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⑨ 자연의 순리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새도 절로 깨닫는다 … 화려한 나방엔 독이 있다는 걸

[중앙일보] 입력 2013.10.29 00:55 / 수정 2013.10.29
00:59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⑨ 자연의 순리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새가 나는 걸 가르치는 광경 본 적 있나. ‘이렇게 날아라,
저렇게 날아라’는 잔소리도 없다. 어미는 그냥 ‘후르륵’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럼 새끼도 날아본다. 나무에서
떨어지고, 다시 기어올라가서 날아본다. 어미새는 계속 기다린다.”

 24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최재천(59·국립생태원장) 교수를
만났다. 그는 동물생태학의 권위자다. 10여 년간 정글을 누비며 동물생태학을 연구한 적도 있다. 동물의 세계를 공부하며 그가 터득한 지혜는
뭘까. 양쪽을 넘나드는 그에게 동물과 인간, 그리고 행복을 물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 천장에는 기러기 모빌이 달려 있다. 줄을 당기자 날갯짓을 했다. 최 교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부 아프리카의 침팬지는 견과류를 돌로 깨 먹는다. 어미가
깨트리면, 새끼도 따라 한다. 실수 연발이다. 바닥의 돌이 평평하지 않아 견과류가 자꾸 굴러서 떨어진다. 그래도 어미는 말없이
지켜본다.

 최 교수는 “‘도대체 몇 번이나 가르쳐줘야 알겠니?’라고 짜증 내지 않더라. 무한한 인내심으로 지켜본다. 그럼 어느
순간 자식이 그걸 터득한다. 그때부터 새끼는 혼자 앉아서 깨 먹기 시작하더라”고 말했다.

 그런 시행착오가 새끼에게는 고통이자,
방황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그런 고통과 방황은 굉장히 중요하다. 새끼들은 그걸 통해서 성장한다. 인간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아름다운
방황’이 필요하다.”

 이 말 끝에 최 교수는 자신의 고통과 방황을 꺼냈다. 그는 재수 끝에 서울대 동물학과에 들어갔다. 의예과를
지망했지만 두 번이나 떨어졌다. 자존심 상한다며 빈 칸으로 남겨둔 2지망에 담임선생이 동물학과라고 써넣었다. 전공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대학
4년간 방학만 되면 만사를 제쳐 두고 강릉의 시골집으로 달려갔다. 하루 종일 개울과 바다에서 뛰어 놀았다. 그럴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늘 우울했다. 졸업 후 취업과 진로가 막막했기 때문이다.”

 1977년이었다. 아버지에게 미국 유학을 가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극도의 내핍 생활을 하면서 4형제를 키우는 형편이었다.”

 그는 1년치 학비만
대달라고 했다. 그 다음에는 손 벌리지 않겠다, 죽더라도 거기서 죽겠다는 말까지 했다. 며칠이나 졸랐다. “아버지께서 저를 똑바로 보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쌓아둔 돈이 없다. 장남이니까 잘 알지 않느냐. 만약 넷 중에서 누구 하나를 택해서 투자를 해야 한다면 그게 너는
아니라는 걸, 네가 알지 않느냐.”

 그 말은 그의 가슴에 박혔다. 재수에다 2지망에 붙은 그와 달리 동생들은 대학에 착착
합격했다. “아~, 지금도 그 말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너무나 아프게 제 가슴을 찔렀다.” 결국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뒀다. 퇴직금의
일부를 떼 그에게 줬다.

 그는 울었다. 출국하는 김포공항 안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배웅 나온 선후배들은 “유학길이 아니라 도살장에
끌려가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나는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미국땅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죽어라고 공부했다. 돌아보면 그런 고통이 나를 성장케
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생태학 석사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생물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 왜 공부로 길을
정했나.

 “내가 정말 원하는 학과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한때는 꿈이 시인이었다. 대학 때는 사진동아리 ‘영상’을 만들어 초대
회장도 했다. 3학년 때 그런 직함이 무려 9개였다. 오지랖이 넓었다. 수업도 거의 안 들어갔다. 내겐 방황이었다. 4학년이 되니까 ‘그래도
전공이 뭔지는 알아야지’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연구실에 들어갔다.”

 어느 날 낯선 미국인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타대
조지 에드먼즈 교수였다. 그와 엿새 동안 전국을 돌았다. 미국인 교수는 하루살이를 채집했다. 개울에 들어가 유충을 병에 담는 동안, 그의 아내는
나무그늘에서 책을 읽었다.

 “관광도 안 하고, 다른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더라. 하도 그래서 서울 올라가는 길에 용인민속촌
이야기를 꺼냈다. 볼만하다고. 아내에게 묻더니 가보자고 하더라. 그때는 민속촌 들어가는 길에 아름다운 개울이 있었다. 거기서 차를 세우더니 또
하루살이를 채집하더라. 결국 해가 떨어져 민속촌은 가지도 못했다.”

 이튿날 조선호텔로 갔다. 에드먼즈 교수가 맥주를 한 잔 샀다.
서툰 영어로 물었다. “할아버지는 뭐 미쳤다고 이 나라까지 와서 관광도 안 하고, 개울물에서 그 짓만 하다가 가세요?” 몇 번 만에 질문 의도를
알아챈 에드먼즈 교수가 답했다. “네가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은 내게 102번째 채집국이다. 나는 솔트레이크 시티의 산중턱에 산다.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학교에 간다. 플로리다에 별장이 있고, 너도 봤지만 아리따운 금발의 아내도 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무릎을 꿇었다. “정확하게 선생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저는 그게 불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어떡하면 됩니까?” 에드먼즈 교수는 종이를 꺼내 미국
대학 목록 9개와 교수 이름을 썼다. 1순위가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교수였다.

 -왜 무릎을 꿇었나.

 “나는 자연
속에 잠길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걸로 밥 먹고 살기는 불가능한 줄 알았다. 그래서 취업과 미래만 생각하면 우울해졌다. 그런데 정확하게 그렇게
사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내겐 ‘길’이었다. 그 길로 가고 싶었다.”

 -자연 속에 잠길 때가 왜
행복한가.

 “중3 때부터 안경을 꼈다. 내겐 조금 신경질적으로 렌즈를 닦는 버릇이 있다. 얼룩이 지면 못 참는다. 그래서 비 맞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열대에 가면 다르다. 비를 맞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안경에 얼룩이 져도, 속옷까지 흠뻑 젖어도 상관없다.
그냥 너무 행복하다. 공항에서 문 열고 나올 때 ‘후~욱’하고 몰아치는 후텁지근한 열대의 공기가 좋다. 정글에 가면 더 행복하다. 뱀 지나가지,
개미핥기 나오지, 개구리도 튀지, 나비도 날고. 정신이 없다. ”

 최 교수는 종종 산골학교에 가서 강연을 한다. 청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방황을 해라. 그걸 통해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악착같이 찾아라. 그게 아름다운 방황이다. 이건 방탕과 다른 거다. 눈만
뜨면 이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일을 무지 열심히 하면서 굶어 죽은 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면 오솔길이 아니라 거대한 신작로가 눈 앞에 뻥
뚫리는 순간이 온다. 그럼 좌우 보지 말고 뛰어라. 그 길로 곧장 가라. 거기에 행복이 있다.” 그는 자신도 ‘누군가의 에드먼즈 교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아름다운 방황에는 ‘따뜻한 방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식이 작은 상처라도 입을까, 전전긍긍하는 요즘
부모를 향한 일침이기도 했다. “화려한 나방은 독소가 있다. 새들도 안다. 그런데 갓 어른이 된 새는 모른다. 일단 먹어보고, 다시 게워낸다.
그 후에는 독소가 없는 호랑나비도 안 건드린다. 아이들은 아픔과 게워내는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방황할 때 막지 말고, 따뜻하게 방목해
달라.”

 마지막으로 그는 자식교육을 통닭에 비유했다. “그렇고 그런 통닭 만들려면 닭장에서 사육해 납품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
맛있는 놈 한번 만들어 보려면 풀어서 키워야 한다. 물론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면 안 되니까 최후의 줄은 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따뜻한
방목이다. 쫄깃쫄깃하고, 살코기에 온갖 짜릿한 맛들이 다 들어 있는 놈. 방목해야 그렇게 큰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재천 교수=1954년 강원 강릉 출생. 서울대
동물학과 졸업,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생태학 석사와 하버드대 생물학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 전임강사, 미시건대 조교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17일 초대 국립생태원장에 임명됐다. 『인간과 동물』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을 냈다.

최재천 교수의 추천서

최재천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며 7년간 기숙사 사감생활을 했다.
하버드대에선 공부는 물론, 봉사활동과 클럽활동까지 훌륭하게 소화해야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일정이다.

 “이건 정말 맨입으로 알려줄 수 없는 건데”라며 운을 뗀 그는 “뛰어난 학생들을 유심히 봤더니 노하우가 있더라. 모든
스케줄을 10일 앞당겨서 하더라. 그게 그들이 하버드에서 살아남는 비결이더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장대익
지음, 바다출판사)=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통섭형 인재를 키우고 있는 장대익 교수는 인간을 우주에 내보내는 것도 과학이지만, 인간의 존재 이유와
유래를 알려주는 것도 과학이기 때문에 “인문학은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오래된 연장통(전중환 지음, 사이언스북스)=우리나라 최초의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는 이 책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여 음악·문화·종교·도덕은 물론 섹스와 음식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의 진화를
맛깔 나게 설명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은 그 옛날 우리 조상의 삶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진화한 것임을 이해하면 가지런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폴 블룸 지음, 문희경 옮김, 살림)=행복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설명에
무언가 미흡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왜 우리가 집착하고 몰입하는지를 철학과 심리학은 물론 행동경제학 이론까지 동원하여 포괄적으로
분석한다. 식탁·침대·가게 등 다양한 사례를 들며 욕망하는 인간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천착한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⑧ 역사의 울림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공자도, 사마천도 울었다 … 세상의 ‘平’을 위하여

[중앙일보] 입력 2013.10.08 00:49 / 수정 2013.10.08
00:56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⑧ 역사의 울림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편지에 자녀 교육법이 담겨 있다. 네가 관심이 있으면 스스로
연구를 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될 때까지 한번 해보라는 거였다. 오늘 날에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얼굴에 때가 끼면 씻어야 한다. 그래서 거울이 필요하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도 마찬가지다. 너와 나의 삶에, 사회 시스템에, 국가의 방향에 때가 끼면 거울을 봐야 한다.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만난 이덕일(52) 소장은 “그 거울이 바로 역사다”고 말했다. 그에게 역사 속에서 피고 졌던 숱한 인물의 삶과 울음,
그리고 행복을 물었다.

 -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하나.

 “사람들은 역사학을 흘러간 것, 과거에 대한
학문으로 알고 있다. 그건 오해다. 역사학은 앞으로 다가올 것, 미래에 관한 학문이다. 역사학은 미래학이다.”

 - 뜻밖이다. 왜
미래학인가.

 “과거는 선택할 수가 없다. 이미 지나갔으니까. 미래는 선택할 수가 있다. 아직 안 왔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선택의
상황에 설 때마다 주저하고 갈등한다. 이걸 선택하면 어떤 결과가 닥칠지, 저걸 선택하면 또 어떨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결과가 보인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가 있다.”

 - 역사를 보면 왜 결과가 보이나.

 “역사 속에는
기승전결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그리고 선택, 그에 따른 결과까지 다 있다. 그러니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국가에게도 얼마나
좋은 참고서인가.”

 - 역사는 현실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인가.

 “그렇다. 그래서 역사서에다 ‘거울 감(鑑)’자를
쓰는 거다. 『동국통감』(東國通鑑·단군 조선부터 고려까지 다룬 조선 전기의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중국 북송의 역사서)를 만들 때도 다
‘거울 감’자를 썼다.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거다. 그게 역사서다.”

 이 소장은 기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물음을
던졌다. “왜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보며 앉아 있나?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를 선택한 거다. 그래서 미래가 현실이 된 거다.” 미래에 대한 선택은
현실이 되고, 다시 과거가 된다는 설명이었다. 과거가 된 역사는 다시 미래를 선택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과거-미래-현재-과거는 이렇게 서로
맞물리며 돌아간다.

 - 역사 속에는 숱한 거울이 있다. 그런데도 현실 속 정치인이나 대통령들은 과오를 범한다. 그건 왜
그런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으면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역사 속에서 엎어진 사례는 많다. 엎어진
길 위에 또 엎어지고, 그 위에 또 엎어지는 거다. 그걸 전철(前轍)이라고 부른다. 그게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다. 앞서 간 수레가 엎어지는 걸
빤히 보면서도 사람들은 그 길로 간다.”

 그럼 역사 속에서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 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이 소장은 먼저
조선시대 정조를 꼽았다.

 “정조가 평가받기 시작한 건 20년이 채 안 된다. 예전에는 ‘영·정조 시대’라고 하면서 영조의 부속
인물처럼 나왔다. 그런데 요즘은 정조의 독자성이 부각되고, 영조는 과대 포장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인재를 널리 등용하려던 영조의 탕평책은
형식적이었다. 정조는 정말 조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했던 인물이다.”

 - 정조가 왜 대단한가.

 “그는 슬픈
인물이다. 아버지(사도세자)를 죽인 노론 세력과 정치를 해야 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회 의석 300석 중 250석 이상이 노론이었다. 기득권
세력이자 아버지를 죽인 정당이었다. 그래도 정조는 정치를 파행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를 했다. 초인적인 노력이었다. 정조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왕이라고 시간이 남아도는 건 아니었다. 새벽에 일어나 대비에게 문안하고, 아침에 경연(經筵)하는
조강(朝講), 그 사이에 정사를 보고, 낮에 하는 주강(晝講), 저녁에는 석강(夕講), 그리고 밤에 야강을 했다. 공부도 하고 정책토론도 하는
자리였다. 지방관이 올라오면 만나고, 상소도 봐야 했다. 그리고 오후 9시부터 2시간 동안 비로소 책 읽는 시간이 생겼다. 그럼에도 정조의
독서량은 어마어마했다.

 “임금의 하루를 기록하는 승지는 궐문이 열리기 전, 새벽에 출근했다. 정조가 새벽 출근하는 승지에게 이런
말을 한 기록이 있다. ‘너희가 힘들다고 하는데, 나만큼이나 힘들겠느냐.’”

 - 정조가 그린 조선은 어떤
나라였나.

 “정조도 유학자였다. 유학적 이상사회의 기본은 경제적 평등이다. 이게 없으면 사기라는 걸 다 알지 않나. 그렇다고
공산주의처럼 다 같이 생산하고, 다 같이 나누자는 식은 아니다. 최소한 한 가정이 정상적인 생활을 자발적으로 유지할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고
봤다. 정조가 수원 화성을 만들 때 범람하던 개천을 막아서 큰 저수지를 만들고, 그 아래 대규모 농장을 만들어 수원 백성에게 나누어 줬다.
백성의 중산층화를 지향했던 거다. 중산층이 된 백성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어야 사회가 안정된다고 봤다.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다.”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다면 조선이 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소장은 “그럼 정약용이나 이가환 같은 시대의
천재들이 판서나 정승급으로 성장했을 거다. 정조의 아들(순조)이 수렴청정을 안 받았을 거고, 임금의 군대인 장용영도 해체되지 않았을 거다. 그럼
조선의 국방이 더 강해졌을 거다. 정약용 같은 인물이 계속 정조의 개혁 정책을 추진해 나갔더라면 조선은 달라졌을 거다”며
아쉬워했다.

 역사에는 시대적 흐름이 있다. 그 흐름과 호흡을 주고 받는 건 중요하다. 그래야 낙오되지 않는다. “동양 최초의
역사서가 공자의 『춘추』다. 공자가 그걸 쓴 이유가 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어서다. 공자가 『춘추』를 쓰자 천하의
난신적자(亂臣賊子·나라를 해치는 신하와 부모를 해치는 아들)들이 비로소 두려움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소장은 동양적 사고에서 인문 정신의
최고봉은 ‘불평지명(不平之鳴)’이라고 했다.

 - 불평지명, 무슨 뜻인가.

 “세상이 평(平)의 세상이 돼야 하는데
아닌 거다. 그래서 울음을 우는 거다. 그게 불평지명이다. 개인을 위해서 우는 작은 울음이 아니고, 천하를 위해서 우는 큰 울음이다. 그게
역사학이고 인문학이다.”

 - 그럼 불평지명은 ‘불평(不平)’을 위한 게 아니라 ‘평(平)’을 위한 건가.

 “그렇다.
『춘추』를 쓴 공자도, 『사기』를 쓴 사마천도 불평지명을 했다. 결국 세상의 평(平)을 위해서다.”

 - 개인의 삶도 하나의
역사다. 거기에도 불평지명이 있나.

 “물론이다. 나라의 역사만 역사가 아니다. 개인에게도 역사가 있고, 집안에도 역사가 있다.
나라의 역사가 어긋날 수 있듯이, 개인의 역사도 어긋날 수 있다.”

 - 어긋나면 어떡해야 하나.

 “공자는
성인(聖人)이란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학은 인간의 학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런데 실수가 되풀이되면 습관이 된다. 그럼 개인의 역사도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그때는 울어야 한다. 뼈저린 자기 반성을 통해 스스로 울어야
한다. 개인의 삶, 개인의 역사에도 불평지명이 있다. 통렬한 자기반성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 속에는 자신을 향해서도, 사회를
향해서도 그렇게 울었던 사람들이 있다. 이 소장은 그들을 ‘역사를 연구하다가 눈이 마주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성호
이익(1681~1763), 이익의 종손 이가환(1742~1801), 다산 정약용(1762~1836), 다산의 형 정약전(1758~1816),
하곡 정제두(1649~1736), 연암 박지원(1737~1805) 등을 꼽았다. 당대의 천재들이라고 했다.

 “밥 먹고 사는 건
정말 중요하다. 맹자도 ‘유항산 유항심(有恒産 有恒心)’이라고 했다. 먹을 게 있어야 마음이 유지된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돈이나
권력을 삶의 1차 목표로 삼는 건 다르다. 그게 과연 행복일까.”

 - 역사가로서 당신의 행복은 뭔가.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추구하는 거다. 좌파다, 우파다가 아니다. 우리 사회공동체 전체를 위해 올바른 길이다. 그리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비판적
견지를 유지하며 불평지명을 하는 거다.”

 - 역사 속의 인물들은 무엇이 행복이라고 했나.

 “그들의 삶이 말하고
있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할 때 인간은 행복하다고 말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덕일=1961년 충남 아산 출생. 학창 시절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고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숭실대에서 역사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책과 강연, 그리고 연구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역사를
지향해왔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객관적 사료에 근거해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어왔다. 저서 『왕과 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조선 왕을 말하다』 『근대를 말하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 등.

이덕일 소장의
추천서

이덕일 소장은 “역사에서 얻는 위로는 본질적”이라고 말했다. “역사
속에는 길을 찾던 인물들이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그들과 눈이 마주친다. 그들의 삶은 내게 위로를 준다. 그런데 약간은 슬픈 위로다. 그들의
개인적 삶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역사는 결국 말해주더라. 그들의 가치가 옳았음을 말이다.”

◆조선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김종성 지음, 역사의 아침)=인문학은 시대의 주류에게 주목하면서, 동시에 그 사회의 가장 하층민들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한다. 이게 없다면 관념의 유희로 전락하고 만다. 이 책은 인간이되 물건으로 취급받았던 조선의 노비들에게 인생과 세상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한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정창권 옮김, 사계절)=미암(眉巖) 유희춘(1513~77)이 쓴 『미암일기』를 풀었다.
그는 사화(士禍)에 연루돼 20여 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이때의 공부가 자산이 돼 해배(解配) 후 크게 성장했다. 사대부 부부의 일상 속
속살에서 이들이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하곡 정제두(김교빈 지음, 예문서원)=주자학 유일사상 사회였던 조선 후기에 스스로 양명학의
길을 걸어간 하곡(霞谷) 정제두(1649~1736). 그의 삶과 사상을 11명의 학자가 다양한 각도로 조명했다. 일반 독자가 읽기에 조금 어려운
논문들이다. 주류의 길을 버리고 스스로 이단의 길을 걸어갔던 한 학자의 일생과 만나게 된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⑦ 동양신화의 재발견 –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손오공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희로애락 고리 끊으러

[중앙일보] 입력 2013.10.01 00:52 / 수정 2013.10.01
01:01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⑦ 동양신화의 재발견 –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정재서 교수는 동양신화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자연과 연결될 때 우리는 외롭지 않다. 치유도 된다. 요즘
부는 캠핑 열풍의 바닥에도 그게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흔히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로마 신화를 떠올린다.
현대사회에서 서양신화가 주도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양에도 신화가 있다. 서양신화에서 찾을 수 없는 매력도 있다. 나와 자연, 그리고
우주가 어깨동무를 하는 풍경이다. 27일 정재서(61·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를 만났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동양신화 전문가다. 그에게 신화와
인간을 물었다.

동아시아 신화에서 인류의 조상으로 불리는 복희(오른쪽)와 여와 남매. 허리 위는 인간, 아래는 뱀이다. 대홍수 뒤에 둘만
살아남자 부부가 됐다.

 - 왜 신화가 생겨났나.

 “인류가
벌거벗고 살았을 때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폭풍이 몰아치고, 홍수가 나고, 화산이 폭발했다. 고대 인류는 자연의 폭력을
두려워했다. 그런 공포에 대한 해결책이 스토리, 곧 신화였다.”

 - 신화가 그걸 어떻게 해결했나.

 “해 속에 누가
있고, 달 속에 누가 산다는 식으로 인간과 자연을 동일시했다. 그게 무섭기 짝이 없는 자연과 화해하고, 갈등을 조절하게
했다.”

 - 신화는 그들의 현실에서 왔나.

 “물론이다. 신화는 생생한 현실에서 왔다. 공상에서 온 게 아니다.
원시인들이 여유가 어디 있었겠나. 오늘 당장 나가서 먹거리를 못 구하면 굶어 죽을 판인데. 절박했다. 우리에겐 동화로 들리지만, 그들에겐 현실을
해석하는 과학이었다.”

 옛 고구려 벽화에는 ‘반인반수(半人半獸·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가 그려져 있다. 소머리를 한 인간.
‘농사의 신’으로 불리는 염제(炎帝) 신농(神農)이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도 소머리 인간이 나온다. 왕비가 황소와 교접해 낳은 미노타우로스다.
정 교수는 “이 둘의 차이가 동양신화와 서양신화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 왜
그런가.

 “서양신화는 ‘반인반수’를 괴물로 봤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타우로스는 사람도 잡아먹었다. 출생도 불순하다.
나중에는 아테네의 영웅이 미노타우로스를 격퇴했다. 이뿐만 아니다. 메두사·켄타우로스(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스핑크스 등 서양의
반인반수는 다 그렇다.”

 - 왜 괴물로 봤나.

 “그리스는 인간 중심의 사회였다. 인간이 표준이었다. 그들은 신을
그릴 때도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스 신은 건장하고 잘 생긴 남성,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동물은 열등한 존재였다.
그런 사람과 동물이 섞이니 반인반수는 나쁜 존재였다.”

 - 그럼 동양신화는 어땠나.

 “동양 신화의 신들은 반인반수가
많다. 하지만 달랐다. 동양에선 그게 괴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물=자연’이라고 봤다. 그래서 반인반수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 혹은 합일을
의미했다.”

 - 구체적인 예를 들면.

 “동아시아 신화에서 인류의 조상은 복희(伏犧)와
여와(女<5AA7>)다. 고구려 벽화에도 있다. 대홍수 뒤에 그 둘만 살아남았다. 그들은 하반신이 뱀이다. 그래도 동양에선 그들을
괴물로 보지 않았다. 뱀은 생식력이 뛰어나고, 번식을 잘했다. 게다가 껍질을 벗고 영원히 산다고 믿었다. 인간보다 낫다고 믿었다. 오히려
신성시했다.”

 요즘 아이들은 이 그림을 보며 ‘괴물’이라고 말한다. 정 교수는 “우리가 서양신화에 익숙해져 상상력의 표준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신화는 인간을 중심에 두었다. 동양신화에서 중요시한 건 달랐다. 자연과 화해하고, 다른 생명과 공존하는 것이었다.
모든 생명이 촘촘한 관계망 속에서 연결돼 있다고 봤다. 여기에 어떻게 소외가 있고, 단절이 있겠나. 그런 생명의 연대성, 생태적 감수성이
동양신화에 담겨 있다.”

 - 우리는 왜 소외와 단절을 느끼나.

 “요즘 유행하는 노래 가사를 들어봤다. 거기에는
자연이 없더라. 달도 없고, 새도 없고, 바람도 없더라. ‘내가 너를 좋아한다. 그러니 다 줄게.’ 뭐, 그런 투다.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장치가 없다. 나와 자연이 단절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기는 외로움이나 상처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더 외롭고, 더
아프다.”

 - 자연이 끼어들면 달라지나.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를 보자. ‘펄펄 나는 저 꾀꼬리/암수 서로
정답구나/외로워라 이 내 몸은/뉘와 함께 돌아갈꼬.’ 나의 외로움을 자연에 한 번 담갔다가 꺼내보라. 그럼 담백해진다. 자연이 들어올 때 인간의
감정이 여과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의 춘화(春畵)도 그렇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 옆에는 항상 나무가 있거나, 바위가 그려져
있다.”

 - 그건 왜 그런가.

 “자연을 함께 보면서 음탕한 생각이 조절되는 거다. ‘즐겁되 음란하지 않고, 슬프되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게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이다. 자연에는 그런 조절의 기능, 치유의 기능이 있다. 자연 혹은 우주와
동일한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 동양에선 그걸 인간의 생존 조건이라 봤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신화에도 그런 생태적 감수성이 담겨
있다.”

 요즘 인기 있는 여신은 ‘비너스’나 ‘헤라’다. 대부분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이다. 100년 전만 해도 달랐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서왕모(西王母)’를 좋아했다. 서왕모는 서쪽 곤륜산에 사는 불사(不死)의 여신이다. 여인의 모습인데 호랑이 이빨에 표범
꼬리를 한 반인반수다.

 “허난설헌은 서왕모의 광적인 팬이었다. 시도 쓰고, 자신과 동일시할 정도였다. 궁중에선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는 ‘서왕모 춤’이 있었다. 사람들은 집안의 병풍에도 서왕모를 그렸다.”

 서왕모에 얽힌 신화가 있다. 주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는 주목왕이 곤륜산으로 서왕모를 찾아간다. 불길이 치솟는 염화산을 지나, 새의 깃털마저 가라앉는 약수라는 강을 건너서 서왕모를 만나는
이야기다. “서왕모 신화는 나중에 ‘서유기’로 연결된다.”

 - 서왕모 신화와 서유기의 끈은 뭔가.

 “3000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00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 게 선도 복숭아다. 하나만 먹어도 1만8000살을 산다. 손오공이 따먹고 난리를 쳤던 그
복숭아 밭, 반도원의 주인이 서왕모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후에 ‘서왕모 신화’가 ‘서유기’로 옷을 갈아입었다. 구도가 똑같다. 신화적 원형은
시대를 거치며 계속 옷을 갈아입는다.”

 - 두 이야기의 메시지는 뭔가.

 “서왕모는 서쪽 곤륜산에 산다. 손오공도
서쪽으로 불경을 구하러 간다. 곤륜산에는 불사의 복숭아가 있다. 손오공이 도착한 영산에는 불경이 있다. 그게 불사약이다. 영원성을 상징한다.
결국 구원을 찾는 거다. 서왕모 신화의 불길이 치솟는 염화산은 서유기에도 등장한다.”

 - 그럼 손오공은 뭘
의미하나.

 “원숭이는 흔들리기 쉬운 자아를 뜻한다. ‘의마심원(意馬心猿)’이란 말이 있다. ‘생각은 말처럼 날뛰고, 마음은
원숭이처럼 까분다.’ 손오공은 우리 자신을 상징한다. 손오공이 요괴와 싸우는 건 내 안의 욕망을, 희로애락을 하나씩 깨부수는 거다. 그걸 통해
서쪽으로 가는 거다.”

 - 그 길이 치유의 과정인가.

 “그렇다. 겉으로는 지상의 행로지만, 실은 마음의 행로다.
신화에서 영웅은 항상 길을 떠난다. 여행이 곧 치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중국에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안긴
가오싱젠(高行健)의 『영산(靈山)』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실의에 빠진 지식인이 신비의 산을 찾아간다. 문화대혁명 이후 구심점이 빠져있던 중국이
새로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작품은 81장으로 돼 있다. 『서유기』에는 81난이 나오고, 노자의
『도덕경』도 81장이다. 신화는 이런 식으로 변주가 되는 거다. 영화 ‘반지의 제왕’도 그렇다.”

 - ‘반지의 제왕’이 신화와
관련 있나.

 “그렇다. 게르만 신화가 바탕이 됐다. 그 신화에도 절대반지와 여행이 등장한다. ‘해리포터’도 마찬가지다. 영국
켈트족 신화에서 나온 거다. 서양의 온갖 마녀 신화가 현대적인 옷으로 갈아입은 거다.”

 - 동양신화 속에 흐르는 인간의 행복은
어떤 건가.

 “나와 자연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음을 아는 거다. 그걸 통해 자연의 리듬과 같이 사는 거다. 그래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자연과 우주와 연결된 생명임을 아는 거다. 거기에는 상처와 고통에 대한 자연 치유력이 흐르고 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재서 교수=서울대에서 중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했다.
중문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현재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로 있다.
신화학과 도교학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상상력을 풀고 있다. 저서로 동양 신화를 분석·정리한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 신화의 세계』 등이
있다.

정재서 교수의 추천서

정재서 교수는 “설화 ‘선녀와 나무꾼’을 보면 선녀가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 인간과 자연을 잇는 거다. 또 ‘견우와 직녀’ 신화는 천제의 딸 직녀와 소몰이꾼 견우의 사랑담이다. 서양의 ‘신데렐라’처럼 결혼이
상하 계층간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고대 동양사회에서도 그게 중요했던 거다”라고 말했다.

◆신화의
(조셉 캠벨·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이끌리오)=미국의 저명한 신화학자 조셉 캠벨과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의
대담집이다. 신화의 본질·의미·기능 등에 대해 쉽게 설명한 책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신화가 지니는 치유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누워서 노니는 산수(이종묵 편역, 태학사)=조선시대의 산 수유기 중 걸작을 뽑아 번역과
해설을 한 책이다. 옛사람이 자연을 찾아 노닐던 생각·감흥 등을 읽다 보면 각박한 현실을 사는 우리의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채근담(홍자성 지음, 조지훈 옮김, 현암사)=마음을 다스리는
중국 명나라 때의 고전이다. 유교·불교·도교의 교훈과 격언을 담고 있다. 자연의 도리·수양·처세 등에 대한 내용을 쉬운 예화를 들어 설명한다.
‘동양의 탈무드’로 불리는 지혜의 책이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⑥ 천문학의 지혜 – 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

우리 안에 쌓인 138억 년 우주 나이테 … 매 순간이 귀하지 않나

[중앙일보]
입력 2013.09.25 00:15 / 수정 2013.09.25
00:44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⑥ 천문학의 지혜 – 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에서 홍승수 원장이 목성 모형 앞에 섰다. 홍 원장은 “과학을 한다는 건 겉으로 보이는 사실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흥=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우주의
이치를 궁리하는 게 천문학이다. 인간의 천품을 공부하는 건 인문학이다. 12일 전남 고흥군 나로도에서 만난 홍승수(69·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 원장은 “하늘의 패턴을 보다 보면 인간의 패턴이 보인다”고 말했다. 138억 년(빅뱅 이후 우주의 나이)이란
우주의 무늬를 들여다보면 채 100년을 살기 어려운 인간의 무늬가 보이는 걸까. 그에게 우주와 인간, 그리고 행복을 물었다.

 홍 원장은 우선 ‘인간의 패턴’을 풀었다. 어렸을 때였다. 그는 아버지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캄캄한 밤, 보름달이 자꾸만 따라왔다. “그게 굉장히 무서웠다. 뛰어도 보고, 멈추어도 봤다. 그래도 돌아보면 달이 계속 따라왔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달이 왜 자꾸 쫓아와요?” 아버지는 “넌 아직 어려서 설명을 해줘도 모른다”고 했다.

 이런 게 씨앗이
됐을까. 그는 고3 때 서울대 천문기상학과를 지원했다. 담임선생은 “어떻게 밥 먹고 살려고 하느냐”며 입학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집에선
공대나 의대를 가라고 했다. 고집을 부렸다. 결국 입학했다.

 1967년 대학을 졸업했다. 군대를 갔다 오니 막막했다. “천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었다. 국내 천문학 여건은 엉망이었다. 미국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께선 돌아가셨고, 집안은 망했다. 빚만 잔뜩
있었다. 비행기표 살 돈도 없었다. “처참했다. 아무리,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불가능했다.”

 그는 무작정 서울시청
앞 반도호텔로 갔다. 거기에 외국항공사들 사무실이 있었다. “내가 미친 거다. 너무 답답해서 그 앞을 오갔다. 너무 막막해서 그냥 서 있었다.”
그때 누가 어깨를 툭 쳤다. 문리대 동창이었다. “왜 여기 있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친구는 “문제없다”며 그의 손을 잡고 노스웨스트 항공사
사무실로 갔다.

 결국 그는 외상으로 표를 구했다. “가난한 유학생을 위해 외상으로 표를 주는 제도가 있었다. 믿기질 않더라.
1971년이었다. 그런 게 있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친구는 해외 입양일을 하던 펄벅재단에 있었다. 덕분에 그걸 알고 있더라.” 그는
두툼한 수표책을 받아서 미국에서 돈이 생길 때마다 10불씩, 20불씩 갚았다.

 그는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과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우주천문학연구소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78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교수가
됐다.

 “마흔다섯이 되던 정월 초하루였다. 갑자기 ‘야~, 앞으로 내가 살 시간이 살아온 것보다 짧겠구나’ 싶었다. 고민이
되더라. 앞으로 어떻게 살 건가. 그래서 나의 시간축을 살펴봤다. 지나온 삶을 차분하게 복기(復棋)해 봤다.”

 - 복기를 했더니
어땠나.

 “당시에는 몰랐다. 삶의 고비마다 어떤 터닝 포인트가 있더라. 거기서 삶이 이쪽으로 꺾어지고, 저쪽으로 꺾어지고 했더라.
그런데 그때마다 내가 도저히 기대도 안 했고, 상상도 안 했던 인물이 나타나 결정적인 기여를 해줬더라. 그때는 그게 중요한 줄도 몰랐다. 고마운
줄도 몰랐다. 이 사건이 왜 나한테 터졌나 그 고민만 했다. 그런데 복기를 해보니 알겠더라. 거기에는 어떤 흐름이 있더라. 삶을 관통하는 도도한
흐름이 있더라. 그런데 이 우주에도 그런 도도한 흐름이 있다.”

 ‘인간의 패턴’을 말한 홍 원장은 이제 ‘우주의 패턴’을 꺼냈다.
“빅뱅으로 우주가 처음 생겨났다. 그때 우주에는 수소와 헬륨만 있었다. 다른 원소는 없었다. 원소 알갱이들이 무작위로 부딪혔다. 수없이 많은
작은 고체와 기체구름 덩어리가 생겼다.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렀다. 덩어리끼리 뭉치고 뭉치면서 비로소 별(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과
행성이 생겼다.”

 홍 원장에겐 천문학자로서 본질적인 의문이 있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그는 천주교 신자다.
고3 때 영세를 했다. “공부를 하다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천문학적 지식이 있다. 지금은 정리가 됐지만, 당시에는 정리가 되지
않았다.”

 - 그게 뭔가.

 “내 몸을 구성하는 물질, 그걸 원자적 수준으로 내려가서 분석해 봤다. 그랬더니 수소와
헬륨만 빼고 모두 다른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더라. 저 나무도, 저 바위도 마찬가지다. 별은 수명이 다하면 폭발한다. 수없이 많은 별이 폭발하며
퍼뜨린 원소 알갱이들이 뭉쳐서 지구를 만든 거다. 거기서 생명이 나오고, 나도 나온 거다. 이런 생각이 나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 그게 왜 심각한 건가.

 “내 몸의 구성 성분과 저쪽 별의 구성 성분이 똑같은 거다. 그건
충격이었다. 우주와 합일, 자연과 합일을 얘기하지 않나. 원자적 수준에서 봤더니 물질 성분도 똑같다는 거다. 같은 오리진(근원)이라는
거다.”

 우주가 시작될 때는 탄소가 없었다. 별이 폭발과 탄생을 거듭하는 핵융합 반응을 통해 무거운 원소를 만들었다. 그래서
탄소도, 질소도, 산소도, 철도 생겨났다. 지구 생명의 핵심은 ‘탄소 화학’이다. “나는 어디서 왔나. 지구에서 왔다. 지구는 어디서 왔나.
아까 얘기한 고체 알갱이에서 왔다. 그럼 그 알갱이는 어디서 왔나. 죄다 별에 있어야 할 놈들이다. 그러니 나는 철저하게 수없이 많은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존재더라. 거기에 무려 138억 년이 걸렸다.”

 - 우리는 자신의 나이를 말하며 “올해 스물둘이야, 쉰다섯이야,
일흔셋이야”라고 말한다. 그런 ‘나’가 138억 년의 준비를 거쳐 나온 존재라는 건가.

 “그렇다. 그걸 아니까 이건 어마어마한
신비더라. 그러니까 아~, 인생은 살만한 것 아니냐 이거다. 그렇지 않나. 인생은 정말 치열하게 살 가치가 있는 거다. 요즘은 이걸 부르는 말이
있더라. ‘빅 히스토리’. 이걸 알면 138억 년이란 ‘빅 히스토리’의 연장선에서 내 삶을 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렇게 보면 무엇이 달라지나.

 “그 눈으로 자신의 삶을 보자. 우리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하는 일들을 보자. 상처와 고통을
보자. 그럼 가벼워진다. 별거 아니다. 나는 1만 년의 문명을 이야기하며 인간이 치유될 것 같진 않다. 그런데 138억 년이란 우주의 시간은
우리를 치유하기에 부족하지 않으리라 본다.”

 정리된 많은 가닥의 실이 바닥에 놓여 있다. 그걸 만지다 보면 서로 엉키게 마련이다.
또 엉키는 가운데 매듭이 지워진다. 홍 원장은 “그렇게 매듭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게 바로 자연의 창발성, 혹은 창조성이다”고
말했다.

 - 그건 의도적인 건가.

 “무작위의 시도다. 생명의 진화사는 끊임없는 시도다. 하나의 종이 태어나고, 종이
끝나고, 또 새로운 종이 태어난다. 정해진 건 없다. 그냥 해보는 거다. 그러다 뭔가가 나온다. 끝없는 혼돈과 충돌이지만 138억 년의 눈으로
보면 다르다.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이어지는 거다. 거기에는 어떤 ‘도도한 흐름’이 있다.”

 - 우리 삶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지금은 혼돈과 충돌, 그리고 불가능만 보인다. 나중에 돌아보면 거기에 도도한 흐름이 있는
거다.”

 - 무엇이 도도한 흐름을 가능하게 하나.

 “인생으로 끌어오면 그게 희망이다. 기차가 6시45분에 도착하기로
돼 있다. 그걸 기다리는 건 희망이 아니다. 그건 오기로 돼 있는 거다. 가만히 있어도 온다. 기다릴 게 뭐 있나. 당장 이 시점에서 아무런
보장이 없는 것. 보장은커녕, 아예 안 올 거라고 보장돼 있는 것. 그걸 기다리는 것이 희망이다.”

 - 희망은 희망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런 희망이 도도한 흐름이 되려면.

 “간절한 의지가 중요하다. 그게 방향을 결정한다. 의지는 우주를 관통하고, 우리 삶을
관통하는 도도한 흐름의 방향타다. 간절한 의지가 있다면 내가 죽은 후에라도 이루어진다. 단 조건이 있다. 도도한 흐름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고약한
게 아니어야 한다. 간절한 대상이 뭔가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홍 원장은 “나는 그걸 뒤늦게 깨달았다. 참 아쉽다. 그래도
그걸 아니까 정말 열심히 살고 싶어지더라. 삶은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평생 우주를 공부한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행복인가.” 그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다”고 답했다. 세상의 이치는 그렇게
명료했다.

홍승수 원장의 추천서

천문학자 홍승수 원장은 우주에서 철학을, 그리고 영성을 읽어낸다. 그런
만큼 관심의 폭이 넓다. 칼 세이건의 베스트셀러 『코스모스』를 2004년 번역하기도 했다. 당시 출판사는 그의 번역 승낙을 얻기 위해 5년간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신은 냉랭하다. 거기에 열광은 없다. 삶의 고통이 올 때, 나는 이 고통을 잘 견딜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우주의 도도한 흐름, 그 선상에서 이게 당신의 뜻이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혼돈의
가장자리(스튜어트 카우프만 지음, 국형태 옮김, 사이언스북스)=생명의 기원, 무질서에서 질서가 창발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친구가 있었다. 신부가 되려다 결국 철학자가 됐다. 그 친구에게 이 책을 주며 “이제 신학을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친구의
반응은 없었다. 그런데 저자가 그 다음 책을 냈다. 제목은 『다시 만들어진 신』이었다.

◆다시 만들어진 신(스튜어트 카우프만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의학과 생물학, 화학과 물리학 등을 공부한 복잡성 과학자 카우프만이 제시하는 새로운 신학이다. 과학에 기반을 둔
세계관을 통해 자연적 신성(神性)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성이 우주의 내재적 속성이며,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노자·노자익 강해(김흥호 지음, 사색출판사)=서울에 있을 때는 이화여대 연경반에서 고(故) 김흥호 목사의 강의를 종종
들었다. 이런 분이 있다는 걸 예순이 넘어서 뒤늦게 알았다. 우리나라 기독교에는 참 답답한 면이 있다. 그걸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홍승수=1944년생. 서울대 천문기상학과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 1978~2009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한국천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 청소년을 위한 『지구 바깥세상 우주에는』을
번역했다.

 

고흥=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⑤ ‘지혜의 보고’ 신화 …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⑤ ‘지혜의 보고’ 신화 …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3.09.10 00:21 / 수정 2013.09.10 00:49

남의 눈물 닦아준 적 있나 … 약육강식이 다는 아니다
이타적 유전자가 인간의 조건
『일리아드』『꾸란』『공통된 가르침』남의 아픔
느낄 때 신성 드러나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상대방 입장에서 나를 보는 연습 … 죽음 앞둔 할머니도 희망의
존재

배철현 교수는 대중과 소통하는 종교학자다. “서양 전통에서 대화 자체에 답이 있는 건 아니다. 대화를 통해 내가 변화할 준비를
하는 거다. 내가 변화하기 위해서 상대를 만나는 거다”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신화는 문화의 뿌리다.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알면 서양 문명과 종교가 보인다. 가령 그리스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강물에 흙을 반죽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흙으로 아담을
빚은 성경 속 이야기와 통한다.

 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배철현(51·종교학) 교수를 만났다. 그의 전공은 서양신화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샘족어(히브리어·아람어·페니키아어·고대 페르시아어 등)를 공부했다. 신화와 고대 언어, 그 뿌리를 훑으며 그는
인간을 들여다봤다. 아픔과 행복에 대한 오래된 메시지가 그 안에 있었다.

 배 교수는 한때 목사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3년간
시골에서 목회도 했다. 교회 신자 중에 98세의 할머니가 있었다. 에버린 젠넬. 그는 70년간 그 교회에 출석했다. 늘 교회 맨 뒷자리에
앉았다. 빈 자리만 보여도 누가 왜 안 왔는지 꿰고 있었다. 그는 젠넬과 함께 심방(목회자가 교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다녔다. 매주 목요일
양로원을 찾았다.

 하루는 전화가 왔다. 젠넬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달려갔더니 젠넬은 “가족은 다 나가고 배 목사만 남으라”고
했다. “내 심장은 100년간 뛰었다. 이제 멈출 때가 됐다. 나는 이대로 죽고 싶다. 그런데 가족이 심장조영술을 하자고 한다. 나는 정말
싫다. 나가서 내 자식들을 설득해달라.”

 배 목사는 난감했다. 98세라 심장에 관을 넣는 수술을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못하겠다”고 말하곤 병원을 나왔다. 뜬 눈으로 밤을 샜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심방을 다니면서 쭉 지켜봤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양로원 할머니들을 위해 존재하더라. 그들을 위한 삶, 그게 당신의 행복이더라. 수술을 받으면 좋겠다.”

 그말을 듣고 젠넬은 기꺼이
수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102세까지 4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을 뜬 배 교수는 “이게 바로
‘이타(利他)적 유전자’”라고 말했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했던 ‘이기적 유전자’를 그는 정면에서 반박했다.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은 분명한
과학적 성과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 다윈은 삶이 전쟁터라고 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그게 왜
문제인가.

 “말이 새끼를 낳으면 30분 만에 걷는다. 인간은 1년이 걸린다. 왜 그런지 아나. 1년 먼저 태어나기 때문이다.
70만 년 전에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뇌가 엄청나게 커졌다. 600㏄에서 1300㏄가 됐다. 인간의 뇌가 커져서 어머니의
자궁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자, 미리 나오는 거다.”

 - 그만큼 미숙한 건가.

 “원숭이를 보라. 갓 태어난 새끼도
어미 원숭이의 털을 붙들고 혼자서 젖을 먹는다. 그런데 인간은 미숙한데다 털도 없다. 어머니가 자나깨나 안아서 젖을 먹여야 한다. 모든 인간의
생존은, 날 위해서 목숨을 바친 다른 어떤 인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다. 그게 우리 몸 속에 흐르는 이타적 유전자다. 이게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되게 한다.”

 배 교수는 고대 언어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전문가다. 그는 아랍어로 짧은 문구를 낭송했다. “비스밀라~히르
라흐마니 라힘” 이슬람 경전 『꾸란』의 114장이었다.

 - 무슨 뜻인가.

 “‘자비가 넘치고 항상 자비로운
알라(하느님)의 이름으로’란 뜻이다. 꾸란 114장이 모두 이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자비’가 ‘어머니의 자궁’이란 뜻이다. 어머니가 뭔가.
두 살짜리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면 자기도 아픈 거다. 남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아는 거다. ‘꾸란’에서 말하는 신의 특징이 뭔지 아나.
인간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아는 신만이 유일하다는 거다. 그걸 유일신이라고 불렀다. 그게 모세가 발견한 신이고, 무함마드(모하메트)가 발견한
신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이 신만 섬겨라’가 아니다.”

 - 남의 아픔을 아는 게 왜 중요한가.

 “우리는
자아라는 박스에 갇혀서 살아간다.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될 때 그 박스가 깨진다. 왜 그럴까. 자아의 확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확장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진다. 그래서 고전 속의 성인과 현자들은 하나같이 ‘박스에서 나오라(Think out of the box)’고
말한다.”

 배 교수는 그리스 신화를 하나 꺼냈다. “내게 서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꼽으라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다. 450년간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다. 모두 6음절로 된 노래, 일종의 서양 판소리다. 그 중에서도 ‘일리아드 24장’이 압권
중의 압권이다.”

 일리아드 24장은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담이다. “아킬레스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죽였다. 시신을 마차에 매단
채 달리며 찢어버렸다. 사건은 밤에 일어났다. 아들을 잃은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가 목숨을 내걸고 아킬레스의 숙소로 들어왔다. 깜짝 놀란
아킬레스에게 그는 말한다. ‘내겐 5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49명이 죽었다. 마지막 남은 아들이 헥토르였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네가 죽여버렸다. 오~나는 불행하다. 고향 땅에 있는 너의 아버지도 네가 살아있다는 소식 때문에 기뻐할 거다. 내게는 이제 그런 아들이
없다. 시신이라도 돌려다오.’그 말을 들은 아킬레스의 반응이 포인트다.”

 - 아킬레스가 어떻게 했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기 아버지가 생각난 거다. 만약 자기가 죽었다면 자신의 아버지도 똑같이 했을 거라는 거다. 그 장면이 『일리아드』에는 ‘(아킬레스와
프리아모스가) 상대를 보며 서로 신처럼 여겼다’고 기록돼 있다.”

 - 그게 왜 신처럼 여기는 건가.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됐으니까. 그때 우리 안에 숨겨진 신성(神性)이 드러나는 거다. 이게 행복의 열쇠다. 결국 아킬레스는 시신을 돌려줬다.
당시에는 장례식 때 시신이 없으면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고 믿었다. 이건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통틀어 최고의 장면이다. 이게 바로
‘컴패션(Compassion·연민)’이다.”

 - 이 신화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전쟁의 승자를 묻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승자가 진정 누구인가를 묻는 거다.”

 - 그럼 누가 인생의 승자인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승자가 아니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는 거다.”

 - 자신의 아픔만 해도 벅차다. 어떻게 남의 아픔까지
감당하나.

 “그게 우리의 착각이다.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될 때 고통이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아니다. 오히려 나의 아픔이
치유된다. 상대방의 아픔을 직시할수록 나의 아픔을 직시하는 힘이 더 강해진다.”

 - 그 힘이 강해지면.

 “그럼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신의 세계, 자신이 사는 섬만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다르다’고 부르지 않고 ‘틀렸다’고
본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기독교인인가. 우리 부모님이 기독교인이라서다. 만약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면 난 이슬람 신자가 됐을
거다.”

 배 교수는 ‘다름’을 강조했다. “서양 전통에선 ‘다름’을 신(神)이라고 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의
이웃은 사실 적(敵)을 의미했다. 나와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신’을 사랑하는 거라 했다.”

 - 어떨
때 그게 가능한가.

 “자아의 박스가 깨질 때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가 출세하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틀렸다. 공부는 그런 게 아니다.”

 - 그럼 어떤 게 공부인가.

 “공부는 다른 입장에서 나를
보는 연습이다. 식물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것, 그게 식물학이다. 코끼리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것, 그게 동물학이다. 내가 왜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나. 그를 통해 나를 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나를 볼 때 자아의 박스가 깨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

배철현 교수의 추천서

“1000년간 베스트셀러를 고전이라 부른다. 고전 1만권 중에서 10권
정도가 경전이다. 그걸 갖고 종교를 만들었다. 그럼 경전이 왜 위대한가. 문자 사이의 행간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배철현 교수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에도 적극적이다. 그가 추천한 책들도 제도화한 종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평소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자비를 말하다(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돋을새김)=현존 최고의 종교·문명 비평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인류 최고의 가치를 자비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자비를 실천 할 수 있는 12단계를 감동적으로 안내한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최진석 지음, 소나무)=인간은 남이 정해놓은 틀에 맞춰 평생 허둥대다가 삶을 마치기 쉽다. 철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지름길을
일러준다. 당신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욕망은 무엇인가.

◆명묵(明默)의 건축: 한국 전통의 명건축
24선(김개천 지음, 관조 사진, 컬처그라퍼)=우리도 모르는 한국인의 위대함을 한국 전통 건축 24선을 통해 발견하는 책이다. 건축가인 저자는
전통 건축에 투영된 우리 자신의 지적 통찰을 아름답게 소개한다. 우리에게 숨겨진 한국인의 예술적 DNA(유전자)를 확인하면 감격하게
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철현 교수=연세대 신학과 졸업. 하버드대에서 고대근동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고대언어를 바탕으로 서양의 신화와 종교 원전을 연구했다. 저서로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신들이 꽃피운 최초의 문명』등이 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④ 미학의 발견 – 진중권 교수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④ 미학의 발견 – 진중권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3.09.03 00:26 / 수정 2013.09.03
13:46

삶은 유희다 … 동태전에 막걸리 한 잔이면 충분

진중권 교수는 “재미있고 가치 있게 살면 된다. 사회학적 기준으로 우리는 서민이지만, 삶의 태도는 귀족이 될 수 있다. 나는
그걸 ‘서민적 귀족’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진중권(50·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논객이다. 사회적 쟁점마다 쏟아내는 그의 ‘독설’에 대해 누구는 “통쾌하다”고 박수를 치고, 누구는 “경솔하다”며 얼굴을 찌푸린다. 그가
트위터·블로그에서 한마디 촌평을 남기면 숱한 찬반 댓글이 붙는다. 그만큼 주변의 칭찬과 공격에 노출된 인물도 없다.

 그런 진 교수는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바로잡을까. 미학을 전공한 그에게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다. 예술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읽어가는 일종의 ‘진중권식 독법(讀法)’이었다. 그 독법 너머로 행복을 향하는 오솔길이 설핏설핏 보였다.
바로 직문직답에 들어갔다.

 -논객 이전에 미학자다. 예술의 기능이 뭔가.

 “원래는
주술이었다.”

 -무엇을 위한 주술인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담는 거다. 그러니까 이상을 담는 거다. 구석기
시대의 여성상을 보라. 가슴과 엉덩이가 과장되게 크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걸 보며 자식을 더 많이 낳고,
사냥을 더 많이 할 거라고 봤다. 벽화는 가상인데, 그게 현실을 낳는다고 믿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술을 통해 미리 보는 거다. 오늘날
예술도 마찬가지다.”

 - 그런 예술이 인간의 아픔도 치유하나.

 이 물음에 진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다. “기억난다. 아버지의 성경책 앞에는 시가 하나 적혀 있었다. ‘나는 이걸 바랐는데 안됐다. 나는 저걸 바랐는데
안됐다.’ 계속 그런 식으로 가다가 마지막에는 ‘나중에 깨닫고 보니 신이 그 모든 걸 내게 주셨더라’는 시였다. 그리고 아래에 ‘전사한 어느
미군 병사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쪽지’라고 적혀 있었다.”

 최근 그는 인천 월미도에 갔다. 바닷가의 한 카페에 들렀다. “책꽂이에
시집들이 꽂혀 있더라. 그 중 아무거나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펼쳤는데 그 시가 딱 나오는 거다. 무명 시인이 쓴 그 시의 제목은 ‘나는
부탁했다’였다. 아, 그때는 나도 힐링이 되더라. 아주 이상한 우연에 의해서 전율이 오더라. 대중이 예술을 좋아하는 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나.”

 -우리는 왜 예술을 좋아하나.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도, 성격도 불완전하다. 수시로
현실에 좌절하고, 미래에 절망한다. 이런 것들이 다 상처로 남는다. 예술이 종종 돌파구가 된다.”

 -예를
들자면.

 “지난 대선 때 절반은 환호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절망했다. 그때 그들을 치유했던 게 ‘레미제라블’이란 영화였다. 그걸
본 사람들이 상당히 힐링이 됐다고 말하더라. 그런 거다.”

 -영화가 왜 그들을 치유했나.

 “예술은 굉장히 자유롭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며 거기에 담긴 자유를 동경하고 갈망한다. 지금은 허락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허락될 자유를 미리 맛보는 거다. 그것 자체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한다.”

 - 그렇게 당신 삶을 치유했던 작품을 꼽는다면.

 “괴테의 ‘파우스트’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던 파우스트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오~삶아. 너는 너무도 아름답도다. 멈추어라.’ 나는 그 순간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나도 그런 구원을 기다린다. ‘내가 살았던 삶이 참 아름답구나’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건 기성 종교에서 말하는 신에 의한 구원과
다르다.”

 지금껏 미학에는 ‘상처’라는 말이 없었다. 상처와 치유는 미학에서 최신의 담론이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주로 ‘해방’을 말했고, 신자유주의 이후의 많은 지식인들은 ‘상처’를 말하고 있다.

 진 교수는 “인간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무리 사회주의가 오고, 공산주의가 오고, 해방된 세상이 와도 인간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 자체가 고(苦)다.”

 그는 상처를 두 가지로 나눴다. “사회적 상처는 사회적 처방으로 극복해야 한다. 가령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차별, 동성애자 차별, 이주 노동자 문제, 아파트도 임대아파트냐, 아니냐. 그런데서 받는 아이들의 상처. 그런 건
사회적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날 때부터 고독한 존재라는 개인적 상처는 어쩔 건가. 이걸 푸는 데는 예술과 철학이 도움이
된다.”

 -예술을 통해 어떤 상처를 풀었나.

 “나는 자랄 때 정말 많은 실수를 했다. 대인관계도 굉장히 힘들어
했다. 사적인 만남에서 대화가 끊겼을 때의 침묵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지금 이렇게 말하면 웃는 사람들도 있다. 의외라는 거다. 논쟁하고,
나가서 싸우고 하는 건 사실 나의 페르소나(가면을 쓴 인격·외적 인격)다. 실제로는 내성적이다. 생각도 내가 좀 삐딱하지 않나. 그래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나’란 생각도 많이 했다. 그때 ‘파우스트’에서 읽은 구절이 나를 치유했다.”

 -어떤
구절인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실수하게 마련이다(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란
글귀다. 그걸 읽고 생각을 바꾸었다. ‘실수를 많이 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그게 두려워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실수하는 건
내가 노력한다는 증거다. 그러니 주눅들지 말자.’ 그건 마주침의 순간이었다. 소설과 나의 고통이 마주치는 그런 순간이었다. 예술을 통한 치유는
늘 그런 ‘마주침의 순간’에 일어난다.”

 진 교수는 “내 삶의 모토(신조)”라며 세 가지를 꼽았다. 정신(이성)과
유희(예술·놀이), 그리고 구원이다. 그는 “삶 자체를 ‘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삶을 놀이로 보면 어떤 장점이 있나.

 “적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바둑을 둔다고 바둑 상대를 미워하진 않는다. 내가 저 사람과 정치적으로 적대적이라 해도 인생이라는 게임 상대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럼 잔혹함이
덜어진다. 변모씨가 계속 나를 걸지만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진 않는다.”

 - 그도 바둑 상대인가.

 “(웃으며)바둑을
두다가 판을 엎어버린 사람이다. 요즘도 고소를 할까 말까 고민이다. 그런데 고소를 해서 상대가 괴롭다고 치자, 그런데 그걸 갖고 내가 왜
행복하냐는 거다.”

 -놀이의 코드로 삶을 꾸려가면 면역력도 생기나.

 “물론이다. 인터넷 들어가면 엄청나게 욕을 먹는
게 나다. 내 블로그에 욕하는 쪽글이 수천 개 붙을 때도 있다. 그럼 나는 ‘자아, 형이 불판 갈아줄게. 더 욕 해봐’라며 페이지를 바꿔준다.
그럼 또 수천 개의 욕하는 글이 붙는다.”

 - 그런 글 보며 상처받지 않나.

 “나는 안 받는다. 전혀 안 받는다.
왜냐면 코드가 다르다. 나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이 되든, 민주당이 되든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신자유주의, 한미FTA, 어차피 둘 다
합의한 거다. 물론 다른 게 있고 중요하다. 그러나 삶도 정치도 게임의 요소가 강하다. 뭐하러 목숨까지 거느냐는 거다. ‘넌 나쁜 놈이야’하는
도덕적 코드보다 ‘넌 웃기는 놈이야’하는 미학적 코드로 가자는 거다. 삶을 놀이로, 유희로, 예술로 보자는 거다. 각자의 삶이 거대한
예술작품이니까.”

 -다들 삶의 위너(승자)가 되길 원한다.

 “잘 생각해야 한다. 누가 진짜 인생의 위너일까. 주위를
보면 다들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자기가 불행하다고 느낀다. 고등학교 나온 사람은 대학 나온 사람에게 루저(패자)다. 지방대는 수도권 대학에,
수도권 대학은 명문대에, 명문대는 유학파에 루저다. 유학파는 또 아이비 리그 졸업자에 루저다. 그렇게 보면 모두가 다
루저다.”

 -행복은 어디에 있나.

 “한 끼 10만 원짜리 식사라도 연속으로 먹어봐라. 질린다. 그때는 분식집 라면이
맛있다. 1000만 원, 2000만 원짜리 와인도 처음 한두 번은 좋을 거다. 그런데 매일 먹으면 질린다. 차라리 막걸리가 맛있어 진다. 그런
거다. 행복해 지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을 설정해 놓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내게 이미 있는 걸 통해서 찾으면
쉽다. 나는 어제 동태전하고 막걸리하고 술국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행복하더라. 그런 거다.”

 - 그럼 누가 삶의
위너인가.

 “자신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 중요하다. 핵심은 남의 욕망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거다.
그럼 위너가 된다. 왜? 그럼 행복해지니까. 누가 삶의 위너인가. 결국 행복한 사람이 삶의 위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진중권 교수=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중앙대 독어독문과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저서『생각의
지도』『미학오디세이』『앙겔루스 노부스』등.

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③ 심리학의 역설 –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행복 타령은 헛소리 … 불행에 대한 면역력 키워라

[중앙일보] 입력 2013.08.27 01:02 / 수정 2013.08.27
01:05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③ 심리학의 역설 –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비교정신분석 전문의 이나미 박사는 “정신치료의 목적은 상담을 통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우리의 성장을 위한 큰
자양분임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동서양의
고전과 철학을 관통하는 단어 중 하나는 마음이다. 이 과녁을 정면으로 겨누는 학문이 있다. 심리학(心理學)이다. 고장 난 차를 끌고서 카센터에
가는 심정이었다. ‘마음 엔지니어’의 진단은 어떤 걸까.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지름길은 어떤 걸까.

 23일 서울 강남에서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52) 박사를 만났다. 그는 심리학 중에서도 칼
구스타프 융 계열의 분석심리학 전문가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따로 없었던 프로이트와 달리 융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일까. 이 박사의 스펙트럼은 넓었다. 심리학은 물론 노자와 장자, 주역 등의 동양철학과 세계 종교에 대한 내공도
탄탄했다. 그는 “할아버지께서 한학자셨다.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 대신 책꽂이에 꽂힌 『논어』를 꺼내서 읽곤 했다. 뭔지 모르지만 재미있었다.
내게 큰 자양분이 됐다. 동양철학을 알수록 서구 심리학의 숲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고 했다.

이 박사는 상담 경험이
풍부하다. 대형병원에 있었을 때는 입원 환자만 100여 명, 개인병원을 연 뒤에도 하루 30~40명씩 봤다. 그걸 27년째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상처 전문가’다. 찌그러진 범퍼만 봐도 치유법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에게 ‘마음 심(心)’자를 물었다. 글자에 담긴 아픔과 생채기,
그리고 행복의 코드를 함께 물었다.

 - 다들 자신의 마음을 운전한다. 수시로 접촉 사고가 생긴다. 어떡하면 상처를 피할 수
있나.

 “나도 허덕이며 애쓰고 있다.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있나. 없다. 마찬가지다. 상처를 안 받는 사람은 없다.
‘나는 지금껏 상처를 받은 적이 없어’라고 말한다면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 왜 그게 심각한가.

 “사람은 다
다르다. 어차피 갈등이 있다. ‘상처를 받지 않았다’는 건 갈등 상황에서 양보를 안 했다는 얘기다. 그럼 상처받을 일이 없다. 대신 주위에
상처를 많이 줬다는 얘기가 된다.”

 잠시 생각에 잠긴 이 박사는 “상처를 받아야 인간이다”고 말했다. 의외였다. 다들 피하려고
난리니까. 특히 요즘 부모들은 자식이 학교에서, 놀이터에서, 학원에서 행여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나. 그런데 이 박사는 “그래야
사람이다”고 했다.

 - 자식의 상처를 바라보는 부모의 가슴은 찢어지지 않나.

 “아이들은 장난감을 좋아한다. 크면서
장난감을 계속 끼고 살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에는 그걸 버려야 한다. 그럼 그게 아이한테 상처일 수 있다. 그렇다고 30세, 40세까지 장난감을
안고 살 건가. 그럼 어른이 안 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통증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 박사는 그걸 성장통이라 했다. 작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통(痛·아픔)’에 의미를 둔다. 그래서 “아프다”고 소리치며 피하려 한다. 그는 달랐다. ‘통’이 아니라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반장 선거철이다. 부모는 대개 아이가 반장이 되길 바란다. 떨어지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꼭 될 거야’라고 위로한다. 이번이든, 다음이든 반장이 되는 것에 중심을 둔다. 그게 아니다. 반장에서 떨어진 아이가
받는 실망과 상처에도 큰 의미가 있다. 그걸 아이가 이겨낼 때 얼마나 대견한가. 그런 슬픔과 고통을 겪으며 아이가 성장하는 거다. 그걸 부모가
알아야 한다.”

 - 그걸 아는 게 왜 중요한가.

 “가령 몸에 종기가 났다고 하자. 어떤 이는 면역세포가 종기를
잡아먹어서 저절로 없어진다. 어떤 사람은 수술을 해서 없앤다. 또 어떤 사람은 종기 때문에 패혈증이 와서 목숨을 잃는다. 그런 차이가
생긴다.”

 - 왜 그런 차이가 생기나.

 “면역력 때문이다.”

 - 어떡해야 면역력을 키울 수
있나.

 “예방주사 맞는 거랑 똑같다. 결국 항원이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필요하다. 그게 항체를 키우는 원인이다. 몸에도 항원이
필요하지만 마음에도 항원이 필요하다.”

 - 그 항원이 뭔가.

 “자잘한 상처들이다. 우리가 삶의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를 겪고, 이겨낼 때 항체가 생겨난다. 그건 다음에 닥쳐올 더 큰 상처를 이겨내는 항체가 된다. 이게 핵심이다. 그러니까 상처가 그저
상처만은 아니다. 고통 자체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큰 자양분임을 진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박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종갓집 맏며느리다. “시집을 갔는데 제사가 1년에 12번이었다. 매달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다 보면 진이 다 빠졌다. 가장 큰 고통은
퇴근해서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는 것이었다. 일하는 아줌마도 부르지 않았다. 병원일보다 집안일이 더 힘들었다. 쓰러질
지경이었다.”

 하소연을 했더니 친정 어머니는 “걸레가 도 닦는 도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 박사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걸레질이 내겐 수행이다. 이걸 통해 내가 성장한다.” 그랬더니 달라졌다. 쌓인 빨랫감을 봐도 예전처럼 짜증이 나지 않았다. 집안일은 여전히
힘들었다. 그러나 고통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는 확신이 들자 고맙게 느껴졌다. 고통을 대하는 눈이 달라진 거다. “지금은 제사음식 전문가가 됐다.
웬만한 집안일은 스트레스 없이 해치운다. 내가 그렇게 성장한 거다.”

 사람들은 대개 나무의 상처 없는 성장에만 매달린다. 게다가
더 높이 키우지 못해 안달이다. 그런데 융 학파는 성장보다 깊이를 중시한다. “땅 위의 나무는 아름답다. 잎도 있고, 꽃도 피고, 새가 둥지도
튼다. 그런데 땅 속은 캄캄하다. 벌레도 많고, 바위투성이에, 공기도 희박하다. 그래도 뿌리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뿌리로 내려간 만큼 위도
자라는 거다. 그래야 나무가 건강해진다.”

 - 외적인 성장보다 내적인 깊이를 중시한다. 융 심리학은 삶을 어떻게
바라보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런데 끝이자 다시 시작이라는 거다. 융 심리학은 삶을 나선형의 순환이라고 본다. A라는
상처가 치유됐다. 그게 끝인가. 아니다. B라는 상처가 다시 온다. 아니면 A2라는 상처가 오든지.”

 - 예를
들면.

 “가령 내가 애인이랑 헤어졌다. ‘이게 끝인가? 그럼 나는 죽어야 하나?’가 아니다. 그 애인이랑 한 채프터(章) 가 끝난
거다. 그리고 또다시 한 채프터가 시작하는 거다. ‘난 다시는 연애를 안 해’라든지, ‘다른 애인을 찾을 거야’라든지. 엄청난 성공을 해도
마찬가지고, 어마어마한 실패를 해도 똑같다. 삶의 한 채프터가 끝날 뿐이다. 그럼 굉장한 성취를 한 뒤에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힘이 생긴다.
그게 회복력이다. 이걸 모르면 우울증이 온다.”

 - 그럼 융은 무엇이 행복이라고 했나.

 “영어로 얘기하면 더
명쾌하다. 플레저(Pleasure)와 해피니스(Happiness), 그리고 조이(Joy)가 있다. ‘플레저’는 감각적인 쾌락이고, ‘해피니스’는
정신적으로 기분이 좋은 거다. 그리고 ‘조이’는 깊은 깨달음의 즐거움이다.”

 - 셋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플레저’는 케이크를 먹는 것과 같다. 첫 한 입은 정말 맛있다. 그런데 열 입쯤 먹으면 질린다. 케이크 열 개를
먹으라면 다들 죽을 거다. 섹스도 그렇고, 마약도 그렇다. 모든 즐거움이 다 그렇다. ‘해피니스’를 강조하려면 코미디를 많이 보면 된다. 그런데
‘조이’는 전제가 있다. 바로 고통이다. 깊은 고통을 통과해야 조이를 얻는다. 그래서 조이는 흔들리지 않는다. 기쁨이 나의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럼 어떡해야 행복해지냐?”는 물음에 이 박사는 답을 했다. “사람들은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헛소리라고 본다. 우리는 행복한 동시에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둘 다 가질 수 밖에 없다. 그게 우리의 운명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거다. 불행이 없으면 행복이란 개념도 없는 거다. 관건은 어떡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가
아니다. 내 안에 이미 있는 행복과 불행을 얼마나 잘 볼 수 있느냐, 잘 꾸려갈 수 있느냐다. 그게 핵심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나미 박사=서울대 의대
박사.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석사를 취득했다. 뉴욕 신학대학원 목회신학 강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외래 부교수, 한국 융
연구소 교수, 이나미 라이프 코칭 대표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오십후애사전』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등이 있다.

이나미 박사의
추천서

“상담자에게 당신이 하는 일은 주로 뭔가?”라고 물었다. 이나미 박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상담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전체를 못 본다. 그 안에 빠져서 일부만 본다. 분석가는 상담자의 뒤, 다시 말해 그림자를 보게 해주는 거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어땠나, 그 사람과 과거의 남자친구는 어떻게 다른가, 또 부모님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이렇게 묻다 보면 그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개의 문이 마구 생겨난다. 상담자는 그런 문들을 통해 다시 사건을 바라보고, 결국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성과 감정, 동양과 서양, 불교와 기독교 등 과학과 종교의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준 책들”이라며 추천서 세 권을
꼽았다.

◆노자와 융(이부영 지음, 한길사)=형식과 출세, 문명과 지식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노자와, 역시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을
중시한 융을 함께 공부할 수 있다. 우리는 현실에 매여 진짜 자기의 행복을 억압하곤 한다. 이런 태도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파도가 바다다(빌리기스 예거 지음, 양태자 옮김, 이랑출판사)=저자는 독일의 신부이자 참선 마이스터다. 가톨릭의 신비주의적
전통과 동양의 선불교를 깊이 공부했다. 지금은 독일 뮌스터에서 명상센터를 열고 있다. 그의 사상을 요약한 책이다. 자아와 욕망을 붙들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아우성치는 한국인에게 권하고 싶다.

 

◆과학과 종교 : 과연 무엇이 다른가(알리스터 맥그레스 지음, 정성희·김주현 옮김, 도서출판
린)=과학주의와 근본주의, 그리고 도그마에 빠진 교파적 종교를 극복하는 데 큰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관점의 종교성과 과학
패러다임을 비교 분석한다. 내가 갖고 있는 진리에 대한 좁은 견해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준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② 뇌과학의 메시지-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1.5kg 고깃덩어리의 선언 … 애쓰고, 노력하고, 그게 바로 행복

[중앙일보]
입력 2013.08.20 00:35 / 수정 2013.08.20
00:40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② 뇌과학의 메시지-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어떤 이미지를 원하나?”라는 물음에 뇌 영상을 만지던 김대식 교수는 “미친 과학자”라고 답했다. 그만큼 그는 인간의 바닥을
보고 싶어 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문제는 뇌다.
현대 뇌과학에 따르면 슬픔도, 행복도 뇌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자아, 혹은 세계라고 믿는 것은 모두 뇌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일 수 있다.
사람의 기억조차 조작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단순히 SF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렇듯 행복에 대한 탐구는 결국 뇌의 실체를 찾는 작업과 다름 아니다. 요즘 서점가에 뇌과학
책이 줄을 잇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런데 뇌과학은 인문학일까, 아니면 자연과학일까. 이른바 융합의 시대, 둘의 구분은 무의미할
터다.

 뇌과학자인 김대식(46·카이스트 전자공학과)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문학에 행복의 길을 묻는 기획이다. 뇌과학자로서
당신은 여기에 답할 수 있나?” 그는 “뇌과학은 자연과학인데…”라며 잠시 망설였다. 곧장 질문을 던졌다. “뇌과학에선 ‘상처’를 어떻게 보나?”
김 교수는 “뇌과학자는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일종의 전기적 신호로 본다. 다시 말해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뜻밖이었다. 그건 “세계가 정말 존재하는가” “자아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철학의 궁극적 물음과 통하는 답이었다. 요즘
뇌과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물며 ‘첨단을 달리는 인문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슴을 겨누었던 인문학이 가슴 대신 뇌를 문제
삼는 뇌과학 앞에서 ‘헤쳐 모여’를 하고 있다. 14일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젊고, 열정이 넘쳤다.

 -뇌과학이란 창문을 통해서
‘상처와 치유, 행복’을 알아보려 한다. 먼저 뇌과학이 뭔가.

 “철학적 질문을 실험을 통해 짚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김 교수는 12세 때 독일로 갔다. 다름슈타트 공과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다. 처음에 그의 관심은
인공지능이었다. 학부생 때 몇 달씩 밤을 새며 ‘탁구 치는 로봇’을 만든 적이 있다. “공을 딱 쳤는데 30초가 지나자 로봇이 헛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고민했다. 어린 아이도 하는 걸 기계는 왜 못할까. 거꾸로 기계에게 너무 쉬운 ‘2870억×3876’같은 걸 인간은 왜 못할까.
인공지능보다 자연지능을 먼저 알아야겠다 싶었다.” 결국 그는 뇌과학으로 전공을 돌렸다.

 -뇌 안에는 무엇이
있나.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수술실에 들어가 뇌를 직접 봤다. 그때 가장 신기했던 게 뭔지 아나. 신기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게 없다. 무슨 뜻인가.

 “뇌는 그냥 머리 안에 들어있는 1.5㎏짜리 고깃덩어리였다.
눈으로 보면 진짜 그런 덩어리다. 생각과 감정, 지각이 그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우리의 가설이다. 그런데 뇌를 아무리 잘라보고, 해부해 봐도
없었다. 영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자아도 없었다. 그냥 세포들이었다. 뇌가 심장에 있는 세포와 다른 점은 각각의 신경세포들이 수천 개, 수만
개의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그 신경세포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소통을 하고 있다.”

 -뇌는 어떻게 세상을
알아채나.

 “우리가 꽃밭을 보고 있다. 그럼 빛이 망막으로 들어온다. 빛은 전기적 신호로 바뀐다. 그리고 뇌에 전달된다. 뇌는
형체를 알아본다. 그럼 마지막에 ‘빨간 장미’라는 것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지금도 빨간 장미가 나타나는 그 마지막 부분은 설명이 안
된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 뇌가 작동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거다. 나는 뇌가 지능과 정신, 감정을 만든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뇌에서 감정을 만든다고 했다. 그럼 뇌과학은 ‘상처’를 뭐라고 보나.

 “나는 뇌가 자신의 주된
기능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상처’가 생긴다고 본다.”

 김 교수는 뇌과학을 고고학에 빗댔다. 2000년 된 도시를 들여다보면
길이 누더기처럼 엉망이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서 새로운 길이 생길 때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거다. 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교뇌·중뇌·대뇌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차례대로 생겨났다고 했다.

 “인간의 뇌는 예전의 생명체들이 가졌던 뇌 구조를 대부분 가지고
있다. 가장 먼저 생겨난 게 현재 생존을 위한 뇌(교뇌)다. 눈 앞에 맛있는 게 있으면 그냥 먹는 거다. 그 다음에 생겨난 게 과거 위주의
뇌(중뇌)다. 여기에는 예전의 경험과 경험마다 매겨둔 가치가 입력된다. 그래서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를 구별한다. 가장 뒤늦게 생겨난
게 대뇌피질이란 미래예측의 뇌(대뇌)다. 이게 용량도 가장 크고, 중요도도 가장 높다. 그래서 인간은 현재의 상태,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는 대뇌피질의 미래 예측이란 주 기능이 외부의 데이터와 어긋나면 상처가 생긴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나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누가 와서 ‘너 바보야’라고 하면 상처를 받는다. ‘나는 똑똑하다’는
예측과 ‘너 바보야’라는 외부의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상처를 받는다.”

 - 그럼 이 상처를 어떻게 풀
수 있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내가 똑똑하지 않구나’하고 내가 만든 모델을 바꾸는 거다. 그럼 외부의 데이터와
일치하게 된다. 또 하나는 ‘저 사람 말이 틀렸다. 나는 똑똑하다’라며 바깥에서 들어온 데이터를 무시하는 거다.”

 -모델과
데이터, 결국 둘 중 하나를 바꾸는 건가.

 “맞다. 재미있는 건 과학에선 대부분 나의 모델을 바꾸라고 말한다. 그런데 뇌는 거꾸로
한다. 외부의 데이터를 무시하는 경향이 오히려 강하다. 왜 그럴까. 나의 모델은 수십 년에 걸쳐서 차곡차곡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 그게 바로 ‘에고(ego)’인가.

 “그렇다. 어렸을 때 우리는 데이터를 따라서 모델을 계속 바꾼다.
그걸 통해 성장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나의 모델은 안 바꾸고 외부의 데이터를 바꾸려 한다. 그게 완고해지는 거다.”

 -어떤
게 효과적인가. 모델을 바꾸는 건가, 데이터를 바꾸는 건가.

 “처음에는 나의 모델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존재성이 생긴다.
불일치 하는 데이터가 한두 번 들어와도 무시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데이터가 계속해서 들어온다고 하자. 그럼 얘기가 달라진다. 적당한 순간부터
모델을 바꾸어야 한다. 이걸 잘하지 못하면 상처를 자주 받거나, 상처를 오래 받는 사람이 된다.”

 - 그럼 나의 미래예측과 외부
데이터가 일치할 때 우리는 행복해지나.

 “상처가 치유될 때 예측과 데이터는 일치한다. 그런데 우리가 ‘행복’이라고 말할 때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만족감이다. 배 부르고, 편하게 쉴 수 있고, 내가 예측한 것과 세상의 메시지가 일치해서 돌아가는 거다. 그때는
아픔도 없고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건 만족이지, 행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럼 행복이란 어떤 건가.

 “지금
나의 상황이 만족스럽다고 하자. 그럼에도 일치하던 세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불일치하게 만드는 거다. 이때는 외부에 의한 수동적 불일치가
아니다. 나의 주도에 의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불일치다. 그걸 통해 새로운 레벨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다시 일치를 향해 가는
거다.”

 김 교수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이들은 영국에서 먹고 살만한 인생들이었다.
굳이 오르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불일치를 만든 것이다.

 “저 산에 도전하고 싶다. 그래서 도전하고, 정상에 오르고, 만족을
느끼는 거다. 그 다음엔 또 다른 불일치를 찾아 간다.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과 나의 불일치를 만들어내고, 그걸 극복하는 절차와 과정이
행복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주도’ ‘내가 원하는 방향’ ‘스스로 만든 불일치’가 중요하다. 창의적인 행복은 변화를
동반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대식 교수의 추천서

“뇌과학자로서 당신이 서있는 마지막 낭떠러지는
어디냐”고 물었다. 김대식 교수는 “뇌과학이 마지막에 풀어야 할 것은 결국 철학적 문제다. 뇌라는 물질이 어떻게 정신이란 비물질을 만들어낼까.
그게 정말 있는 건가, 아니면 없는 건가. 정신이란 게 없다면 단순히 우리의 착각인가. 이런 물음들”이라고 답했다.

 그는 “읽으면
재미있고, 우울해지거나 행복해지는 스토리들”이라며 뜻밖에도 과학서가 아닌 소설책 세 권을 추천했다. 소설만큼 세상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계속되는 이야기(세스 노테봄 지음, 김용주 옮김, 이레)=여행작가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세스 노테봄의 대표 소설. 철학 선생님이 어린 학생을 사랑했다. 너무 어리고 아름답기에 ‘영원함’이라는 단어를 감히 쓸
정도였다. 학생은 교통사고로 무의미하게 죽는다. 먼 훗날 자신이 죽는 날, 선생은 학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픽션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단어들의 모든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무한개의 책들을 보관한
도서관이 있다면. 그 어딘가에 존재에 대한 모든 비밀을 푸는 정답이 적혀있지 않을까. 보르헤스의 『픽션들』중 ‘바벨의 도서관’ 이야기다. 작가는
존재의 원리와 그 비밀을 묻는다.

◆만약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영어 제목 If on a Winter’s Night a
Traveler, 이탈로 칼비노 지음)=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한번 상상해보자. 오랜만에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책 내용이 중간에 갑자기
끊긴다면.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주인공은 책 원본을 찾아 전세상을 떠다닌다. 인생은 결국 무엇일까. 이탈리아 대표작가 칼비노는
인생을 끝나지 않는 스토리로 바라본다.

 
◆김대식 교수=1967년생. 12세 때 부모를 따라 독일로 갔다. 독일 다름슈타트 공과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다. 막스플랑크 뇌연구소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MIT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현재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교수로 있다. 주로 뇌과학과 뇌공학, 사회 뇌과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① 공자·노자의 자기혁신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① 공자·노자의 자기혁신

[중앙일보] 입력 2013.08.13 00:29 / 수정 2013.08.13
04:10

설탕 같은 위로 넘치는 시대 … 우리 모두 당뇨병 걸릴 지경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행복의 정체는 무엇인가. 최근 ‘치유(힐링)’에 이어 행복에 대한 갈망이 증폭되고 있다. 그만큼 현실이 팍팍하다는 뜻이다.
서점가에는 행복을 다룬 책들이 인기다. 프랑스 소설 『꾸베씨의 행복여행』이 베스트셀러로 읽히고 있다. 순간적 위로를 넘어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이다. 사실 행복은 인류의 변함없는 소망이다. 그런데 왜 요즘 ‘행복 증후군’이 떠오른 걸까. 국내 인문학 고수들의 현실 진단과
행복론을 들어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난 한형조 교수. 그는 “흔히 유학을 옛날 이야기로만 치부하지만 유학은 우리의 현실
문제에 대해 매우 친절하고 사무치게 일러준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한형조(54·한국학중앙연구원 고전한학·철학) 교수를 만났다. 전통찻집에서 마주 앉은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시선은 깊었다. 그와 인터뷰하는
내내 학자의 언변보다 수도자의 침묵과 문답을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동양학과 고전은 경전이었고, 일상은 이를 체득해가는 도장이었다. 한
교수는 동양학의 언어로 상처를 정의하고, 치유를 매만지고, 행복의 실타래를 풀었다.

 -지난 2~3년 위로와 힐링이 쏟아졌다.
유학에도 그런 코드가 있나.

 “유학에는 위로가 없다. 유학은 신랄하다. 유학은 성찰의 학문이지, 위로의 학문이 아니다. 그래서
상처에 대한 접근도 다르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결국 고통이 생기고, 우리는 비명을 지른다. 동양철학에선 ‘상처’를
무엇이라 표현하나.

 “완고함이다. ”

 -완고함이라. 무슨 뜻인가.

 “내가 갖고 있는 고집과 편견을
말한다. 그게 완고함이다. 이런 고집과 편견의 토대가 사(私)적 자아다.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사태를 자기를 축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오래된 습성을 말한다. 이게 굳어진 것, 그게 완고함이다.”

 뜻밖이었다. 우리는 흔히 상처는 외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한 교수는 외부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아니라 내 안의 완고함을 지적했다.

 왜 그럴까. 그는 “사람들은 주위로부터 당한 것을
상처로 여긴다. 그런데 유학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속성이 상처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본다. 강한 자기 중심이 더 강한 상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우리 사회를 당뇨병 환자에 비유했다. “요즘 위로가 너무 넘친다. 설탕을 너무 투여해서 당뇨에
걸릴 지경이다. 유학은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는 것을 일시적 효과라고 본다.”

 - 너무 혹독하지 않은가.

 “유학에선
위로를 ‘진통제’ 혹은 ‘따뜻한 속임수’로 봤다. 일시적 효과에 그치는 마사지라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풀렸던 어깨는 다시 뭉치게 마련이다.
그렇게 마음도 다시 뭉치는 거다.”

 - 그렇게 뭉친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나.

 “유학은 내가 받은 상처, 타인에게서
받은 부당한 대우를 자연과 운명의 거대한 손 안에서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본다. 그걸 어쨌든 수용할 수밖에 없고, 또 수용해야 한다고 봤다.
천리(天理)라고 할 때 ‘리(理)’자 속에는 수많은 역사와 사회 운명이 포함돼 있는 거다. 누구나 그걸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다. 그럼 무엇이
관건인가. 이걸 어떻게 타개하느냐. 그게 관건이다.”

 -어떤 식으로 타개하나.

 “문제의 중심에 자기가 있다는 거다.
그게 중요하다. 환경 은 어떤 일을 구성하는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거다. 나머지 3분의 2는 내게 달렸다고 본다. 잘나가다가도 유배를 가는
선비의 경우는 역사 속에서 다반사였다. 이때 유배를 가는 상황은 3분의 1, 나의 대응은 3분의 2에 해당한다. 여기서 필요한 게 자기혁신이다.
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그걸 통해 나의 맷집을 키우는 거다. 힐링도 마찬가지다. ‘그 자식 참 나쁜 놈이지?’ 하는 맞장구는 위로는
주지만 맷집을 키우진 못한다. 그래서 유학은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

 이말 끝에 한 교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니체는
‘(상처가)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너를 키울 것이다’고 했다. 상처를 대하는 유학의 눈도 그렇다.”

 이건 부모들의 자식
교육법에도 고스란히 통하는 팁이었다. 요즘 부모들 열에 여덟, 아홉이 자식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전전긍긍한다. 한 교수는 “그게 아니다”고
했다. “부모가 아이를 더 크게 성장시키려면 모든 걸 갖추어주는 배려는 독이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결핍을 허용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걸어갈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인류사의 모든 문명은 결핍에서 성장하고 풍요에서 쇠퇴해갔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상처에
대한 치유는 어디서 시작되나

 “눈앞에 펼쳐진 사태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차갑게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질 못한다. 사태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고, 나의 관심과 편견 때문에 아주 좁은 길로 자신을 투영해서 본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상처가 여기서 출발한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치유가 시작된다.”

 -왜 그런가.

 “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자도 똑같이 말했다.”

 -장자는 뭐라고 했나.

 “우물 안에서 개구리가 잘 놀고 있었다. 어느 날 자라가
왔다. 개구리는 ‘여기가 얼마나 해피한 인생인지 모를 거다. 안으로 들어와 보라’고 했다. 자라가 들어가려다 다리가 걸려서 못 들어갔다. 대신
자라는 바다 이야기를 들려줬다. ‘바다는 하도 넓어서 수평선 끝이 안 잡힌다. 우(禹)임금 때는 10년 동안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그 물이
늘어나지 않았고, 탕(湯)임금 때는 8년 동안 일곱 번이나 가물었지만 그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 안에 엄청난 생명이 살고 있다.’ 그러자
개구리 왈. ‘뻥 치고 있네.’ 우물 안 개구리, 다시 말해 자기중심성. 그게 모든 병의 근원이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깰
것인가다.”

왼쪽부터 공자, 노자, 장자.

 -동양철학에서 그걸 깨는
비법은 뭔가.

 “노자와 장자는 ‘자망(自忘)’이라고 했다. ‘너 자신을 잊으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잊을지
구체적 훈련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훈련법이 가장 풍부한 건 불교다. 대신 출가자를 위한 전업 훈련법이 많았다. 반면 유학은 일상 속의 훈련법을
제시했다. 노장과 불교, 그리고 유학의 기본 구도가 똑같다는 게 신기하다.”

 - 그게 어떤 구도인가.

 “너의 상처는
너의 좁은 자아로 인해 생긴 거다. 좁은 자아를 깨라. 사회적 악이라는 것도 너의 작품이다. 너 같은 자아가 충돌해 생긴 거지, 다른 사람이 준
것이 아니다. 네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그래야 네 상처도 치유되고,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도 치유될 수 있다. 너는 피해자만이 아니고
가해자이기도 하다. 동양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선비들은 어땠나 .

 “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문안하고,
독서와 명상을 했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일과표를 만들어 내가 천리(天理)와 함께 있으려 노력했다. 그게 자아를 깨는
것이었다.”

 - 그 중 핵심이 뭔가.

 “독서와 명상이다. 그걸 통해 궁리(窮理·이치를 곰곰이 따져보며 연구함)를
했다. 맹자는 말했다. ‘개나 닭이 집을 나가면 온 동네 사람을 풀어서 찾는데, 마음은 잃어버려도 찾을 생각을 않는다.’ 가령 손가락 중
무명지가 굽어졌다고 하자. 사람들은 용한 의사를 찾아 미국이라도 달려가고, 집을 팔아서라도 손가락을 고친다. 그런데 마음은 굽어져도 고칠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고전을 보고, 경전을 보며 궁리를 하는 거다. 굽어진 마음을 펴기 위해서 말이다.”

 - 그렇게 궁리를 하다
보면.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분야에 필요한 지식을 바닥까지 파보는 사람이 없더라. 그게
충격적이다.’ 잡스는 궁리를 했다. 궁리를 하면 바닥까지 가게 된다. 그래야 사태를 제대로 알 수 있고, 진정한 혁신도 나오는
거다.”

 -상처와 치유, 다음은 행복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뭔가.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주자학자의
눈으로 요즘 한국인을 보면 ‘노(怒·분노)’와 ‘애(哀·슬픔)’가 주축이다. ‘희(喜·기쁨)’는 없다. 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평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코드는 ‘노’와 ‘애’에서 ‘희’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우리 삶에 ‘희’가 자리 잡을 때 ‘노’와 ‘애’는
별로 문제가 안 된다.”

 - 그런 행복을 어떻게 일굴 수 있나.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고 했다.
아무리 소유 양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고, 50대 사춘기가 오고,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존재 양식을 감지하게
된다.”

 한 교수는 “존재 양식은 충만감”이라고 요약했다. 이게 없으면 행복에 구멍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막연히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면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존재 양식이 마련되지 않으면 불안과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물질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훌쩍 넘어서 유희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이게 나의 행복과 직결된다. 결국 인문학과 치유, 행복이 같은
코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형조
교수=경북 영덕 출생. 경남고와 서울대 철학과 졸업.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있다. 동양철학과 고전에 능통하다. 옛 고전을 우리 시대의
언어로 불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 『왜 동양철학인가』 『왜 조선유학인가』 『조선유학의 거장들』 『붓다의 치명적 농담』
등.

한형조 교수의 추천서

유학은
일상의 철학이다. 한형조 교수가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추천한 책들이 그렇다. 그는 “고민 고민하다가 딱 세 권을 골랐다. 그런데 정작 유학서가
없다”며 껄껄 웃던 그는 “그래도 이 책들에는 유학의 엑기스가 녹아 있다 ”고 했다. 다음은 각 책에 대한 한 교수의 추천
사유.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현종 옮김, 물병자리)=정현종 시인이 서문에다 ‘혼자 구원받기 미안해서
번역한다’고 쓴 책이다. 불교의 팔만대장경 핵심을 잡아서 현대적 언어의 대화체로 풀었다. 아주 얇은 책이다.

◆마음의 철학(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강분석 옮김, 사람과책)=제목은 다르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유교에 수많은 경전이 있지만 로마의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이 그 핵심 코드를 담고 있다. 번역이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대승기신론 소·별기(은정희 지음, 일지사)=방대한 불교의 간략한 설계도다. 나는 이걸
‘구원의 설계도’라고 부른다. 어렵다면 영역본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본 스즈키 선사의 영역본 『The Awakening of Faith:
The Classic Exposition of Mahayana Buddhism』이 쉽고 명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