내려갔다. “먼저 신라인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그들의 심미감을 지녀야 했다. 밤에는 별을 봤다. 경주에서 바라보는 별, 그건 1000년 전 신라인이 봤던 별과 똑같으니까.” 왕릉과 고분들 사이도 거닐었다. 발을 떼고, 발을 디디며 신라의 무드를 느꼈다. 신라의 소리도 들었다. 직접 가서 신라 때 만든 에밀레종도 쳐봤다.

 -어떤 소리였나.

 “기가 막혔다. 전세계 종소리 중에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게 에밀레종 소리가 아닐까 싶다. 종에 새겨져 있다. ‘일승원음(一乘圓音)’. 진짜 큰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으니, 소리를 한 번 들으면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는 한국전쟁 와중에 가야금을 처음 배웠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 옆에 고전무용실이 있었다. 우연히 친구 따라갔다가 가야금을 봤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역사 시간에 가야금에 대해선 배웠다. 나는 삼국시대에 있다가 이미 소실된 악기인 줄 알았다. 전설 속의 악기 같았다. 소리를 들은 적도, 사진을 본 적도 없었다.”

 그는 바로 가야금을 배웠다. 부모는 반대했다. 1년 뒤에 어머니는 군산을 거쳐 전주까지 가서 가야금을 사왔다. 그날은 자다 깨서 밤이 새도록 “애인을 보듯이” 방안의 가야금을 바라봤다. 고3 때는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사람들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어영부영 보내는 시간이 있다. 그런 시간을 뽑아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궁중이나 상류층에서 연주되던 정악과 서민의 가락인 민속악(산조)을 모두 섭렵했다. 그가 최초였다. 당시만 해도 정악이면 정악, 민속악이면 민속악. 둘 중 하나만 하던 시절이었다. “정악은 느리고, 단순하고, 명상적이다. 그림으로 따지자면 ‘문인화(文人畵)’다. 반면 민속악은 감정적이다. 희로애락의 물결치는 감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양쪽을 다 익힌 그는 가야금으로 창작 국악의 새장을 열었다. 지금껏 다섯 장의 음반을 냈다. 모두 성공적이었다. 요즘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황 명인은 “세상을 살다 보면 가장 기쁠 때가 뭔가를 배울 때더라. 그게 내겐 행복이다. 삶에서 딴 게 뭐가 있나. 나는 공자의 행복론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논어』의 한 대목도 꼽았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열심히’가 아니라 ‘때때로’라는 말이 참 좋다. 의무적으로 열심히 하는 게 아니다. 네가 할 수 있을 때, 네가 하고 싶을 때 하라는 말이다.”

 그는 가야금도 때때로 익혔다. 60년째다. 때때로의 힘은 깊고 강하다. 그를 ‘명인’의 반열에 올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때때로가 왜 강할까. 거기에는 우러나서 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가 쥔 행복의 열쇠였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황병기 명인=1936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던 해 신설된 동 대학 국악과에 4년간 출강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역임. 현재 이화여대 한국음악학 명예교수이자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음반 ‘침향무’ ‘비단길’ ‘미궁’ ‘춘설’ ‘달하 노피곰’ 등. 저서 『논어 백 가락』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오동 천년, 탄금 60년』 등.

황병기의 추천서 3권

1999년 황병기 명인은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 비참한 상태였다. 밤에 병실 창 밖으로 시계탑이 보였다. 악상이 떠올랐다. ‘탁, 탁, 탁, 탁’하는 시계 소리와 소녀들이 좋아하는 오르골 소리가 겹쳤다. 비참한 상황에 처할수록 동경하는 삶의 순수. 그는 링거를 꽂은 채 곡을 썼다. “간절함이 일 때 악상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래도 작곡가에겐 막다른 벽이 있지 않을까. 아무리 해도 돌파구가 떠오르지 않을 때 말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할까. 그는 “그건 간절함이 덜하기 때문이다. 정말 간절하면 벽을 뚫을 수 있다”고 답했다. 퇴원을 한 뒤 그는 한동안 기저귀를 차야 했다. 그런 처지에서 전국을 돌며 연주회를 했다. 이 또한 그의 간절함이었다.

◆노자와 융(이부영 지음, 한길사)=신경정신과 의사가 노자의 『도덕경』을 풀어낸다. 정신분석학 대가인 칼 융의 무의식이론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융의 입장에서 노자를, 노자의 입장에서 융을 돌아본다.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의 만남.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승효상 지음, 컬처그라퍼)=이른바 ‘빈자의 미학’으로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건축물을 보고, 거기에 담긴 삶과 사유를 읽어낸다. 건축 공부는 삶의 형식에 대한 공부이고, 건축은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한형조 지음, 문학동네)=철학교수인 저자가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불교경전 『금강경』 해설서다. 불교의 정수를 쉽고 깊이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사실은 자아의 구성물임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일깨워주고 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⑭ 아이들의 미래- 심리학자 유미숙 교수

부모가 ‘꼰대’ 소리 듣는 이유 … 문제는 과잉간섭

[중앙일보] 입력 2013.12.03 00:38 / 수정 2013.12.03 13:42

자료출처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293321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⑭ 아이들의 미래- 심리학자 유미숙 교수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유미숙 교수는 우리 아이들의 아픔에 주목한다. 그는 “심리학은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나와 타인의 관계까지 이해하기 위한 문고리다, 아이들 마음의 문을 여는 고리인 아동심리학은 더욱 그렇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떡하면 아이들을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모든 부모의 고민이다. 뾰족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 아동심리학의 고수에게 그 실마리를 물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숙명여대에서 만난 유미숙(아동복지학) 교수는 “심리학은 문고리다”고 운을 뗐다.

 유 교수는 현재 교양과목 ‘행복으로 가는 심리학’과 ‘아동심리학’을 강의하고 있다. 과목당 수강생이 1000명이 넘어 사이버 강의로 바꿨을 만큼 인기가 높다.

 - 어떤 문고리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고리다. 문고리가 없으면 어떤가. 어디를 잡아야 할지 모른다. 문을 열기도 어렵다. 심리학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문고리다.”

 - 아동심리학은 뭔가.

 “내가 어린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에 다들 자기 아이를 안다고 생각한다. 아이에 대해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가 아는 식으로 생각하고, 아는 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부모 자녀 관계가 어려워진다. 아동심리학은 아이들 마음의 문을 여는 고리다.”

 유 교수는 아이 둘을 키웠다. 자신의 아이들을 ‘두 권의 교과서’라고 표현했다. “제가 책을 읽고 논문을 쓰면서 아동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게 아니다. 제 아이들을 키우고, 상담실로 오는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아동심리학에 대한 눈이 생겼다.”

 그는 ‘수용과 허용’ 이야기를 꺼냈다. 철길 앞 신호등에서 아이 손을 잡고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기차가 오고 있다. 아이가 그걸 모르고 앞으로 가려고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

 “대부분 부모는 아이 손을 확 잡아당길 거다. ‘기차가 오는데 앞으로 나가면 어떡해?’라고 야단을 친다. 여기에는 아이의 생각에 대한 수용 과정이 없다.”

 - 어떻게 해야 수용인가.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된다. ‘으~응, 얼른 집으로 가고 싶구나. 그런데 기차가 오니까 지금 건너면 위험해.’ 우선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엄마가 알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표현해 줘야 한다. 아이의 행동 밑에 깔려 있는 욕구를 읽어주는 거다. ‘네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한다는 걸 엄마가 알고 있단다’라고.”

 - 그럼 무엇이 달라지나.

 “아이가 부모에게 신뢰감을 갖게 된다. 엄마·아빠가 내 마음을 아는구나. 부모 자식 관계에서 이건 아주 중요하다. 어린 아이만 그런 게 아니다. 사춘기나 청년기의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네가 왜 그걸 하고 싶은지 부모가 알고 있다는 걸 표현하면 좋다. 그럼 서로 신뢰감이 생긴다.”

 - 아이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줄 순 없지 않나.

 “그래서 수용과 허용이다. 아이의 욕구는 100% 들어준다. ‘아하, 네가 이런 이유 때문에 이걸 원하는구나’라고 말이다. 그게 수용이다. 가령 할머니 생신 모임에 가려고 차를 타는데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한다. 그럼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그러지? 할머니께서 기다리시니까 지금은 가야 해’라고 말해야 한다. 수용은 하지만 허용은 하지 않는다.”

 - 왜 허용은 안 하나.

 “허용은 사회적 규범과 도덕, 윤리의 울타리 안에서 가능하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너와 나, 그리고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유 교수는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대국민 담화를 한다면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알고 있다는 걸 표현해 주면 된다. ‘이런저런 요구가 있다는 걸 제가 알고 있습니다’라고 드러내서 얘기를 하고, 그 다음에 ‘본인은 이러한 이유로 이렇게 합니다’라고 말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소년들과 부모들을 각각 다른 방에 앉히고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댁의 자녀와 얼마나 대화가 됩니까. 의사소통을 얼마나 하고 있나요”를 물었다. 부모는 80%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자녀는 80%가 “우리 집은 대화가 없다”고 대답했다.

 - 차이가 크다. 무엇이 문제인가.

 “부모는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부모가 물어볼 때 아이가 대답을 했으니 대화를 한 거다. 아이가 볼 때는 다르다.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해야 할 말’만 했다.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안 했으니 대화를 안 한 것이다.”

 - 자녀와 대화가 어려운 가정이 꽤 있다.

 “청소년기에는 부모보다 더 잘 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다. 그래서 부모를 우습게 안다. 우리 엄마·아빠 자꾸 ‘꼰대’ 같아진다고 부모를 비하하며 자신이 올라가고 싶어한다.”

 -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이해는 영어로 ‘언더스탠딩(Under­standing)’이다. 아래(Under)에 서서(Standing) 상대방을 봐야 한다. 청소년기는 내가 높아지려는 심리 때문에 이게 잘 안 된다. 그래서 수용과 허용을 통해 신뢰감을 쌓는 게 중요하다.”

 유 교수는 칭찬의 방식도 지적했다. 유교 사회에선 상명하복(上命下服)의 문화가 있다. 좋은 행동, 나쁜 행동의 범위를 정해두고 좋은 행동을 할 때 칭찬한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에겐 자신의 힘으로 선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부모가 기다려줘야 한다.”

 - 아이가 선택하는 훈련이 없으면.

 “인생을 선택하는 힘이 없어진다.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닌, 부모나 사회가 바라는 인생을 살게 된다. 자신의 선택,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서 사는 어른이 못 된다. 요즘 부모들이 과잉보호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 과잉보호는 없다. 과잉간섭만 있을 뿐이다.”

 유 교수의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닐 때다. 누나의 자석필통과 동생이 받은 생일 선물을 서로 바꾸었다.

 “둘째가 막 울었다. 가서 보니 물건을 다시 바꾸고 싶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처음에 누나가 바꾸자고 했을 때 네가 좋다고 했니? 그래. 그런데 지금 다시 바꾸고 싶어? 그래서 속이 상했구나.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 대신 방에 들어가서 울어.” 아이는 한 시간쯤 울다가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을 보습학원 몇 개 더 보내는 게 중요하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선택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럼 아이가 자신의 선택에 신중해진다. 자신이 선택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회. 그게 선진국이다.”

 유 교수의 아이들은 둘 다 하버드대를 나왔다. 큰 아이는 혼자서 배낭 하나 메고 하버드대에 가서 “이 학교에 오면 나한테 뭘 해줄 수 있느냐”며 상의한 끝에 전 학년 장학금을 받아냈다.

 유 교수는 나름의 강의 전략이 있다. 첫 수업 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쓰게 한다. 학생들의 답은 대개 추상적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다들 꿈을 꾸라고 말한다. 틀렸다. 꿈은 꾸는 게 아니다. 꿈은 디자인하는 것이다.”

 - 꿈을 디자인한다. 무슨 뜻인가.

 “건축물을 디자인할 때 어떻게 하나. 일단 땅이 있어야 한다. 기술도 있어야 한다. 지식도 있어야 하고, 정보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기본이 돼서 설계를 한다.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래야 집이 100년, 1000년 간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디자인하라는 얘기다.”

 그는 학기말에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진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뭔가.’

 “그럼 학생들 대답이 달라진다. 행복을 정의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아주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는다. 수업을 듣고 자신의 전공을 바꾼 학생도 있고, 싫었던 전공이 좋아진 학생도 있다. 왜 그럴까. 스스로 꿈을 디자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꿈을 디자인하듯이, 행복도 내가 디자인하는 거다.”

 마지막으로 유 교수는 부모를 향한 조언도 곁들였다.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자란 대로 살면 아이는 결국 나밖에 안 된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삶을 살지는 못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고 했다.

 “아이가 자신을 탐색할 수 있게끔,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끔 돕는 일이다. 가끔 부모들이 묻는다. ‘무슨 학과가 앞으로 전망이 있나.’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가 정말 행복해하는 일을 하는 게 전망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미숙 교수=1956년생. 숙명여대 아동복지학 졸업. 동대학원에서 아동복지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상담심리학회 이사. 저서 『놀이치료의 이론과 실제』, 역서 『놀이치료-아동중심적 접근』 『끔찍한 것을 보았어요』 등.

유미숙 교수의 추천서 3권

유미숙 교수는 “이제 우리 사회에는 ‘건강한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 정치권은 ‘내 목소리가 크냐, 네 목소리가 크냐’만 따진다. 힘의 논리만 있다. 거기에는 나도 있고, 상대방도 있다. 그러나 나와 상대방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다. 타자가 행복해져야 나도 행복해진다는 생각까진 못 간다. 관계에 대한 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이비 브레인(존 메디나 지음, 최성애 옮김, 프런티어)=‘똑똑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동안 중점을 뒀다. 요즘은 ‘행복한 아이’를 이야기한다. 그 다음 단계는 ‘도덕적인 아이’다. 똑똑하고 행복한 아이로 키우는 것 못지 않게 도덕이 자연스레 몸에 배는 아이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라(김원석 지음, 명진출판)=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청소년들에게 남긴 메시지다. 책 제목에 명확하게 드러나듯 목표나 성취보다 과정과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하다. 삶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혜를 준다. 아이를 지도하는 사람이나 부모에게 큰 도움이 된다.

 

◆해피어(탈 벤 샤하르 지음, 노혜숙 옮김, 위즈덤하우스)=하버드대에서 행복학 열풍을 일으켰던 인기 강좌를 책으로 엮었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소소한 도움말과 숙제도 담겨 있다. 가령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행복했던 일 다섯 가지를 떠올리는 식이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⑬ ‘나’와 주체성 –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언제까지 ‘남의 똥’ 헤집을 건가 … ‘내 것’을 배설하라

[중앙일보] 입력 2013.11.26 00:23 / 수정 2013.11.26 00:30

자료출처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231677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⑬ ‘나’와 주체성 –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최진석 교수는 연구실에 있던 향을 하나 피웠다. 손가락 사이로 연기가 올라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걸 잡을 수는 없다. 노자가 물을 강조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흐르는 물은 잡을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계도 그렇다. 그걸 있는 그대로 보려면 어찌해야겠나. 이론이나 이념의 프레임을 통하지 말고, 내 눈으로 직접 현실과 접촉하면 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철학은 한마디로 ‘어떻게 살 건가’를 다룬다. 삶의 존재 이유를 천착한다. 21일 서강대 최진석(철학)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문(文)이란 글자는 원래 ‘무늬’란 뜻이다. 그럼 ‘인문(人文)’은 뭔가. 사람이 그리는 무늬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무늬를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남의 무늬만 따라서 그린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삶일까”라고 반문했다. 그에게 삶의 무늬와 행복을 물었다.

최 교수는 중국 베이징대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에서 철학이나 문화 관련 일을 할 때 돈이 없어서 못한 적은 없다. 콘텐트만 괜찮으면 돈은 마구 몰려들었다. 한국은 다르다. 문화나 철학 쪽은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할 때가 많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중국은 아직도 투박하고, 한국은 훨씬 세련됐다. 그런데도 왜 그럴까”라며 말문을 열였다.

 - 왜 그런가.

 “곰곰 생각해보니 중국은 제국을 운영해 본 나라더라. 그들은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인가를 알고 있다.”

 -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나.

 “문화와 철학이 세계를 움직인다. 제국을 운영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는 중국인들은 DNA(유전자)를 통해 그걸 알더라. 예술과 철학이 현실과 맞물려서 작동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

 - 어떤 면에서 그런가.

 “예술·철학·문화를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고급스런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태도가 아직 남아 있다.”

 - 요즘 인문학 열풍이 거세지 않나.

 “그게 뭘 뜻하겠나. 인문학적 시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이 어렵다는 얘기다. 그건 위기의식의 표현이다.”

 최 교수는 역사를 통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는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주자학을 누가 더 잘 지키고 있느냐를 따졌다.” ‘남의 기준’만 지켰다는 지적이다.

 “정작 주자학을 만든 중국은 달랐다. 송나라·원나라·명나라를 거치면서 시대적 조건이 바뀔 때마다 그들의 철학도 계속 변했다. 왜 그랬을까. 철학이 현실과 함께 호흡했기 때문이다.”

 - 조선후기 실학운동이 있지 않나.

 “그게 국가적 동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게 아쉽다. 실학이 주류가 되려면, 그걸 뒷받침하는 정치적 세력의 성장이 필요했다. 그러나 좌절됐다. 중화 사대주의에 빠진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컸다. 이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일러준다.”

 - 그런 게 무엇인가.

 “인문적 주체로 독립하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인문적 주체가 아니어도 먹고 살 형편은 됐다.”

 최 교수는 ‘인문적 주체’란 말에 힘을 실었다. “인문적 주체성이 있는 나라는 새로운 걸 창조한다. 지금껏 우리는 그런 나라가 만들어 놓은 걸 모방하고, 따라잡으며 먹고 살았다. 이런 방식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이걸 돌파하지 못하면 한국은 여기서 멈추고 만다. 멈춤은 국제사회에서 곧 후퇴를 의미한다.”

 나라와 기업뿐만 아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식이나 이론이 뭔가. 그건 사건이 남긴 똥이다.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며 다른 사람이 싸놓은 똥일 뿐이다. 지식과 이론을 배우는 건 결국 남의 똥을 헤집는 일이다. 내가 왜 남의 똥을 헤집는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비유가 재미있다. 왜 남의 똥을 헤집나,

 “언젠가 나도 내 똥 한번 시원하게 싸보려는 거다. 장자의 똥을 헤집고, 공자의 똥을 헤집고, 칸트의 똥, 마르크스의 똥을 헤집는 이유가 뭔가. 너는 똥 쌀 때 행복했겠지만, 나는 네 똥 헤집을 때 너만큼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다. 나도 당신들처럼 자신의 똥을 싸보고 싶다는 얘기다.”

 그가 세상을 보는 첫 단추는 “현실은 끊임없이 변한다”였다. 그런 현실에 대한 해석이 지식과 이론, 그리고 이념이라고 했다. “지식이나 이념을 숭배하는 건 어리석다. 현실은 끝없이 변한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지식과 이념도 ‘흘러간 사건의 똥’에 불과하다. 그걸 붙들고 숭배하면 ‘인문학적 노예’가 되고 만다. 현실은 이미 변했는데 옛날의 프레임(틀)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 최근 역사 교과서 논쟁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좌파는 ‘민족’을 주어로, 우파는 ‘국가’를 주어로 역사를 바라본다. 문제는 좌파도 1970년대의 민족 인식, 우파도 70년대의 국가 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 틀로 어떻게 2013년을 해석하겠나. 지금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도 세금을 내고, 유럽과 중국에도 세금을 낸다. 또 우리는 이미 다민족 사회로 진입했다. 2013년의 국가, 2013년의 민족을 가지고 다시 논쟁해야 한다.”

 그는 민주화를 예로 들었다.

 “1970년대의 민주화와 2013년의 민주화를 같은 개념으로 쓰면 되겠나. 이론이나 이념에 갇히면 현실의 변화를 보는 눈이 취약해진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한다. 좌파와 우파의 논쟁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이미 흘러간 이론과 이념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 ‘남의 똥’에 갇히지 않으려면.

 “인문적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책 많이 읽고, 철학자들의 말을 외워서 앵무새처럼 떠들고, 지식 많이 쌓는 게 인문적 시각이라 본다. 그게 아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인문적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인문적으로 사고하는 거다. 남의 똥 헤집는 게 아니라 내 똥을 싸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게 인문적 시각이다.”

 최 교수는 ‘간 박사’로 알려진 김정용(전 서울대 의대 교수) 박사 얘기를 꺼낸다. 김 박사는 세계 최초로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했다. 정작 우리 보건 당국에선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세계 최초라 인증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간염 백신이 나온 후에야 승인이 떨어졌다. 비로소 인증 기준이 생겼던 거다.

 최 교수는 “세계 최초로 간염 백신을 개발하고도 상용화하지 못 했다. 결국 세계시장을 놓쳤다. 이게 독립적 주체성이 없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 세계 최초가 돼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그렇다. 남들이 만든 잣대를 항상 따라갔으니까. 그 잣대를 추월하자 스스로 당황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스스로 삶의 기준이 되는 법을 몰랐던 거다. 일류는 기준을 생산하고, 이류는 기준을 수입한다. 인문적 주체는 기준을 생산하는 용기를 가진 자다.”

 최 교수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내가 ‘우리’속으로 용해되면 절대 안 된다. 내가 ‘나’로 남아 있어야 한다. 수업 중에 학생들이 질문할 때 이렇게 말한다. ‘이게 맞는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최 교수는 잠시 웃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거다. 질문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나의 관심과 호기심을 나타내면 그걸로 100점이다. 자신의 욕망을 좇으며 살아야 한다.”

 - 자기 욕망이라면.

 “스티브 잡스가 누굴 위해 살았나. 미국을 위해 살았나. 가족을 위해 살았나. 잡스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았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았다.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인류를 끌고 가는 모든 창의적 활동은 자기 욕망에서 나왔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게 자기 욕망이다. 그걸 찾아야 한다.”

 - 어떻게 찾나. 이기적인 건 아닌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해야 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고정돼 있다. 반면 ‘하고 싶은 것’은 움직인다. 역동적이다. 세계는 끝없이 변한다. 둘 중 어느 쪽이 세계의 변화와 맞물려서 돌아갈 가능성이 크겠나. 삶을 명사(名詞)로 살지 말고 동사(動詞)로 살아야 한다. 고정된 프레임을 통해 세계를 보는 사람은 세계가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최 교수에게 행복도 결국 같은 의미였다.

 “인간은 자기를 실현할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 왜 그런가. 내가 ‘나’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로 사는 것, 삶에서 그 이상의 가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최진석 교수의 추천서 3권

최진석 교수는 “노자는 ‘자기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한테 천하를 맡기라’고 말했다. 천하에 대한 헌신도 자기 삶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되란 얘기다”고 설명했다.

철학자와 늑대(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추수밭)=이성과 지성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삶의 역동성과 야성을 잃게 한다. 이 책은 이론의 구조물로 남은 철학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걸 통해 인간이 도달하고자 했던 궁극의 지점을 일깨워 준다. 삶에서 이미 정해진 것들을 핥는 개가 아니라, 자신의 힘과 의지를 발산하는 늑대가 되는 길을 보여준다.

마음 혁명(김형효 지음, 살림)=현대철학자인 저자는 동서고금의 사상을 소화한 후, 자신만의 빛을 보여준다. 절대 진리의 설교보다 고요히 본성으로 귀향하는 사유를 더 중시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절대 진리가 해체되는 시절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욕망의 자발성이 내뿜는 숨결에 대해 깊이 되묻게 된다.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 데이터는 알고 있다(빅토르 마이어 쇤버거·케네스 쿠키어 지음, 이지연 옮김, 21세기북스)=구체적인 세계의 변화 내용을 담지 못하는 사고가 과연 튼실할까. 우리의 경제 상황과 사회, 그리고 삶을 급속도로 변화시키는 신무기는 빅 데이터다. 빅 데이터의 실용적 기능이 확대되면서 진리를 생산하는 형식이나 세계관 자체가 급변하고 있다. 다른 세계, 다른 인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⑫ 정약용의 실학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알았다면 행동하라 … 기쁘지 아니한가

[중앙일보] 입력 2013.11.19 00:20 / 수정 2013.11.19 00:20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⑫ 정약용의 실학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이사장은 “다산은 제자에게 독서를 강조했다. ‘만약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만 뜻을 두고서,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치려 한다면, 죽어서 시체가 식기도 전에 벌써 이름이 없어질 것이다. 이는 새나 짐승의 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책을 읽지 않고 살기를 원하는가’라고 되물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네스코는 지난해 장 자크 루소(프랑스사상가), 클로드 드뷔시(프랑스 작곡가), 헤르만 헤세(독일 문학가)와 함께 다산(茶山)정약(1762~1836)을 기념 인물로 선정했다. 동양에선 다산이 유일했다. 그가 지은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돼 있다. 이제 다산은 세계가 평가하는 인물이다.

18년 유배 생활에 530여 권의 저서로 답한 인물, 고통의 세월을 삶의 가치로 치환해버린 사람. 그가 정약용이다. 40년 넘게 정약용을 연구 중인 다산연구소 박석무(71) 이사장은 “다산을 알면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산을 알고도 미치지 않는다면 그가 바로 미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를 통해 다산을 만났다.

 박석무 이사장은 유학자 집안에서 자랐다. 어릴 적 사랑방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며칠씩 묵고 가기도 했다.

 “나는 밥 심부름과 술 심부름을 했다. 사랑방에서 늘 들리던 이야기가 경(經)과 사(史)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중에 보니 경전은 철학이고, 역사는 삶이더라. 다산의 공부도 철학과 삶이었다.” 박 이사장은 서당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덕분에 다산의 한문 원전을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언제 다산에 빠졌나.

 “대학 다닐 때였다. 5·16 군사정권 치하였다. 다산의 ‘애절양(哀絶陽)’이란 시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왜 충격을 받았나.

 “한 농부가 있었다. 다산의 시대에는 사람 머리 수에 따라 세금을 내는 인두세였다. 갓 낳아 탯물도 마르지 않은 아이에게 세금을 내라고 했다. 농부가 낼 돈이 없자 관청에선 소를 끌고 가 버렸다. 소는 그의 전 재산이다. 결국 농부는 칼을 갈아 자신의 생식기를 잘라버렸다. 당시에는 피임법이 없었다. 우둔한 백성이 애를 안 낳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애절양’이다. 양을 자른 것을 슬퍼하노라.”

 박 이사장은 당시의 충격을 설명했다.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비판적 시인들이 등장했다. 엄혹했던 시절에 김지하와 고은, 양성우 등이 시를 썼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 다산처럼 뼈 아프고 적나라하진 못했다”고 했다. 박 이사장도 민주화 운동을 하며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정치를 못해도 어떻게 이렇게 못할 수가 있느냐. 이런 메시지가 담긴 거다. 왕조국가에서 어떻게 그런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걸 가능하게 했나.

 “성리학자들은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마음 속에 있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다산은 달랐다. 현실 생활에서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가 인의예지라고 봤다. 다산은 실현가능성이 없으면 학문이 아니라고 했다. 유배지에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쓴 편지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어떤 대목인가.

 “‘너희 어머니와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에게 효도를 해라. 너희가 효를 실천하면 나는 여기서 죽어도 좋고, 유배가 풀리지 않아도 좋다. 실천되는 것만 보면 나는 행복하고 기쁘다.’ 다산은 사서육경(四書六經)이 마음 속의 이치라는 논리를 없앴다. 대신 현실에서 행동할 수 있는 걸로 바꿔버렸다. 그게 다산학이다. 그래서 다산학이 실학(實學)이다.”

 주자학은 당시 조선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였다. 12세기 남송(南宋)에서 생겨났지만, 600년 세월이 흐른 18세기에도 조선은 털끝 하나 고칠 수 없다며 주자학을 신봉했다. “조선의 학문에 ‘학(學)’자를 하나 붙인다면 ‘퇴계학’도 아니고, ‘율곡학’도 아니다. ‘다산학’이다. 퇴계와 율곡은 주자의 학문을 변주했다. 다산은 주자의 성리학 체계를 엎어버렸다. 이(理)라는 관념의 세계에서 벗어나 공자와 맹자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다산이 황해도 곡산 부사로 있을 때였다. 고을에 산적떼가 출몰했다. 박 이사장은 “다산의 산적 문제 해결책을 보면 그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결했나.

 “무작정 산적을 소탕하지 않았다. 먼저 민첩한 아전 몇을 산적 소굴로 보냈다. 이들이 왜 산적이 됐고,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해 오도록 했다. 결국 산적과 관아의 아전이 연결됐기 때문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산적은 요즘으로 치면 조직폭력배였다. 조폭이 강력계 형사들과 공생하는 셈이었다. 다산은 산적을 치지 않았다.”

 -그럼 누구를 쳤나.

 “산적과 연결된 아전들을 모두 쳐버렸다. 그러자 산적 문제는 저절로 없어졌다. 나중에 산적 몇을 잡았지만 문책하지 않았다. 가서 농사를 지으라며 돌려보냈다. 만약 다산이 산적 소굴만 공격했더라면 근본적인 문제를 풀지 못했을 거다. 다산은 늘 원리를 먼저 파악하고, 그걸 현실에 접목했다.”

 다산은 유학자였다. 동시에 탁월한 행정가, 교육학자, 역사학자, 토목공학자, 기계공학자, 수학자, 지리학자, 의사, 법학자, 시인이자 화가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통섭과 융합의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했다. 축성(築城) 경험이 없던 다산은 정조가 “10년 안에 지으라”던 수원 화성을 34개월 만에 완공했다. 치밀한 설계 계획과 거중기 등 첨단 건축장비를 고안한 덕분이었다. 뿐만 아니다. 천연두가 창궐하자 종두법도 내놓았다. 임금이 위독할 때 의사로서 두 번이나 궁중으로 불려갔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전문가 수준으로 넘나든다. 통섭형 인간이다. 다산의 공부법, 그 비밀이 뭔가.

 “『논어』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란 말이 나온다. 학(學)은 배우는 거고, 습(習)은 익히는 거다. 그런데 다산은 ‘학은 배움이고, 습은 행함이다’고 풀이했다. 학문은 현실 속에서 실천할 때 비로소 터득된다는 뜻이다. 이게 다산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이었다.”

 다산은 자신의 배움을 끊임없이 현실에 대입했다. 박 이사장은 “다산은 ‘배운 걸 실천할 때 인간의 마음이 기뻐진다’고 했다. 당시에는 ‘행복’이란 용어가 없었다. 다산은 ‘기쁠 열(悅)’자로 표현했다. 이게 바로 다산의 행복론이다”고 설명했다.

 28세 때 문과에 급제한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궁궐에 소장된 귀한 서적을 다산에게만 모두 빌려주도록 특별 지시할 정도였다. 다산은 암행어사,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거쳤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천주교인을 박해한 신유교옥에 연루돼 40세 때 유배를 당했다.

 다산의 삶은 고통의 범벅이었다. 셋째 형 약종과 매형 이승훈은 형장에서 죽었다. 둘째 형 약전은 흑산도에서 16년간 유배 생활을 하다 죽었다. 다산은 18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하도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발목의 살이 벌어졌다. 세 번이나 복숭아 뼈가 보였다고 한다. 결국 53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다산은 지독한 삶의 고통을 지독한 기쁨으로 치환했다.

 박 이사장은 국회의원을 두 차례 역임했다. 그의 정계 은퇴 이유에도 다산이 있었다. 2002년 열린우리당의 전남 무안 지역 출마자로 그가 내정됐다. 당선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때 박 이사장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짧은 성명서도 냈다. 제목이 ‘다시 다산으로 돌아가며’였다. “돌이켜봐도 그건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국회의원 배지를 포기할 만큼, 다산 연구는 매력적이고 보람찬 일이다.”

 그는 현재 성균관대 석좌교수다. 2004년부터 꼬박 10년째 ‘다산과 리더십’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선 ‘명품 강의’로 통한다. 학점과 상관없이 다시 듣는 학생도 있다. “다산은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말을 잘 썼다. 그건 높은 산에 올라가 함성을 지르는 게 아니다. 다산은 자신이 아는 걸 행동으로 옮기는 게 ‘호연지기’라고 했다. 그럴 때 우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게 다산이 말한 행복이다.”

박석무 이사장의 추천서

박석무 이사장은 “다산은 학문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과학의 기본이 뭔가. 수학, 물리, 화학, 생물이다. 이런 학문이 건축학이나 기계공학의 바탕이 된다. 다산은 그걸 꿰뚫어 봤다. 그래서 ‘산학서(算學署)’라는 수학 연구 기관을 정부기구로 설치하자고 주장했다. 온갖 공업 기술의 정교함이 수리에 근본을 두고 있음을 안 거다. 아인슈타인도 처음에는 수학자였다”고 말했다.

다산시선(정약용 지음, 송재소 역주, 창비)=2500수가 넘는 다산의 시에서 현실성과 역사성이 뚜렷한 400여 수를 골라 번역하고 주를 낸 다산의 시선집이다. 다산시를 전공한 송재소 교수는 30년 전에 초판을 출간했는데 이번에 50여 수를 추가하고 글도 새로 다듬고 개정판을 냈다. 다산의 철학과 사상이 시로 응축돼 있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19세기 견문지식의 축적과 지식의 탄생(홍한주 지음, 김윤조·진재교 옮김, 소명출판사)= 상·하 두 권으로 번역한 이 책은 조선후기 학자의 견문과 지식이 얼마나 넓고 컸던가를 알게 해준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도 놀랍지만, 역주자들의 꼼꼼한 번역과 착실한 주석이 마음에 든다. 조선이란 전통사회와 동아시아 학술 문화의 이해를 원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정선 목민심서(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역주, 창비)=다산의 『목민심서』는 공직자들의 바이블로 불린다. 48권을 6책으로 완역했던 창비에서, 6책의 핵심적인 내용만 고르고 압축하여 정선(精選)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목민심서』의 중요한 내용과 의미가 살아 있다. 읽기 간편하고 내용도 충실하다.

◆ 박석무=1942년 전남 무안 출생. 전남대 법대와 동대학원 졸업. 민주화 운동으로 네 차례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 있을 때도 다산을 파고 들었다. 13·14대 국회의원,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등을 지냈다. 현재 다산연구소 이사장이다. 저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 1·2』 『다산 정약용의 일일수행 1·2』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편역서 『다산 산문선』 등.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⑪ 영화감독 대해 스님(조계종 국제선원장)

왜 상처에 매달리나 … 우리는 무한행복 연출자인데

[중앙일보] 입력 2013.11.12 00:25 / 수정 2013.11.12 00:40

자료출처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107390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⑪ 영화감독 대해 스님(조계종 국제선원장)

대해 스님은 깨달음을 설명하는 데 영화의 힘을 활용한다. “삶은 한 편의 영화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속성을 이해할수록 삶에 대한 연출의 힘이 강해진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의 시대다. 잘 빚은 영화 한 편은 평생에 남는 감동을 준다. 우리 삶도 그런 영화처럼 흘러갈 수 있을까. 행복과 불행을 내다보며 지혜로운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조계종 국제선원에서 만난 대해(大海·54) 스님은 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해 스님은 독특하다. 언뜻 조합이 잘 되지 않는 영화와 수행을 짝지어왔다. 지금껏 인생연출법을 일러주는 단편영화 76편을 만들었다.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당신의 영화는 하나의 장르다”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에게 인생과 영화, 둘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물었다.

 - 스님은 출가자다. 왜 영화인가.

 “이 세상을 아름답고 푸르게 만들기 위해서다.”

 - 영화 한 편 만든다고 세상이 푸르게 되나.

 “필름으로 찍는 영화만 영화가 아니다. 각자의 삶이 한 편씩의 영화다. 나의 삶이 푸르러지면 세상이 푸르러진다. 나는 삶이라는 영화의 연출법을 영화로 만든다.”

 - 실제 연출 포인트가 있다면.

 “대부분 실화가 바탕이다. 신도들의 고민을 상담하며 있었던 일을 스크린에 옮긴다. 가령 ‘본질의 시나리오’는 유산 상속을 둘러싼 형제간 갈등을 다뤘다. ‘무엇이 진짜 나인가’는 소년원을 드나들던 깡패대장의 이야기다. ‘이해가 되어야 살이 빠진다’는 비만을 소재로 했다. 과식의 원인을 어릴 적 못 먹었던 기억 등 내 마음에서 찾아내는 스토리다. 영국평론가 데이브 와트슨은 ‘자기 가족이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살을 뺐다’고 했다. 독일 뮌헨의 병원에서 비만환자 500명을 치료 중인 의사도 ‘환자들에게 보여주겠다’며 영화 테이프를 구해 갔다. 이처럼 영화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고쳐나가려 한다.”

 - 각자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찰나찰나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래서 한 편의 영화다. 다들 자신의 삶을 연출하며 살고 있다. 때로는 감독, 때로는 배우, 때로는 관객이 되면서 말이다.”

 - 누구의 삶은 비극이 되고, 누구의 삶은 해피 엔딩이 된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기나.

 “멋진 영화를 만들려면 연출력이 뛰어나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삶을 살려면 연출력이 좋아야 한다. 그 연출의 힘에 따라 삶은 비극도 되고, 희극도 된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 말하면서도 연출법은 불행한 쪽으로 쓸 때가 많다.”

 스님은 인생연출법의 핵심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한마디로 요약했다.

 “종이를 한 장씩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글을 써서 보고픈 사람에게 편지를 보낸다. 또 어떤 이는 큰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운다. 결국 종이는 물에 젖고, 배에 탄 사람은 바다에 빠지게 된다. 왜 그런 일이 생기나. 종이의 속성을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기 때문이다.”

 - 종이의 속성이란 뭔가.

 “생명의 속성이다. 나라는 존재, 주위의 사람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모두 거대한 하나의 생명이다. 그 생명의 속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스님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더 쉽게 풀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나무와 돌, 사람과 감정 등 모든 현상계가 색(色)이며, 그런 색의 속성은 공(空)이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순간순간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 삶이 공(空)이라면 허무하다.

 “텅 비어 허전한 공이 아니다. 비어 있기에 무한창조과 무한소멸이 가능하다. 자유롭게 창조하고, 자유롭게 소멸할 수 있을 때 지혜로운 삶을 연출할 수 있다.”

 대해 스님은 인간의 상처를 예로 들었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찾아와서 ‘이 상처는 무덤까지 안고 갈 것 같다’고 하더라. 안타까웠다. 그 여성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럼에도 원치 않는 고통을 평생 안고 가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연출하고 있더라. 상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처는 색(色)이다. 색의 속성은 공(空)이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 사라지지 않는 상처도 있지 않나.

 “쓰레기를 태우면 다 소각된다. 그게 상처의 속성이다. 그런데 어떤 쓰레기 조각은 타지 않고 이리저리 굴러 다닌다. 그게 남아서 내 속을 오염시킨다.”

 - 그런 상처를 소각하려면.

 “아무리 큰 상처도 스스로 사라지는 속성이 있다. 아픈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이 상처는 공(空)하다. 없는 거다’라고 계속 생각하라. 그럼 상처가 있던 자리에 이 생각이 대신 입력된다. 상처는 놓아 버리면 없어진다.”

 스님은 법회에서 초등학생에게 소멸성을 가르친 적이 있다. 남들 앞에만 서면 많이 떨던 아이였다. 학교에서 발표대회가 있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극도로 긴장했던 아이는 ‘그래, 소멸성을 써야지’라며 떨리는 마음을 없애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거짓말 같이 떨리는 마음이 없어졌다고 했다. 결국 1등을 했다. 그 후에는 겁이 없어졌다. 어떠한 감정도 소멸시킬 수 있다는 원리를 스스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없애고 대신 용기를 얻었다.”

 대해 스님은 2007년부터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영국·오스트리아·러시아·룩셈부르크·아르메니아 등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서 30회 이상 수상했다. 이탈리아·러시아에선 감독기념전까지 열렸다. 상업영화처럼 매끄럽게 포장되지 않았어도 영화에 담긴 인생연출법은 강렬하다.

 “러시아에서 한 관객이 다가오더니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타르코프스키의 고향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영화를 보려고 시골마을에서 트럭을 몰고 8시간이나 눈길을 헤치고 달려왔다고 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86)는 인간의 구원을 영화로 다뤘던 러시아의 거장이다.

 - 다들 멋진 영화처럼 살고 싶어한다.

 “차(茶) 창고가 있다고 하자. 차를 만드는 온갖 재료와 도구가 다 들어 있다. 창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필요할 때마다 재료를 꺼내서 원하는 차를 만들어 먹는다. 모르는 사람은 어쩌겠나. 지금껏 해왔던 식으로만 차를 만든다. 설사 그게 오염된 차라 해도 말이다.”

 - 그런 차 창고가 어디에 있나.

 “사람들은 밖에서 찾는다. 차 창고는 내 안에 있다. 거기에 인생이란 시나리오의 연출법이 다 들어 있다.”

 - 내 안에 있다는데 왜 안 보이나.

 “공(空)이라서 안 보인다. 사람들은 옷은 보면서 그 바탕인 천은 못 본다. 천을 보려면 어떡하면 되겠나. 옷을 놓으면 된다. 그게 소멸성이다. 내가 붙들고 있는 옷을 다 놓으면 천이 드러난다.”

 스님은 피아노 교사를 통해 중증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고교생을 지도한 적이 있다. 관찰력이 없어 처음에는 어려워했다. 피아노도 기계적으로 건반만 마구 두드렸다. 그리고 몸살이 나기 일쑤였다. “너처럼 건반을 마구 두드리면 쇼팽이 좋아할까. 쇼팽은 악보에 어떤 마음을 담았을까. 피아노는 마음으로 친다. 손은 마음을 나타내는 도구일 뿐이다.”

 이렇게 가르치자 학생은 건반에 쇼팽의 마음을 싣기 시작했다. 결국 일반 대학의 음대에 합격했다. 주위에선 깜짝 놀랐다. 스님은 “먼저 악보를 통해 쇼팽의 마음을 보게 했다. 그게 관찰성이다. 그럼 나의 마음과 쇼팽의 마음이 통하는 불이성(不二性)을 알게 된다. 결국 학생이 자신의 마음을 연출하는 창조성을 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이러한 생명연출법을 바탕으로 ‘대안교과서’도 만들었다. 국어·수학·생물·과학·미술·음악 등 여러 과목을 생명의 속성을 통해 풀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백야영화제에서 만난 커리큘럼 담당자로부터 “러시아 학생들을 교육시켜 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지난달 상트 페테르부르크 학교장 및 교육관계자들에게 1차 교육을 했고, 학생 프로그램도 진행키로 했다. 스님은 “자신의 삶을 3류 영화로 만들 건가,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 건가. 그건 생명의 연출법을 아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대해 스님의 추천서 3권

대해 스님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다르지만 생명의 본질은 하나다. 우주 전체가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다. 누구나 삶을 원하는 대로 창조하고, 소멸시키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내게 영화는 그런 뜻을 담는 그릇이다”고 말했다.

◆길 없는 길(최인호 지음, 여백)=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인 경허(鏡虛·1846∼1912) 스님의 치열한 구도 역정과 깨달음, 전법(傳法) 및 흥미진진한 일화 등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박진감 있게 전해준다. 경허라는 위대한 선승의 일대기를 통해 불법의 광대하고 심오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백유경(가사나 지음, 조기영 옮김, 지만지)=『백유경』(百喩經)은 5세기경 인도의 비구 상가사나 스님이 고대 인도의 구비설화를 모아서 편찬한 경전이다. 다른 경전들처럼 난해하지 않으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비유와 풍자를 통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글이다.

◆대해(大海) 스님=1959년 전북 남원 출생. 조계종 국제선원 선원장. 사단법인 ‘영화로 세상을 아름답게’ 이사장과 UNICA(세계비상업영화인연맹) 한국지부 회장을 맡고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무엇이 진짜 나인가’‘이해가 되어야 살이 빠진다’ 등 단편영화 76편 제작. 저서 『생명의 연출』은 영어·불어·독어·러시아어로 번역됐다. 『대방광불화엄경(80권)』 『금강경』 『육조단경』 『능엄경(10권)』 『대승기신론』 『신심명』 등을 이해하기 쉽게 우리말로 풀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⑩ 전통 건축과 소통 – 김개천 국민대 교수

사방으로 탁 트인 정자 … 마음의 문지방을 걷어내야

[중앙일보] 입력 2013.11.05 00:21 / 수정 2013.11.05 01:25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⑩ 전통 건축과 소통 – 김개천 국민대 교수

서울 국민대 명원민속관에서 김개천 교수가 정자 난간에 기댔다. 그는 “정자는 창도 없고, 문도 없고, 벽도 없다. 그래서 안과 밖이 통한다. 이 시대에는 전통의 현대화가 아니라 현대의 전통화가 필요하다. 현대가 주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건축은 인문학이다.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이다.” 서울 정릉동 국민대 연구실에서 만난 건축가 김개천(54·실내디자인학) 교수의 소신이다. 그에게 집은 곧 삶이다. “어떤 집을 지을 건가라는 물음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와 맥이 통한다”고 했다. 건축은 공학이자 동시에 철학이며, 좋은 집은 좋은 인생과 같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김 교수는 개천절에 태어났다. 이름도 ‘개천(開天)’이다. 하늘을 여는 일, 자연을 여는 일이다. 그는 건축에서도 그런 소통을 찾고 있었다.

– 동국대 선학과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당신에게 집은 무엇으로 보이나.

 “숨 쉬는 생명체다. 나는 ‘살아있는 집은 어떤 형식일까’라는 물음을 자주 던진다. 일종의 화두처럼 됐다. 인류가 예전에 만든 집은 죽어 있는 집일지도 모른다.”

 - 집이 죽어 있다니.

 “닫혀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주택과 저택, 성(城)을 보면 알 수 있다. 외부와도, 자연과도 차단됐다. 기본적으로 외부의 무언가를 막기 위한 거다. 폐쇄적이다. 서양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도 그렇다. 담도 높고, 창도 작다. 밖에서 안이 안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에게 ‘죽은 집’은 안과 밖에 뚜렷한 금을 긋고, 집과 자연을 분명하게 나눈 집이다. 안은 안이고, 밖은 밖일 뿐, 둘은 통하지 못한다.

 - ‘살아있는 집’은 뭔가.

 “기본적으로 열려 있는 집이다. 그게 숨 쉬는 집, 생명이 있는 집이다.”

 - ‘열려 있다’라고 했다.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집이다. 자신의 것이 있으면 지키려 한다. 웅크리고, 벽을 치고, 담을 쌓는다. 그 안에 사는 사람도 바깥과 단절되고 만다.”

 - 우리 전통 한옥은 어떤가.

 “한옥도 외부로부터 안을 보호하려는 성격은 있다. 그런데 한옥은 닫힌 구조를 상당히 깨트리려고 한다. 한옥에서 열린 건축의 가능성을 본다.”

 - 한옥에서 가장 열려 있는 구조물은 뭔가.

 “정자(亭子)와 사랑채다. 정자는 자연 속에 홀로 있다. 기둥과 지붕만 있다. 방이 있지만, 문도 없고 창도 없다. 정자와 자연, 둘 사이에는 어떠한 문지방도 없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비유비무(非有非無) 형식이다.”

 - 사랑채는 어떤가.

 “바깥 주인이 머물던 사랑채는 집 바깥으로 나와 있다. 주로 대문 옆에 따로 있다. 반면 안주인이 머물던 안채는 뒤로 들어가 있다. 안채는 닫힌 구조지만, 사랑채는 열린 구조다.”

김개천 교수가 설계한 한 칸집 조감도. 삼면이 열리는 유리로 돼 있고, 실내는 미닫이문으로 방의 크기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김 교수는 책상 위에 도면을 하나 펼쳤다. 올 초 경기 양평에 지은 23평짜리 한 칸 집이다. 집의 북쪽은 벽이고, 나머지 세 면은 열리는 유리였다. 내부는 더 독특했다. 미닫이 문이 가로, 세로로 집의 내부를 가로질러 자유롭게 왔다갔다한다. 방의 크기와 방향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그는 “여름에는 시원하게 큰 방을 만들고, 겨울에는 따뜻하도록 방을 작게 만든다. 해가 뜰 때는 방이 동향을 보게 하고, 해가 질 때는 석양을 보며 식사를 한다. 평수는 작은데 크기는 무한대다. 아이디어를 정자 건축에서 얻었다”고 설명했다.

 - 우리는 행복을 얘기하려 한다.

 “다들 행복의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 동안 건축도 그랬다. 저 멀리 ‘행복’이란 깃발을 설정해 놓고 달려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깃발은 항상 저 멀리 있기 때문이다. 깃발만 좇다 보면 눈앞의 현실을 놓치게 된다. 나는 오히려 ‘행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럼 무엇이 있나.

 “무언가 다른 이름으로 있다. 성취랄까, 만족이랄까, 아님 달콤함, 때로는 슬픔도, 불편함도 행복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있는 것들이다. 총체적으로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멀리, 따로 설정해 둔다. 우리가 현실에서 행복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 왜 그런가.

 “눈앞의 현실이 평가절하되고 무시되기 때문이다. 현실이란 항상 ‘부족한 상태’다. 그런 ‘부족한 상태’가 모인 게 우리의 삶이지 않은가.”

 김 교수는 건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례로 세계적인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는 “좋은 건축이란 우주의 핵처럼 순수한 형식이다. 적을수록 풍성해진다(Less is more)”고 말했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20세기 대표적 건축가’로 꼽히는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1887~1965)는 “좋은 건축은 투명한 순수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둘 다 근대적인 방식이다. 정답을 정해두고, 그걸 추구하는 식이다. 근대는 그걸 요구했다. 지금은 다르다. 건축에 정말 정답이 있을까. 나는 거기에 의문을 던진다”고 했다.

 - 불교식 수행을 닮았다.

 “가령 아파트를 보라. 예전의 딱딱 짜인 공식과 틀, 표준화한 정답을 주려 했다. 거기에 편리함과 편안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살아보니 어떤가. 갑갑하다. 획일화한 구조는 지루하다. 장점이라 여겼던 편리함이 이데올로기 비슷하게 굳어진 측면이 크다. 실생활은 다르다. 사람들은 주말만 되면 나무를 찾아서, 공원을 찾아서, 자연을 찾아서 밖으로 나간다. 오히려 집에 있기 힘든 집이다.”

 - 그렇다고 자연에서만 살 수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건축’은.

 “한식 밥상을 보라. 오첩·칠첩 반상에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나온다. 어떤 순서와 조합으로 먹을지 정해진 건 없다. 가지 수의 조합이 무한한다. 밥을 먹고, 김치만 먹을 수도 있다. 굴비가 한 점 얹어지면 또 달라진다. 다시 말해 형식이 자유롭다. 서양식은 다르다.”

 - 어떻게 다른가.

 “순서대로 똑같이 먹어야 한다. ‘고기를 어떻게 구울까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한식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바삭한 고기를 좋아하면 딱딱한 부분을 집어 먹으면 된다. 싫으면 먹지 않아도 된다. 좋은 건축도 그런 거다. 필요에 따라 무한히 변화하는 건축이다.”

 실제로 그는 부산에 지은 한 아파트에도 이런 생각을 적용했다. 문을 어떻게 이동하느냐에 따라 방의 크기가 달라지는 구조였다.

 - 왜 무한변화가 중요한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이건 무조건 A다’하고 고정하면 곤란하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울수록 좋다. 이불을 펴면 침대가 되고, 걷으면 방이 되는 식이다. 딱히 내 것이 없기에 가능하다. 아무리 좋아도 계속 보면 질린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람도 그런 변화와 맞물릴 때 생동감이 있다. 집은 사람을 위한 거다.”

 그는 한마디로 정의했다. “건축은 인간의 삶과 꿈을 담는 배경이다.” 인간이 주인공이지, 건축이 주인공은 아니라고 했다. 건축은 정답을 주지 않고 배경이 될 뿐이다. “인간의 본성이 가장 자유롭고, 편안하게 발현되는 배경이 되는 집. 그게 이상적인 건축이다. 인문학도 건축이다. 정답 대신 배경이 되면 된다. 그걸 배경으로 꽃은 내가 피우는 거다.”

 김 교수는 “꽃을 가만히 보라”고 했다. “꽃은 억지로 찾아내서 피워 올린 게 아니다. 장미의 본성이 흘러나온 거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인문학은 삶의 배경이다. 그 위에서 자신의 본성이 흘러나오는 삶을 살면 된다. 그게 우리의 꽃이다. 굳이 행복이란 게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김개천 교수의 추천서

김개천 교수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자기 고집이 없다. ‘이것만 돼’하는 자기 주장이 없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좋은 건축에는 자기 주장이 없다. 그래서 계속 움직인다. 자신의 경계가 없다. 느슨하고, 유연하게, 무한히 열린다”고 말했다.

건축과 철학(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 동문선)=프랑스의 지성 장 보드리야르와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이 토론한다.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현대적 현상들의 허구와 한계에 대해 짚는다. 그들은 ‘진정한 창작의 전제 조건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급진적·즉각적·창의적이어야 하며, 축적된 유산을 극복하는 일로서 특이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신착란병의 뉴욕(램 쿨하스 지음, 김원갑 옮김, 태림문화사)=미국 뉴욕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만성이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된 건축들이 만들어낸 도시’다. 공공을 부르짖는 건축가들로부터 무시돼 왔던 곳이다. 그러나 거만함과 폭력적인 이유로 제한 없는 풍부한 콘텐트를 만들어낸다. 각 계층의 욕구표출과 해방감이 하나로 담긴 뉴욕을 들여다 본다.

월간 론리 플래닛(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지구촌 곳곳을 다룬 여행전문지. 창의적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에는 기를 살려주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과 질문하는 능력, 독립성을 들 수 있다. 인문학의 시작은 세상을 보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잡지는 관념의 세계로 안내하지 않는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게 하는 실용서이자 안내서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즐거워진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개천 교수=1959년 부산 출생. 미국 패서디나 아트센터에서 환경디자인으로 학사, 중앙대 대학원에서 건축학으로 석사, 동국대 선학과 박사 과정 수료. 현재 국민대 실내디자인학 교수. 대표 건축물로 서울 목동의 조계종 국제선센터, 백담사 만해 마을(한국건축가협회상) 등이 있다. 올해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근정포장을 받았다. 저서로『명묵의 건축』 『미의 신화』등이 있다.

PISA 2012 결과 뒤집어보기

<월요논단> PISA 2012 결과 뒤집어보기

 
2012년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2012) 결과 OECD 국가 중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았던 핀란드 학생이 성적만 크게 하락한 것이 아니라 학교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학생 비율 또한 바닥권으로 나타나 핀란드 교육계가 비상이다. 핀란드 언론은 심지어 ‘핀란드 교육의 황금기는 끝났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일본 학생이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크게 학력이 저하돼 일본 역시 충격에 빠졌고 결국 ‘유도리 교육’을 포기하고 교육개혁의 방향을 바꿨다.

최고 성과에도 비판받는 교육

이제 OECD가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를 실시한 이래 계속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국가는 우리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언론은 학생의 학교 흥미도가 조사 국가 중에서 꼴찌라 우리 교육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이제는 학생이 행복한 교육, 입시가 아닌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 인성을 아우르는 전인교육 등이 나가야 할 방향이란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것은 성적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면서 아이들이 행복한 창의·인성교육이 꽃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말 그대로 모두가 도달하고자 하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교육 유토피아다.

언제나 지금처럼 우리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좋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요즘같이 학생 행복과 인권, 창의력과 인성 중시 교육을 강조하다 보면 일본이나 핀란드처럼 학생 학업성취도의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더구나 최근 정부는 초?중등 교육에 대한 공교육비 지원을 줄이는 추세니 학생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날은 더 빨리 올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교육계는 일본이나 핀란드 교육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비난과 수모를 겪게 될 것이다. 최고 학업성취도는 의미가 없다고 하던 언론들이 가장 앞장서서 한국교육에 대해 조사(弔辭)를 읊어댈 것이다.

물론 지나친 경쟁위주의 입시교육은 문제다. 하지만 뛰어난 수재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즉,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이끄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언론이 지적하듯 학령기 학생이 꿈꿀 시간마저 주지 않는 극단적 상황이 문제다.

2013년 타임즈의 베스트셀러로 꼽힌 아만다 리플리(Amanda Ripley)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들’이라는 그녀의 저서에서 한국 교육에 대한 한국 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배워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 학교가 학생에게 어려움과 지겨움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인내력(endurance)과 주어진 과제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강인한 추진력과 투지(perseverance) 등을 성공적으로 길러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점 살리면서 탈출구 찾아야

미국, 대만, 일본 등 소득 2만 불을 넘어선 국가의 학생 상당수는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다. 풍족한 그들은 게임을 통한 재미 추구, 컴퓨터를 통한 자료 획득의 즉시성과 편리성에 젖어 있다. 그러다보니 졸업 후 자기 입맛에 맞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고, 찾더라도 자신들이 생각한 것처럼 즐겁거나 쉽지 않아 아예 그만두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만일 행복한 학교, 창의력과 인성을 기르는 교육을 실시하면서 그동안 우리 교육이 학생들에게 길러주었던 덕목은 소홀히 한다면 학생들의 성적 추락의 날은 더 빨리 다가오게 될 것임을 핀란드와 일본 교육은 잘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교육이 잘 해왔던 것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 그 강점을 살리면서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PISA 결과를 통해 우리 교육계가 얻어야 할 시사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