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육, 더 늦기 전에 근본으로 돌아가자 [중앙일보]

요즘 우리 사회는 특목고 및 외고 문제 등 주요 교육 현안에 대한 논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교육의 전반적인 과정을 통해 실현되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교육의 궁극 목적을 되뇌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느덧 균형감을 잃은 채 교육의 외재적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교육현상’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청와대에서 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니 좋은 방향으로 개선은 되겠지만, 지금이야말로 교육의 내재적 목적인 ‘교육본질’로 돌아가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바른 교육’인가? 새삼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한 우리 현실이 걱정스럽다. 특정학교가 사교육을 부추긴다면서 존폐를 운위하는 것은 수시로 야기되는 교육현상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사회적 불안만 가중시킬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세계가 주목하는 명문으로 도약한 학교들에 잘못이 있는가? 지난날의 가혹한 규제 속에서도 각고분투해 오늘의 경쟁력 있는 학교를 만든 것이 죄라면 누가 이 나라 교육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는가.

민주교육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이지 결과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의 균등을 전제하면 교육은 자기한계에 갇혀버린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에 평준화·획일화 교육정책의 폐해를 충분히 경험했다. 개천에서 용도 나고 군계일학도 뜨는 것이 교육이다. 그것이 창의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 정부의 자율화 교육정책이 아닌가.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목고나 자립형, 그리고 기숙형 등 다양한 학교모델을 개발한 것도 이 때문인 줄 안다. 이런 다양한 노력으로 좋은 인재가 많이 나와야 한다. 최근 방한한 케임브리지대학 앨리슨 리처드 총장이 “교육에 대한 (결과로서의) 평가는 필요하나 그 결과가 어떤 교육과정을 통해 나타났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우리는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부가 파경의 위기에 처할 때 연애시절로 돌아가 보면 문제가 풀린다는 말이 있다. 또 수사가 미궁이나 답보상태에 빠지면 사건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고도 한다. 중세의 인문주의 운동도 학문의 변질을 우려하며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근본운동이었고, 르네상스 역시 궁정의 시녀로 전락한 당시 예술의 회귀운동이었다. 모든 면에서 ‘근본으로(ad fontes)’ 돌아가 제자리를 잡아야 하겠지만, 위험수위에 이른 오늘의 교육이야말로 더욱 그렇다. 교육의 제자리는 공교육이 회복되는 바로 그 자리에 다름 아니다. 공교육이 정상화되어 거기서 경쟁력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본연을 회복하는 길이며 교육의 자기정초(自己定礎)다. 주지하듯이 공교육 회복의 관건은 사도(師道) 확립과 인성교육에 있다. 빌 게이츠의 말대로 “문제는 교사다”. 좋은 선생이 좋은 제자를 만든다. 교사가 탁월한 학문성과 인격, 그리고 권위의 삼위일체를 갖춰야 공교육이 산다. 고대 노천교실에서 역사적 인물이 나온 것은 위대한 스승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은 훌륭한 교사 양성과 인성교육에 주력해 주기 바란다. 우리 선생들은 진정 이 시대의 페스탈로치 같은 사명감으로 제자들을 가슴으로 가르쳐야 한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공교육이 강화되면 사교육은 자연히 제도교육에 흡수될 것이다. 이 정부는 역대 정권처럼 집권 중에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조바심을 버리고 국가 백년대계로 교육의 근본부터 다지기 바란다. 우리의 교육이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우리 학부모들도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인내하며 기다릴 것이다.

김성영 전 성결대 총장·시인

[과학 칼럼] 과학의 본질

오피니언


[과학 칼럼] 과학의 본질 [중앙일보]


2009.10.29 00:22 입력




근대 이후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과 기술은 우리 인간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풍요와 함께 새로운 문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과학의 발전 속도는 최근 너무나도 빨라져 과학자들 중에서도 모든 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과학 발전의 원동력은 관측과 실험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인간이 경험으로 얻은 사실과 결과들이다. 간혹 사람들이 사실과 이론의 차이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자와 달리 후자는 바뀔 수 있다. 행성들이 태양을 타원 형태로 돈다는 관측 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만유인력의 법칙이 20세기에 들어와 새로운 관측 결과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던 시점에 상대성이론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바다. 어쩌면 이론은 그 이전까지의 사실들을 설명하는 체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의 차이에 대해서는 미국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굴드가 명쾌한 비유를 해 준 바 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사실에 대해 뉴턴의 주장이 맞느냐 아니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맞느냐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사과는 둘 중 어느 것이 맞느냐를 기다렸다가 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는 먼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을 세운다. 가설이 이론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실험과 관측 결과들이 거기에 부합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정확한 관측이라도 오차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관측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한돼 있다. 아무리 지구 내부를 잘 알고자 해도 지구 중심까지 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오차를 고려하고서라도 보편적인 현상과 사실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아무리 잘 맞아떨어지던 이론이라도 어느 날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예외가 발견되면 불가피하게 수정되거나 때로는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이처럼 이론은 철저히 그 당시까지 알려진 사실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학생들에게 과학자와 변호사의 차이가 뭐냐고 묻는다. 둘 다 논리적으로 자기의 뜻을 펼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변호사의 경우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증거들을 찾아가는 반면 과학자의 경우 증거를 토대로 결론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래서 과학의 경우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결론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또 설령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문제이더라도 계속적인 증거 찾기 노력을 통해 확인을 하고 또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이로 인해 집단마다 자기 이해에 맞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로 그럴싸한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이 먼저 한발 물러서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마음을 비우자고 하면서 상대방이 먼저 비우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생각을 그 빈 곳에 채우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정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앞서 결론을 세우고 거기에 맞는 사실들을 끼워 맞추기보다 객관적인 증거들을 바탕으로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학자적인 접근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

생태사진 잘 찍는 5가지 방법-동아사이언스

생태사진 잘 찍는 5가지 방법

동아사이언스 생태사진공모전 개최

2009년 10월 21일
 

가을은 사진 찍기 좋은 계절이다. 겨울을 대비해 생태계의 생명들이 옷을 갈아입고 동면준비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요즘이야말로 생태사진 찍기엔 최적기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는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의 말처럼 생명을 찍는 생태사진이야말로 자연 사랑과 환경보호의 실천이다.

문제는 생태사진 찍기가 녹록치 않다는 것. 종마다 다른 생물의 습성이나 행태를 알아야 하고, 오랜 촬영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인내와 체력도 필요하다. 촬영 기술이나 장비 역시 다른 사진 분야에 비해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곤충 같은 작은 생명체를 크게 찍기 위해서는 접사를 할 수 있는 매크로 렌즈가 필요하며, 새처럼 접근이 힘든 생명체를 찍을 때는 멀리서도 촬영이 가능한 망원렌즈가 필요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기후와 뱀, 독충 등 위협요소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옷과 신발도 갖춰야 하는 생태사진이야말로 수많은 사진의 영역 중 가장 찍기 힘든 분야일 것이다.

그런 만큼 좋은 생태 사진을 찍었을 때의 성취감도 크다. 더 추워지기 전에 야외로 나가 자연과의 만남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멋진 생태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도 있다. 동아사이언스가 주최하고 국립중앙과학관,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이 후원하는 제1회 과학동아·어린이과학동아 생태사진공모전이 지난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 한 달간 개최된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살아있는 생명과 자연을 찍은 사진이라면 응모가 가능하다.(※공모전 홈페이지 주소 photo.dongascience.com)

TIP : 생태사진 잘 찍는 법 5가지

1.생태계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자!


호랑나비를 찍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호랑나비를 발견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무작정 호랑나비를 찾아 나선다고 날아다니는 호랑나비가 눈앞에 나타날 리가 없다. 해답은 호랑나비가 좋아하는 꽃이나 식물을 찾으면 된다. 대표적인 식물은 산초나무. 산초나무 주위에서는 꿀을 먹거나 알을 낳기 위해 나타나는 호랑나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호랑나비의 행적을 쫓아가면 산초나무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이렇듯 생태계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면 보다 쉽게 원하는 종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동아일보)

2.흔들림 방지를 위해 삼각대는 필수!


삼각대는 사진 촬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변장비 중 하나다. 삼각대를 쓰는 이유는 그냥 손으로 사진기를 잡고 사진을 찍을 때보다 흔들림이 적기 때문이다. 자주 움직이는 곤충, 바람에 흔들리는 꽃, 멀리 있는 새를 찍을 때 삼각대 없이 초점이 잘 맞은 사진을 찍기란 불가능하다. 비용이나 무게 때문에 삼각대 구입이 부담스럽다면 모래주머니나 콩주머니를 만들어 사진기를 고정시키는 받침대로 활용해도 된다. (사진:김경우)

3.사진기의 접사 기능을 이용하라!


생태사진은 특수 기능이 있는 좋은 DSLR 바디와 렌즈가 필요하다. 당연히 수백 만 원이 넘는 고가의 렌즈가 허다하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부담스러울 터. 그러나 꼭 비싼 DSLR 카메라가 없다 해도 멋진 생태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요즘 나오는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는 필수적으로 접사 기능이 있다. 제조사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튤립 모양의 아이콘을 선택하고 촬영을 하면 꽃이나 곤충을 찍을 때 근접 촬영을 할 수 있다. (사진:김경우)

4.검은색 배경지를 활용하자!


생태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피사체는 당연히 살아있는 생물이다. 주피사체인 생물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배경이 단순할수록 좋다. 그러나 인공적인 촬영준비를 하기 어려운 야외에는 나뭇가지, 풀, 돌 등 시선을 분산시키는 요소들이 많다. 이럴 때 검정색이나 어두운 톤의 배경지를 미리 준비해서 대상의 뒤편에 대고 촬영하면 촬영하려는 대상을 확실히 부각시킬 수 있다. 색이 화려한 꽃이나 곤충류 사진을 찍을 때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진:동아일보)

5.조리개를 조여서 심도를 확보하자!


심도는 사진에서 초점이 맞은 영역을 뜻한다. 심도가 깊은 사진은 초점의 영역이 넓다는 의미이며, 심도가 얕은 사진은 초점의 영역이 좁다는 의미다. 보통 피사체를 부각시키기 위해 렌즈의 조리개를 확 개방해서 심도가 얕은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특정 부위만 클로즈업되게 된다. 생물의 전체적인 특징이나 생김새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조리개를 조여 심도를 확보하는 게 좋다. (사진:김경우)

김경우 동아사이언스 기자 ichufs@donga.com

홍명보의 통로의 리더십

중앙일보  2009.10 . 14.
대학교 3학년 홍명보에겐 ‘우상’이 있었다. 이탈리아 빗장 수비의 간판이었던 프랑코 바레시다. 이유는 하나. 바레시의 “영리한 플레이가 좋아서”였다. 홍명보는 그를 독일 축구의 전설적인 리베로 베켄바우어에 견줬다. 홍명보는 바레시를 ‘축구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그런 나침반을 안고 홍명보는 달렸다. 결국 명선수가 됐고, 다시 명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유명한 선수도 없었다며? 그런데 어떻게 20세 이하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8강까지 올랐지?” “카메룬전에서 패했을 때는 주전을 5명이나 교체했다며?” “홍명보는 선수 때도 잘하고 감독 때도 잘하네. 비결이 뭐지?” 그래서 궁금해진다. 홍명보 선수가 말한 ‘영리한 플레이’의 핵심이 뭘까. 그 나침반의 정체는 뭘까.

#풍경1 : 2002년 월드컵 때 홍명보 선수에게 누군가 물었다. “히딩크 감독과 국내 감독들의 차이점이 뭔가?”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하프 타임 때 국내 감독들은 부족한 선수를 향해 질타를 한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말이다. 히딩크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개인이 아닌 팀 전체에 대해 지적했다. 그렇게만 해도 국가대표 선수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프 타임 때 질타를 당한 선수는 후반전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풍경2 : 이번 대회에서 홍명보 감독은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선수들에게 존댓말을 썼다. 호칭도 “여러분”이라고 불렀다. 한국 축구계를 아는 사람들은 “충격이자 파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홍명보의 존댓말’에는 깊디 깊은 이유가 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끄집어내고자 한 건 ‘단순한 존중’이 아니었다. 그 존중 너머에서 꿈틀대는 에너지였다. 강압적 지시에 의한 기계적 움직임이 아니라 선수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창조적인 에너지였다.

#풍경3 : 홍명보 감독은 주전과 비주전 간 경계를 허물었다. 청소년대표팀에는 영원한 주전도 없었고, 영원한 비주전도 없었다. 그렇게 ‘홍명보 호’는 경쟁에 대해 열려 있었다. 그건 기회에 대한 열림이었다. 그 기회 앞에서 ‘내 안의 에너지’를 아끼는 선수는 없었다.

리더십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로의 리더십’이고, 또 하나는 ‘장벽의 리더십’이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뭔가. 구성원이 자기 안의 에너지를 마음껏 끄집어 내고, 마음껏 쓸 수 있게 하는 ‘온전한 통로’가 되는 거다. 그게 바로 통로의 리더십이다. 잠자는 에너지는 깨워주고, 깨어난 에너지는 격려하고, 달리는 에너지엔 길을 터주는 거다. 그런데 오히려 선수들의 에너지를 가두고, 식히고, 짓누른다면 장벽의 리더십이 되고 만다.

홍명보 감독의 나침반은 ‘생각하는 축구’ ‘창조적인 축구’다. 대학생 홍명보가 반했던 바레시의 영리한 플레이, 그 뿌리도 실은 창조성(creativity)이다. 홍 감독의 리더십은 철저하게 그걸 위한 통로다. 그래서 ‘선수 홍명보’ 못지않게 ‘감독 홍명보’가 기대된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과학 칼럼]과학에 대한 오해 -연역법과 귀납법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과학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거나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는 시각이다. 심지어 과학자 중 종교에 회의적인 사람이 있으면 조금 아는 자의 오만으로 보거나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믿는 편협한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반대로 과학자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그의 믿음을 남다르게 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과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과학자란 무엇을 안다기보다 왜 우리가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근간이 되는 과거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신념과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가운데 지식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고 듣고 한 것을 원인과 결과라는 논리적인 틀에 끼워 맞추어 놓은 경험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지식은 관측과 실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한번 얻어진 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모든 지식은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실험과 관측에는 늘 오차가 있고 또 그 자체가 시간적·공간적으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에 의해 더 나은 실험이나 더 많은 관측이 이뤄지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바가 수정되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역법과 귀납법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역법이 주로 사용되는 분야는 수학인데 이는 삼단논법을 생각하면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연역법이 복잡한 자연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일찍이 간파했다. 한 예로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나폴레옹은 인간이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이성적이다’고 했을 경우 이렇게 얻은 결론이 반드시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으로써 베이컨이 제안한 것은 실험과 관측에 바탕을 둔 귀납법이다. 예를 들어 모르는 상자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거기에 1이라는 숫자를 넣었더니 2가 되어 나왔고, 또 2라는 숫자를 넣었더니 4가 되어 나왔다고 하자. 이러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우리는 그 상자가 무엇을 두 배로 만드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 많은 실험을 통해 예상한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의 확신은 더 강해지겠지만 단 한번이라도 예외가 생기면 당초의 생각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베이컨은 이처럼 실험과 관측을 통해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창했고 이러한 귀납적 방법에 의한 탐구가 근대 과학의 출발점이 됐다.

계몽주의 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물질적 삶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그 결과 과학을 절대 가치로 여기며 모든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과학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과연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지 등 정작 우리가 알고자 하는 사안에 대해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실망을 하고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지식의 한계이지 과학적 사고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우리 인간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면밀한 관찰과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뿐이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 (중앙일보 2009. 10. 08)

행복의 조건-중앙일보 분수대

히말라야 산맥 동쪽 끝에 자리잡은 부탄은 인구 70만 명의 작은 왕국이다. 면적은 남한의 절반이 채 안 되고, 1인당 국민소득도 1400달러로 세계 124위다. 수도 팀부의 인구는 우리로 치면 군 소재지 정도인 3만 명이고, 백화점도 전국을 통틀어 두 개뿐이다. TV는 1999년, 인터넷은 2000년에야 들어왔다.

하지만 이 나라는 2006년 영국 레스터대학이 작성한 ‘세계 행복지도’에서 여덟 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한국은 102위였다. 부탄인들이 낮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전임 국왕인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가 1972년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이란 개념을 도입한 덕분이다. 경제개발을 앞세우기보다는 전통문화와 환경을 보호하고, 부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겉으로 드러난 부(富)보다는 내적인 만족감을 중시한 것이다.

유럽의 덴마크는 최근 20년간 각종 행복지수 조사에서 거의 1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덴마크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의 바탕에는 ‘평등과 신뢰’가 깔려 있다. 다들 비슷하게 벌고 소비하면서 범죄 걱정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행복학자들은 소득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1인당 소득이 1만2000달러(1400만원)를 넘어서면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삶의 만족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삶의 여유, 원만한 인간관계, 건강, 정신적 몰입을 행복의 필수조건으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감이란 날씨에 따라 달라지고, 방금 어떤 영화를 보고 나왔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월드컵 축구 우승이라도 했다면 국민 전체의 행복감은 순식간에 올라간다.

최근 한국사회학회가 주최한 ‘행복 심포지엄’에서 한국인은 돈보다 화목한 가정과 건강을 행복의 최대 요인으로 꼽는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한국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하지만 가족과 사이가 멀어지지나 않을까, 건강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명절이면 먼 길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모두들 귀성에 나서는 것도 가족 사랑을 확인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독일의 괴테는 “인생을 통틀어 정말 즐거운 시간이 4주도 안 된다”고 했고, 비스마르크도 “행복한 순간은 24시간이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행복은 스스로 찾아 나서고 더 많이 느끼려 노력할 때 늘어난다는 얘기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