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맘’ 자책은 금물, 뻔뻔하고 대범해져야 약간 방임하는 것도 아이에겐 藥… 21세기 최고 경쟁력은’헝그리 정신’
새 학년이 시작된 3월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무개 어머니, 아무개 담임입니다. 아무개가 아직 구구단을 외지 못합니다. 구구단은 2학년 때 배우는 과정입니다. 수업에 지장이 많사오니 가정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마녀’,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냈다. ‘선생님, 아무개 엄마입니다. 저는 성실히 세금 납부하여 선생님 월급을 드리고 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선생님의 의무지 저의 의무가 아닙니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할 터인데 왜 제게 책임을 물으시는지요? 아무개가 구구단을 제대로 욀 때까지 A/S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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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집’차 엄마들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이프’라는 사이트에 들어간 영란씨. 저 해괴한 글을 발견하고 한밤중 컴퓨터 앞에서 혼자 배꼽을 쥐었다. 세상에 이런 통배짱 엄마가 있었어? ‘마녀들의 수다’라는 문패가 붙은 코너에는 이 글 말고도 불순한 엄마들의 목소리가 와글와글했다. ‘엄마, 아이 캔 스픽 잉글리시가 뭔 뜻이야?’ 묻는 중1 딸에게 ‘영어 못하는 것도 대한민국에선 개성이지’ 하고 낄낄대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이번 시험에 낙제했으니 부진아 학습을 시키겠다’고 통지해온 선생님께 ‘우리 애는 명문대학 갈 의사가 전혀 없사오니 그냥 집에 보내달라’며 호기를 부리는 엄마도 있다. 황당해진 담임, 아이를 불러 ‘니네 엄마 계모니?’ 했다는 대목에서 또 깔깔 웃은 영란씨는, ‘계모’도 좋고 ‘마녀’도 좋으니, 나도 통배짱 엄마 되어 이 험난한 교육 전장(戰場)을 뚫고 나가리라 다짐하였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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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통배짱이 시험대에 섰다. 반찬 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출산 전 다니던 회사에 파트타임으로 나가 일하는 영란씨. 한 달에 기십만원 하는 학원비가 벅차 겨울방학 동안 학교가 시행한 방과후수업에 3학년 아들 녀석을 등록했던 것인데, 하필 영어는 오전에, 수학은 오후에 있어 도시락을 싸서 보내게 되었다. 한데 퇴근길 동네 수퍼에 들렀더니 같은 학교 학부형인 주인 아주머니가 혀를 찬다. “에이그, 우리 애 데리러 학교에 갔더니 그 댁 아들이 차가운 학교 계단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습디다.” “진짜요?” 사실 확인차 집으로 뛰었다. 아들내미 왈, 도시락 먹으러 제 교실로 갔더니 자물쇠로 잠겨 있고 다시 영어 수업했던 교실로 돌아오니 그 사이 문이 잠겼더라고 했다. 그래서 계단에 앉아….
이튿날 열일 제쳐놓고 학교로 달려갔다. 교무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당직 선생님 앉아 계신다. “어쩐 일이세요?” 나이 오십줄에 밝게 웃는 여교사와 눈이 마주치자 영란씨 잠시 흔들렸지만 애써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아이가 찬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도시락을 까먹을 때 선생님들은 뭘 하고 계셨습니까. 그렇잖아도 다른 애들처럼 풍족하게 뒷바라지 못해 피눈물이 나는데요, 흐억….” 설움에 북받친 영란씨, 잠시 숨을 골랐다 다시 쏟아부을 태세인데, 선생님 그녀의 손을 덥석 잡는다. “일단 앉으시지요, 추운데 차 한 잔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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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 수업 없는 교실들은 문이 잠겼을 테고 당직 서는 교사들 한둘뿐이니 미처 못 봤을 테지요. 보았다면 그렇게 놔둘 리 없지요. 저희도 자식 키우는 사람인데요.” “그러니까 서운하다는 겁니다. 솔직히 일하는 엄마 애들은 뒷전이고 찬밥 아닌가요? 남편 월급만 갖고 살 수 있다면 저도 학교 봉사 열심히 할 수 있다 이겁니다. 아이 손에 열쇠 쥐여주고 집 나서는 심정, 선생님은 모르시잖아요.” “재미난 얘기 해 드릴까요? 30년 교직에 있어도 우리 애 선생님 뵈러 갈 땐 심호흡을 했지요. 담임이 까마득한 20대 후배교사인데도 허리 굽혀 인사하게 되데요. 저도 죄 많은 취업맘 아닙니까.” “……” “아이 몸에 열이 펄펄 끓어도 학교로 나서야 하는 날엔 남의 집 아이들 잘 키우려고 내 아이를 이렇게 버려둬도 되나 하는 죄책감에 눈물 뚝뚝 흘리며 등교했지요.” “……” “재미난 얘기 또 해 드릴까요? 5학년 딸아이가 구구단을 못 외니 그 책임을 선생에게 엄중히 묻는 어떤 어머님 글이 인터넷에 떴더라고요. 뜨끔하고도 통쾌했지요. 우리 딸도 4학년 되도록 구구단 못 외웠거든요. 흐흐!” “…근데, 그 따님 대학은 갔나요?” “가다마다요. 엄마 믿었다간 밥 굶고 대학도 못 간다 싶었는지 알아서 밥 차려 먹고, 알아서 병원 가고,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사윗감 물어오고. 그러니까 돈 워리(Don’t worry)! 21세기 최고의 경쟁력은 ‘헝그리 정신’인 거 아시죠? 그거 하나는 제대로 길러준 셈이에요, 하하!”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지나친 것을 의미한다. ‘너무 늦었잖아요’라는 노래 제목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나 그 노래 너무 좋아”라고 하면 좀 이상하다.’너무’는 ‘너무 뻗은 팔은 어깨로 찢긴다’라는 속담처럼 부정적인 문맥에 써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겨서 너무 좋아”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또 그놈의 ‘너무’냐고 짜증을 내시는 분도 있겠지만, ‘너무’가 우리말을 잘못 쓰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랫동안 지적됐다. 이 사실은 우리가 그만큼 오랫동안 이 단어 하나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유가 뭘까? 첫째, ‘너무’의 뜻을 모른다. 둘째, 알려고 하지 않는다. 셋째, 뜻이고 뭐고 강조할 때는 ‘너무’가 최고다….
늦었지만 반갑게도 최근 방송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출연자는 “너무 신나고 너무 행복했어요”라고 말했지만, 자막에는 “정말 신나고 아주 행복했어요”라고 썼다. 출연자의 말을 함부로 바꾸긴 했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노력이 오히려 ‘너무’를 왜곡하기도 한다. “너무 아팠어요” “너무 슬펐지요”라는 출연자의 말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정말 아팠어요” “매우 슬펐지요”라고 고치는 것이 그 예다. 이렇게 되면 ‘너무’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점점 더 종잡을 수 없게 된다.
학교 교육은 부실하고 사교육비에 허리 휘는데 전교조와 非전교조 학교 학생·학부모에 선택권 주고 학생 수에 따라 예산 지원해 경쟁 유도하면 어떨까
버락 오바마미국 대통령은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면 곧잘 한국을 모범 사례로 소개한다. 최근에도 지난 1월의 국정연설 등에서 “한국에선 교사가 국가 건설자로 알려져 있다”며 우수 교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제 한국의 우수 교사는 공교육을 떠나 사교육시장으로 갔다는 것을.
경쟁력을 잃어가는 우리의 공교육은 체벌(體罰) 금지 때문에 더욱 부실해지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새뮤얼 크레이머(Kramer) 교수의 저서 ‘역사는 수메르(Sumer)에서 시작되었다’를 보면 체벌의 역사는 오래됐다. 4000여년 전 수메르의 한 학생이 학교에서 회초리로 맞았다고 기록한 점토판이 발견됐다니 말이다. 그랬던 체벌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여기에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같은 좌파 교육자들의 공헌이 크다. 그렇다면 체벌이 사라진 우리의 교육 현장은 학생들의 천국이 됐을까? 그래서 학부모들은 행복할까?
서울 서래초등학교 김영화 교사의 현장 증언을 들어보자. “6학년 한 반에 문제학생들은 10% 정도다. 교사가 보는 앞에서 친구를 때리고, 교사에게 욕설을 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체벌이 금기시되기 때문에 교사들이 문제학생을 그냥 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나머지 학생들도 나쁜 쪽으로 변해간다.” 좌파 교육감과 전교조의 희망과는 달리 체벌 금지가 ‘교실 붕괴’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10% 문제학생들이 나머지 90% 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경제학에서는 ‘부정적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ies)’라고 부른다. 이 부정적 외부효과 때문에 90% 학생들의 ‘학습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공교육이 이처럼 부실해지니 학부모들은 그 대체재(substitutes)인 사교육에 더욱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문제학생들의 부정적 외부효과를 바로잡는 수단으로 전교조 교사들은 ‘인성(人性)교육 강화’를, 비(非)전교조 교사들은 ‘체벌 재도입’을 주장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이들 중에서 선택할 자유가 없다. 좌파 교육감이 관할하는 지역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문제학생들이 인성 교육에 감화돼 부정적 외부효과 발생을 중단할 때까지 계속 고통받는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대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줘야 한다. 기존의 학교들을 전교조 교사 중심의 가칭 ‘사랑의 학교’와 비전교조 교사 중심의 ‘정의의 학교’로 재편해 교육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 한 방법이다. 두 종류 학교 간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려면 정부 예산을 재학생 수에 비례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학교든 학생이 줄어들면 그만큼 예산 지원을 축소해 교사 숫자를 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전제하에서라면 곽노현 교육감 뜻대로 전교조 교사 중심의 ‘사랑의 학교'(또는 ‘혁신학교’)를 설립해 체벌을 금지하고 교원 평가를 거부해도 좋다.
다음으로 ‘정의의 학교’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체벌 규정집’을 만들어야 한다. 규정집은 친구를 때리면 회초리 몇 대, 선생님께 욕하면 몇 대 등 체벌 수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그리고 체벌은 반드시 학교 내 상벌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후 실시한다. 그래야 “손바닥으로 맞으면 학생들이 장풍(掌風)을 맞은 듯 나가떨어진다”고 해서 ‘오장풍’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런 폭력 교사에 의한 ‘감정의 매’를 방지할 수 있다.
둘째, 교원 평가를 실시하고 그에 따라 교사의 연봉 수준과 재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에릭 하누셰크(Hanushek) 교수는 미국 초·중·고의 바닥권 교사 5∼8%를 평균적 교사로만 대체해도 현재 OECD 하위권인 미국 학생들의 수학·과학 국제 순위가 최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최근 연구에서 밝혔다. 그만큼 교사의 질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교원 평가를 제도화해서 무능 교사를 퇴출시킨다면 공교육만으로도 현재 상위권인 수학·과학 국제 순위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교원 평가 도입 시늉만 내며 전교조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부모들은 교실 붕괴로 인한 공교육 부실화와 그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구호였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를 패러디해 우리 학부모들의 심정을 표현해보자. “바보야,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학습권이야!”
‘거듭된 자연재해로 재난에 대한 내성(耐性)이 생긴 일본인’, ‘조직을 최우선시하는 것이 체질화된 국민성’.
이번 대지진 사태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차분하고 질서 있는 방식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가운데 국내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의 문화·역사적 배경을 짚어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거듭된 자연재해가 일본인들에게 재난에 대한 내성을 길러줬다는 것이 일차적인 분석이다. ‘일본 문화 읽기’, ‘일본인의 논리구조’ 등의 책을 쓴 정형(58) 단국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일본인들은 에도 시대부터 주기적으로 큰 지진을 겪어왔다”면서 “일본인들은 땅을 치고 통곡하느니 마음을 비우고 다음 위기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모든 걸 물에 흘려보낸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면서 “기왕 일어난 일은 하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일본적 사고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했다.
조직의 안위를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 하는 일본인이 조직의 평형을 깨뜨릴까 봐 감정을 내보이는 것을 억제한다는 분석도 있다. 문화인류학자인 임경택(51) 전북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일본인은 남 앞에서 노골적인 감정 표현하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데, 개인적인 감정 표출이 조직의 평형상태인 ‘화(和)’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금의 일본은 위기상황에서 사회적 평형(social equilibrium)을 유지하기 위해 극도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면서 “이런 팽팽한 긴장이 외부에서 볼 때는 아름다운 질서로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 전문가로 일본 사회 분석서 ‘일본재발견’을 쓴 이우광(59)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은 2차대전 직후 GDP(국내총생산)가 전쟁 전의 30%로 추락한 상황에서도 일치단결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저력이 있다”면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표현할 만큼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어왔던 일본이지만 단결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