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든 인문이든 글쓰기로 판가름나더라-최재천 교수

[리더스 콘서트] “과학이든 인문이든 글쓰기로 판가름나더라”

자연과학·인문학 넘나드는 ‘統攝의 지식인’ 최재천 교수
읽기·쓰기, 내 인생의 황금열쇠… 독서, 단순히 취미로 하지말고 모르는 분야 치열하게 읽어야
신문 꼼꼼히 보는 습관도 중요

“살아보니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결국은 ‘읽기’고 그다음이 ‘쓰기’입니다. 과학이든 인문이든 모든 일의 끝은 궁극적으로 글쓰기에서 판가름나고, 잘 쓰려면 역시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독서를 취미로 해선 안 됩니다.”

최재천(57)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일갈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취미를 물으면 상당수가 등산 아니면 독서라고 답하지요. 독서를 취미로 한다고요? 그만두세요. 눈만 나빠집니다. 차라리 클럽 가서 춤추세요.” 그는 “취미로 독서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건 ‘해리포터’ 정도일 것”이라며 “진짜 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을 씨름하면서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고 했다.

22일 오후 부산대 본관 대회의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과 조선일보가 함께 마련한 신문 읽기 순회 특강 ‘리더스 콘서트’의 하반기 네 번째 강연자로 나선 최 교수는 ‘내 인생의 골든키, 읽기와 쓰기’를 주제로 열강했다. 부산대 등 대학생들과 주부, 직장인 등 청중 300여명이 100여분간 경청했다.

“양자역학 분야를 처음 읽는다고 칩시다. 한 권 뗐어요. 하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죠. 그럼 비슷한 책 한 권 더 읽고, 또 한 권 읽다 보면 어느새 책장이 넘어갑니다. 그러다 신문에 그 분야 이야기가 나오면 또 읽고, 그렇게 새로운 분야 하나를 알아가는 겁니다.”

22일 부산대 본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리더스 콘서트에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독서는 취미로 하면 안 되고 씨름하듯 치열하게 해야 한다”며 기획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최 교수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통섭(統攝)’의 지식인. ‘과학자의 서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 10권이 넘는 책을 썼다. 자신의 전문인 ‘통섭’에 대해서 그는 황병기 명인이 첼리스트 장한나에게 덕담한 신문 기사를 인용했다. “우리 옛말이라며 황 선생님이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고 하시더군요. 20세기까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따로 놀았지만 21세기는 여러 학문이 만나고 함께 넓게 파야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는 “우리는 숙제를 잘하는데, 출제는 잘 못하는 격”이라고 했다.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나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을 보세요. 왜 우리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큰 그림을 구상하는 사람이 적을까요? 스토리를 만들려면 과학도, 인문학도, 생태학도 알아야 하죠. 학문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재, 잡스와 캐머런 같은 인재가 나타나야 창조가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그도 젊은 날엔 방황을 많이 했다. 재수하고도 의예과에 떨어져 동물학과에 2지망으로 들어간 후 바깥으로만 돌았다. “전공보단 인문학·철학 수업을 더 많이 들었다”며 “그 많은 방황의 순간마다 책이 내 옆에 있어줬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했다. “잘못하면 족집게 과외선생이 될 뻔했는데 책 한 권으로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서점에서 우연히 프랑스 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Chance and Necessity)’을 발견했죠. 우연과 필연? 그 순간 ‘세상 모든 것을 전부 다 설명해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물학자가 쓴 책인데 그 안에 철학이 있더군요. 아, 나 이 학문하면 되겠구나 싶어서 대학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독서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한 여학생에게 그는 노하우를 공개했다. “외국에 가면 하루 정도 꼭 빼서 제일 좋은 책방에 갑니다. 심리학 코너에 가서 책 제목을 모조리 훑어보고 흥미로운 거 있으면 빼서 펼쳐봅니다. 그걸 6개월 후에 또 하고, 얼마 뒤 또 하면 그 분야 흐름이 보여요. 어떤 책을 사야 하는지도 눈에 들어오죠. 물론 자기 전공 분야는 이렇게 하면 안 되고 논문을 읽어야죠.”

신문 읽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신문 두 개를 구독한다는 그는 “어떤 한 분야나 주제를 짜임새 있게 전달하는 기사를 주로 골라서 읽는다”며 “어르신들처럼 신문을 마루에 펼쳐놓고 1면부터 제일 끝면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것도 굉장히 좋은 버릇”이라고 했다. “우리 세대는 대학 졸업하고 공부 안 해도 잘 살았지만 여러분은 100세까지 살아야 하니까 평생 직업을 대여섯 번 바꿔야 합니다. 정년제는 없어질 거고 모두 죽기 전까지 일하는 사회로 갈 건데, 새로운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독서가 제일 좋은 답이에요.”

슬로건은 콤플렉스다

슬로건은 콤플렉스다

[중앙일보] 입력 2011년 09월 09일 박경철 시골의사

슬로건(slogan)은 콤플렉스(complex)의 반영이다. 구호는 소비되는 것이고 소비는 결핍에 근거하기 때문인데, 특히 개인의 그것과는 달리 공적·사회적 영역에서 소비되는 구호들은 더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즉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전면에 내거는 새로운 구호는 대개 그 조직이 가진 최대의 약점이고, 새로 부각되는 사회의 어젠다는 그 사회에서 가장 결핍되고 간절한 것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매년 연초마다 지면에 등장하곤 하는 올해의 키워드가 번번이 빗나가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명망가들에 의해 예측되는 키워드는 그 순간 가장 결핍돼 있는 것보다 그 다음을 예측하려는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즉 명망가들이 선정하는 화두는 계몽적 시각에 입각해 있고, 대중의 갈증이 아닌 자신의 갈망이 표현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물결에 대한 고민은 통찰적 안목의 관점이 아닌, 이웃의 눈으로 그들의 마음을 읽는 데서 출발하면 정답이 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재작년에 불어닥쳤던 ‘정의’라는 열풍 역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에 주력한 정책목표는 필연적으로 양극화 문제를 촉발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사회 전반의 갈증과 아쉬움이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정의라는 화두는 정곡을 찌른 것이다.

 사실 정의란 쉽게 소비될 수 없는 내구재에 속하므로 사회적 화두로 등장하기에는 약점이 많은 용어다. 또 정의는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고, 공적 정의와 사적 정의가 교차하는 현실세계에선 누구도 ‘스스로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롭지도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 열풍이 불었다면 갈망의 크기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등장할 화두가 페어(fairness), 즉 공정이었던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두가 정의를 이야기했지만, 정의란 해소될 수 없는 갈증이고, 사막의 여행자가 소금물을 마시듯 회자될수록 더욱 갈망되는 성질이라면, 다음 수순은 새로운 것이 아닌, 정의의 연장선에서 수단을 고민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구현되지 않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탐색이 자연스레 공정이라는 화두를 이끌어낸 셈이다.

 그럼 정의와 공정을 이어받을 다음 화두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위로와 격려일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열풍으로 시작된 양극화의 불균형이 정의를 잉태했고 수단으로선 공정을 찾았지만 그것이 사람의 피가 흐르는 자본주의건, 따뜻한 자본주의건, 혹은 미시적으로 복지와 균형이건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안타까움, 즉 체념이다.

 그래서 아마 올해 말 혹은 내년에 등장할 화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위로, 격려 등의 손 내밀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타인을 위로한다는 것은 진심이 있어야 하고, 위로의 대상을 이해하는 공감이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어난 한국 사회의 변화 조짐도 이 맥락에 있다. 우리 사회는 선배 세대들의 헌신을 바탕으로 힘든 시기를 넘어왔고, 이 시대는 대중을 이끌고 ‘나를 따르라(follow me)’를 외치는 리더십이 가장 효율적이었지만, 이제는 그보다 ‘나와 함께(with me)’라고 말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의 생각과 후배 세대들의 생각이 큰 괴리를 보이는 지점이고, 쉽게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다. 기성세대의 리더십이 이끌고 당기는 계몽주의적 리더십이었다면, 앞으로 필요한 리더십은 밀어주고 어깨를 내어주고,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는 리더십이다.

 그 점에서 한국 사회의 큰 변화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여야 하고,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 이 위로와 격려의 키워드만 담아낸다면 뜻밖에 많은 문제가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해법은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감성의 문제와 이성의 문제가 충돌할 때 반드시 이성이 정의는 아니다. 그렇다면 지하철에 뛰어들어 타인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의 마음이 감성이듯 감성적인 것이 약하고, 무능하고, 무력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변화인 것이다.

박경철 시골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